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5] 김천 고대국가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12> 궁궐터 동부연당(개령면)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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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22   |  발행일 2015-07-22 제13면   |  수정 2021-06-16 18:02
신증동국여지승람 “柳山 북쪽 동원 곁에 감문국 궁궐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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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는 감문국 궁궐유적인 동부연당이 위치해 있다. 최근 100여년 동안 경작지 확장과 도로 개설로 그 규모가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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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연당의 연못 주변에는 건물의 주춧돌로 쓰였을 법한 큰 돌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 문헌들은 현재의 동부연당 인근이 감문국 궁궐터라고 지목하고 있다.

 

 

◆스토리 브리핑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는 김천지역의 고대 읍락국가(邑落國家) 감문국(甘文國)의 궁궐터 일부가 남아있다. 현재 동부연당(東部蓮塘)으로 불리는 감문국 궁궐터는 김천에서 구미로 향하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연잎 가득한 연못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무성한 수풀은 감문국 왕이 거닐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한때 번성했을 왕국의 궁궐터는 1천700여년이라는 세월의 풍파 속에 쇠락을 거듭했다. 원래 동부연당은 감천(甘川)제방에서 개령면 동부리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그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다. 최근 100여년 동안 경작지 확장과 도로 개설로 인해 규모 또한 현저히 줄었다.
‘감문국의 흔적을 찾아서’ 12편은 감문국 궁궐에 관한 이야기다.



향토사료집·감문국개령지 등에서도
‘동부리의 연꽃 연못’ 동부연당 지목
주변의 주춧돌·기와조각 옛터 입증

옛 동부연당은 甘川제방부터 이어져
조경기능 외 배수지·유희시설 활용
‘김종직 버드나무’감천물 유입 방증

 

 

# 감문국 성장의 증거

감문국은 서기 231년(조분왕 2) 석우로(昔于老)에 의해 신라에 병합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하지만 감문국의 궁궐유적은 현재까지 남아 옛 소국의 영화로움을 전하고 있다.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의 동부연당이 감문국의 궁궐 일부로 알려져 있다. 동부연당은 ‘동부리의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감문국 궁궐터의 남단에 있다.

동부연당은 연못의 조경적 기능과 함께 갈수기 때 물을 모아두었던 배수지 역할을 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각 감문국 왕과 왕비(모자 관계라는 구전도 있다)로 알려진 금효왕(金孝王)과 장부인(獐夫人)이 동부연당에서 정을 나누었다는 구전이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은 “(동부연당에서) 인근 감천이 범람할 때 물을 모아두었다가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감문국 지배세력이 유희를 즐기던 장소로도 활용됐을 것”이라며 동부연당의 기능에 대해 추측했다.

실제로 동부연당 남편의 도로변에는 조선 전기 영남 예학의 종주인 김숙자(金淑子)·김종직(金宗直) 부자가 심었다는 버드나무가 있다. 김숙자·종직 부자는 감천의 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삼한시대나 조선시대나 동부연당 인근은 감천의 물이 드나드는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 동부연당 한가운데에는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궁궐 건축물에 쓰였을 법한 주춧돌 몇 개가 남아있다.

옛 문헌에는 감문국 궁궐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감문국 궁궐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궁궐 옛터 유산 북쪽 동원 곁에 감문국 때의 궁궐터가 남아 있다’며 감문국 궁궐의 위치를 지목했다.

학계 또한 감문국 궁궐에 대한 문헌기록을 의미 있게 평가한다. 계명대 사학과 노중국 명예교수는 ‘신라 중고기의 감문군주’라는 논문에서 감문국 궁궐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노 교수는 논문에서 “궁궐터라든가 왕릉 등은 정치적 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 나올 수 있다. 따라서 감문국과 관련되는 궁궐터 등은 감문국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감문국개령지와 감문국

나라가 사라진 지 1천여년이 흘렀기에 도읍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나마 최근의 기록인 향토사료집(1986년 김천문화원 발간)에도 감문국 궁궐터에 대한 내용은 턱없이 부족해 고대사 연구에 대한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사료집에는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개령면사무소 뒤편의 유산(柳山) 또는 유동산(柳東山) 아래에 삼한시대 감문국의 궁궐터가 있었다고 한다’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연지(蓮池) 근처에 초석(礎石, 주춧돌)과 와편(瓦片, 기와조각)이 산재했다. 지금은 민가가 들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오히려 1934년 우준식이라는 인물이 집필한 감문국개령지(甘文國開寧誌)에 감문국 궁궐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동부연당이 위치한 동부리는 단양우씨 집성촌이었다. 구한말 대부호로 자선에 앞장선 우상학(禹象學) 등 우씨 성의 인물이 많이 배출됐지만, 정작 우준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개령면에 살던 선비로 추정할 뿐이다.

어쨌든 우준식은 감문국개령지를 통해 감문국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려 했다. 감문국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물론, 김천이 예사롭지 않은 고장임을 보여주려 시도했다. 또한 감문국개령지는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에 쓰였기에 비교적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감문국개령지의 머리말을 보면 우준식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우준식은 감문국개령지의 필요성과 감문국 연구에 대한 이유를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머리말을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내 이제 개령지를 쓰는 데 있어 신라와 동시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감문국시절의 형편을 쓰고자 한다.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개령읍지 등의 기록이 있었지만 거의 사라져 도저히 구할 수 없게 됐다. 몇 개 재래읍지가 있지만 보잘것없는 간략한 것이어서 기록의 가치가 없었다.(중략)”



감문국개령지는 감문국으로부터 이어받은 정통성도 강조하고 있다. 감문국개령지는 ‘개령은 현재 1개 면으로 그 체면이 졸하나 과거 감문국으로서, 감문주로, 청주로, 개령현으로 변화했다’며 유사 이래 감문국의 영역이 김천의 중심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감문국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향토지라면 어느 책에나 있을 법한 편집위원 명단이나 후원자의 이름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천학불식(淺學不識, 학문의 깊이가 얕고 지식이 부족한)의 몸으로 이 책을 다 하였다 할 수 없나니 후일의 대가를 기다려 수정되기를 바라는 바’라는 머리말 끝부분의 문구로 보아 우준식 홀로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 감문국 궁궐터와 세자궁지

감문국개령지에는 감문국 멸망에 대한 아쉬움과 감문국 궁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저자 우준식은 “감문국의 궁궐은 1천700여년 전 신라에 의해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궁궐의 자취와 주춧돌이 남아있으며 현대인으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궁궐에 대한 기록은 다른 문헌의 것과 비슷하다. 감문국의 궁궐지가 현재의 개령면 유동산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동부연당 부근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유구한 세월의 눈물의 자취가 역력하다’는 표현을 덧붙여 망국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감문국개령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감문국 세자궁터에 관한 내용이다. 세자궁에 관한 기록은 다른 문헌에서 찾기 힘들기에 가치가 있다. 감문국개령지는 ‘(감문국) 세자궁도 감문국 시절의 이야기니 (중략) 동부동 호두산 좌측 아래다. 그 터에 지금 팽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데 옛말을 일러주는 듯하며 세칭 이 터를 세자궁터라 한다’고 적고 있다.

한편 현재까지 남아있는 감문국 궁궐터인 동부연당은 동부리 주민의 휴식처로 쓰이고 있다. 연못 동편의 정자는 마을 주민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연못 남편에는 족구장 등 체육시설이 있지만 늘 고즈넉한 풍경이다.

글·사진=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 참고문헌= ‘유적으로 고찰한 감문국’ ‘(진·변한사 연구) 진·변한의 성립과 전개’ ‘계명사학 제23집’ ‘국역 김천역사지리서’ ‘디지털김천문화대전’ ‘대구·경북 신석기 문화 그 시작과 끝’ ‘신라문화 제38집 별쇄본. 삼국사기 열전에 보이는 4~5세기 신라인의 활약상’ ‘김천시사’ ‘감문국 유적정비를 위한 정밀지표조사’
▨ 자문단 △문재원 국사편찬위원회 김천사료조사위원 △이석호 김천향토사연구회 회장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 △강종훈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권태을 경북대 명예교수
공동 기획 : 김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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