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막장 드라마

  • 입력   |  수정 2012-05-17  |  발행일 2012-05-17 제면
[자유성] 막장 드라마

‘막장’이 광산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의미하듯, 막장 드라마는 갈 때까지 간 드라마라는 뜻이다. 막장 드라마의 시발(始發)은 2009년 방영된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아내의 유혹’은 불륜과 복수라는 진부한 소재, 비현실적 스토리 등으로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4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다.

막장 드라마의 원조 격인 ‘아내의 유혹’ 성공 이후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막장 드라마가 쏟아졌다. 패륜, 불륜, 배신, 배금(拜金), 잔혹한 폭력 등 막장 코드는 TV 드라마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막장이란 용어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막장이란 말이 워낙 좋지 않은 의미로 흔하게 쓰이다 보니 당시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이 광부를 모욕하는 말이라며 막장 용어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요즘은 드라마보다 더 천박한 막장 실화가 펼쳐지고 있다. 최근 영업 정지된 부실 저축은행 스토리가 전형적인 막장의 아류다. 횡령과 비자금 조성, 가짜 통장 만들어 고객 돈 가로채기, 차명으로 재산 빼돌리기, 소설에나 등장하는 밀항 기도까지 막장의 요건을 두루 갖춘 드라마틱한 실화다. 이미 30년 전부터 서울법대생을 사칭하며 엽기적인 삶을 살아온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막장 드라마의 간판 배우로 손색이 없다. 부실 저축은행끼리 짬짜미해 서로 대출해주는 꼼수도 그렇고, 망하기 전 선심이라도 쓰듯 회사 돈으로 직원들의 빚을 갚아 주는 몰염치도 다 막장 코드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폭력사태까지 빚은 통합진보당도 막장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대승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기보다 말 바꾸기, 뒤집기, 버티기, 정파적인 정략으로 일관하는 저들의 안하무인은 국민에 대한 일말의 예의마저 짓뭉갰다. 몰래 카메라에 포착된 승려들의 밤샘 도박 장면, 룸살롱 성매수 의혹 폭로 등으로 얼룩진 조계종의 일그러진 이면(裏面)도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모습들이다. 감동 실화, 개념 드라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막장 세상이다.

박규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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