[전원 속 예술가들 .12] 이기성·김영숙 부부

  • 김수영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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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2-05-08  |  발행일 2012-05-08 제면
자연은 친구… 창작의 에너지를 선물해줬다
[전원 속 예술가들 .12] 이기성·김영숙 부부
서양화가 이기성·섬유미술가 김영숙 부부가 집 옆에 있는 과수원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전원생활을 시작한 뒤 정신적·시간적 여유가 많아져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부부의 공통된 의견이다.


경산시 압량면 당음리에 자리잡은 김영숙 갤러리. 아담하면서도 깔끔한 이 건물은 뒤로 펼쳐진 넓은 과수원과 대조를 이루면서 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이제 막 새순이 올라온 대추나무가 가득한 과수원을 배경으로 삼은 갤러리는 첫눈에 보면 도시적 색채가 묻어나는 건축 디자인이 주변환경과 괴리감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건물 주변과 내부를 둘러보면 자연과 인간의 손끝이 함께 빚어내는 조화로움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전원 속 예술가들 .12] 이기성·김영숙 부부
서양화가 이기성씨

갤러리 주변에 조성된 정원 곳곳에는 조각 및 도예 작품이 들어서 있다. 나지막한 소나무의 그늘 아래에 숨은 도예 작품은 나무와 친구 삼아 세월을 즐기는 듯하며,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자리잡아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을 온몸으로 전해주는 바람개비 같은 작품도 있다. 갤러리 대표이자 섬유미술가인 김영숙 교수(경일대 생활디자인전공)는 “남편과 저의 친구, 제자들의 작품”이라며 “정원에 나와 가끔 차를 마시는데, 이때 이들 작품을 보는 재미가 이 곳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소개했다.

[전원 속 예술가들 .12] 이기성·김영숙 부부
섬유미술가 김영숙씨

건물의 문패는 김영숙 갤러리로 돼 있지만, 이 곳에는 갤러리 이 외에 김 교수와 그의 남편인 서양화가 이기성의 작업공간도 있다. 전시장에는 부부의 최근작이 걸려 있는 덕분에 작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김 교수의 작품은 작업실을 시골에 둔 작가답게 작품 전체에서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다양한 색감의 삼베와 나뭇가지를 이용해 자연 형상을 단순화한 듯한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남편 이씨의 작업은 김 교수와는 사뭇 다르다. 캔버스에 크고 작은 바늘을 수없이 박아놓은 뒤 그 위에 강렬한 색상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그의 작품은 도시적이면서도 현대적 느낌이 한껏 묻어난다. 이씨가 자석과 철가루를 이용해 만든 신작이다.

부부는 2001년 이 곳에 건물을 지으면서 공동의 작업공간을 갖게 됐다. 그 전에는 살림집이 있는 대구시 수성구 시지에 각자 작업실을 구해서 창작활동을 했는데, 남편 이씨 때문에 전원에 작업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물감과 기름을 활용해 자연스러운 색감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마블링기법을 응용한 작품을 제작해 왔습니다. 시너와 휘발유 등 온갖 기름을 사용하는데, 이 기름냄새 때문에 시내에서 작업하는데 한계를 느꼈지요. 마블링작업의 특성상 캔버스를 세우지 못하고 바닥에 깔아놓은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하니까 넓은 공간도 필요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강하게 느껴졌던 냄새의 원인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한두 시간 전에 미리 와서 문을 모두 열어놨다는 데도, 기름냄새가 완전히 빠져나가질 못했다.

이씨는 웃으면서 “20년 넘게 이 냄새를 맡았으니 제 뇌세포가 많이 죽었을 것”이라며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혼자 오랫동안 작업하니 세상물정에 점점 어두워지는데, 이처럼 뇌세포까지 죽어가니 그 증세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작품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서지 않는다”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작업장을 둘러보면 치열한 작가정신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작업장 이곳 저곳에 놔둔 수십개의 작품은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각기 다른 개성이 스며있다.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추상주의적 작품, 꽃이나 사람 형상을 한 듯한 구성주의적 성향이 느껴지는 작품, 동판을 수없이 문질러서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낸 작품 등 다양하다.

이 곳에 들어온 뒤 그는 이같은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인간 존재의 미미함과 나약함을 더욱 크게 느낀다는 설명이다. 이런 느낌이 결국 작업에 주요한 모티브가 됐다. 작품을 통해 그는 인간이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사물과 사회의 관계 및 조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다.

다른 작가에 비해 작업성향이 크게 변한 것도 결국 전원생활 때문에 가능했다. 혼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을 보면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늘어난 것이 작업에 대해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정신적 여유와 새로운 창작에너지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작업성향이 변하기는 아내인 김 교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주로 실을 이용한 직조 작업을 많이 선보였던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삼베와 여러가지 자연적인 오브제를 이용한 섬유미술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변화에는 남편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김 교수는 아름다운 추억 속에 자연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한다. “삼베도 자연소재지만, 오브제도 나뭇가지나 꽃 등을 활용했지요. 내용에 있어서도 보름달을 배경으로 한 나뭇가지와 꽃 등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어릴 적 기억 속에서 유추해낸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적 느낌이 강한 그의 작품에서도 현대적 감각은 살아 숨쉰다. 배경을 삼베로 처리하면서도 그 옆의 작은 부분을 동판으로 마무리하고, 다양한 물감을 바른 것이다. 남편의 작품 중 동판을 활용한 작업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작업에도 응용했다는 귀띔이다. 그는 오는 12월 수성아트피아에서 여는 개인전에서 또 다른 변신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들 부부는 지금 자신의 연령대에 대해 인생을 정리할 시기라고 말한다. 사람과 교류를 넓히기보다는 기존의 인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늘려나갈 시점이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만한 친구가 없다. 자연은 나를 깊이있게 들여다볼 시간을 주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게 해주는 최고의 친구인 것이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Who 이기성·김영숙 부부

이기성 작가는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서양화를 졸업하고, 일본 마사시노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6년 대구 S갤러리에서 열린 첫 전시를 시작으로 개인전 12회를 열었으며,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이며, 한국미술협회와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숙 작가는 1960년 경산에서 태어났다. 계명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구를 비롯해 일본과 스위스 등에서 개인전 6번을 열었다. 대구섬유미술가회 회장, 대구공예대전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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