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37] 대구문인협회 장호병 회장과 허홍구 시인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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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5-08-25  |  발행일 2015-08-25 제면
지독한 문학사랑이 맺어준 30년지기…선한 눈빛과 웃는 모습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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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3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오고 있는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왼쪽)과 허홍구 시인. 웃는 모습과 선한 눈빛이 많이 닮았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 장 회장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길래 바로 대구로 향했습니다.”

지난 11일 인터뷰하기 전날, 서울에 사는 허홍구 시인(69)은 장호병 대구문인협회장(63)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다”며 대구로 내려오라는 전화였는데, 이 말에 “왜”라는 질문 한번 안하고 그냥 대구로 내려왔다고 했다. 신문사의 취재가 있는지 모르고 왔다는 것이다. 허 시인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장 회장과 인생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두 사람 사이에 가끔 있었다. 그만큼 편하고 친하다. 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말에 왜라는 이유 한마디 붙이지 않고 달려오는 그런 사이인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될까.
기자는 인터뷰하는 날 허 시인을 처음 봤지만 그의 시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왔던 터라 첫 만남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이에게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얼굴 가득히 넉넉한 웃음을 짓고 친근한 어투로 말을 던지는 모습에서 참 편안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기억 속에 허 시인은 ‘아지매는 할매되고’라는 시로 기억돼 있다.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벌인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받아도 좋다”…// 십수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이 시를 처음 읽은 뒤 시를 쓴 사람이 참 솔직하고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는데, 이 생각은 실제 허 시인을 보니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허 시인에 대한 장 회장의 평가를 들어봐도 기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제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좋게 말해서 합리주의자라면 허 시인은 사람 좋아하고 인간미 넘치는 다정한 낭만주의자입니다.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니 아무리 화가 난 사람도 허 시인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돌지요.”

하지만 허 시인은 장 회장이 자신처럼 친화력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은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만나왔지만 다른 사람 험담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몇십년 글을 써오면서 지역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온 데다 출판사(북랜드)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겠습니까.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날텐데 아직 다른 사람에 대해 뒷담화하거나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공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만나면 만날수록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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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산문을 쓰던 문학청년들
 30년전 문학단체에서 처음 만나
 그시절 문학을 논하며 친분 쌓아

 어느날 두사람이 시낭송회 대화 중
 독자와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구서도 97년 6월부터 매월 개최
 일반시민 참여할 정도로 반응 좋자
 월간 ‘시사랑’ 발간 전국에 알려

 지금은 서울-대구 떨어져 살지만
 언제든 “보고 싶다” 하면 달려와
 문학·인생을 얘기하며 시간 보내

그들은 첫 만남을 1987년쯤으로 기억했다. 특별하게 어느 자리에서 만나 서로를 기억했다기보다는 그 즈음 문학청년으로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문학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한다. 대구 출신인 허 회장은 그 당시 대구에서 문학활동을 했다.

“허 시인은 처음 만날 당시에는 산문을 썼습니다. 그러니 수필을 쓰는 저와는 여러 문학단체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친분이 좀 쌓였는데 허 시인이 1991년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얼굴을 자주 보지 않게 되면 자연히 사이도 멀어지기 마련이지만 이들의 사이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문학을 사랑하고 한국문학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공통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이었을까. 그 당시 이미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이 한국문학의 큰 흐름을 이끌고 있었는데, 새로운 문학 흐름 등을 허 시인은 수시로 장 회장에게 들려줬다. 서로 만나 문학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시낭송회다.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 문학계에서는 시낭송회가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시낭송회라는 행사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런 행사는 거의 없었다. 문학단체나 시인들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작품을 통해 소통하자는 취지로 시낭송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던 것이다.

“허 시인과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서울 문학계에서 유행하는 시낭송회 이야기가 나왔고 들어보니 좋은 것 같아 대구에서 열어봤습니다.”

장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지하를 문학인들의 사랑방으로 꾸미고 1997년 6월부터 매월 시낭송회를 개최했다. 98년 5월까지 시낭송회에서 낭송했던 시로 낭송 사화집도 15권이나 펴냈다.

“처음에는 시인과 시인의 지인들이 주로 참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반시민의 참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낭송회 참여 시인들이 처음에는 자신의 시를 읽던데서 점차 다른 시인들의 좋은 시를 읽는 것도 변화된 풍경이었습니다. 이처럼 시낭송회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서 98년 9월부터는 월간 ‘글사랑’을 펴냈지요. 99년 4월에는 제호를 ‘시사랑’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역시인만이 아니라 황금찬 시인, 정호승 시인 등을 초청해 행사의 규모를 키워갔습니다.”

이 행사는 2007년 12월 100회 시낭송회를 끝으로 종료됐으나 이 시낭송회와 월간 ‘시사랑’이 전국문학계에 남긴 영향을 상당했다. 전국에 ‘시사랑’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시사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곳곳에서 시사랑모임도 탄생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외에도 보이지 않는 성과도 많았다.

“문학인들의 사랑방을 개설한 것이나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을 만들고 토론문화를 활성화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시낭송, 나아가 동화 구연의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구시교육청이 추진한 좋은 시읽기운동의 자극제도 됐습니다. ”

그래서 아직도 많은 문학인들이 장호병 회장하면 시사랑을 떠올린다.

대구와 서울에 있다보니 자주 만날 기회가 없지만 이들은 이렇듯 문학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의를 다져나갔다. 그렇다보니 6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마치 친구처럼 격의없이 지내고 서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말없이 지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허 회장은 수십년간 한국외식산업중앙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계산없는 우정으로 자신을 감동시킨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장 회장을 만났지요. 장 회장은 누구를 만나든 늘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늘 자상하게 들어줍니다. 그래서 믿음과 애정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낸 시간이 쌓이다보니 장 회장과 만나 자연스럽게 문학과 삶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인생의 도반이 되었지요.”

허 시인의 이같은 말에 장 회장은 “제게 문인들이 많이 만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하라고 늘 다독여주는 고마운 분”이라며 “그 말이 용기가 돼 그동안 지역문학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올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인터뷰 말미에 허 시인은 문학과 문학인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생명수가 되듯, 문학 역시 외롭고 힘든 곳으로 전해져서 그들을 어루만져주는 손이 되고 희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손이 되고 희망을 만들어주는 주체가 바로 문학인인데, 이런 측면에서 장 회장은 진정한 문학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권천학 시인은 ‘시인 허홍구를 말한다’는 시에서 허 시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앞머리가 많이 빠지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 그의 선한 눈빛에/ 수많은 여자들이 빠져죽었다.” 권 시인의 말대로 허 시인의 눈빛은 선하다. 선한 마음이 마치 눈빛으로 뿜어져나오는 듯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장 회장의 눈빛도 허 시인과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 모두 웃는 얼굴과 그 얼굴 속에 자리한 선한 눈빛이 아름답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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