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시장, 도시를 살리다 .5] K-패션의 중심 동대문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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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29   |  발행일 2015-10-29 제19면   |  수정 2015-10-29
밤에 디자인한 옷이 다음날 시장서 팔려…생산∼유통 ‘원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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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전 2시30분, 동대문쇼핑타운 내 여러 점포들에 불이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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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화시장의 새벽 풍경. 젊은 도매상들이 좁은 통로에 서서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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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과 도매상들이 쌓아놓은 의류가방 더미로 가득찬 백화점식 의류 도매 쇼핑몰 디오트 내부.


서울 동대문쇼핑타운 야시장 상권의 잠재력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 면세점 유치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유커를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을 위한 대표적 관광명소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4년 서울시 관광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지역 1위가 동대문(55.5%)이다. 이 같은 동대문의 명성은 밤에도 불을 밝히는 야시장과 의류 디자인 및 생산·유통 등 전 과정을 아우르는 원스톱 공급 시스템 덕에 가능하다.

유커 등 외국인 최대 방문 지역
점포는 3만1천여개로 증가추세
매출 12兆 추정…도매의류 90%

원단공급에서 마무리과정까지
한 곳에 집결된 시스템 ‘강점’
다품종 소량화 패스트패션 선도

상인들 양질의 상품 개발보다
값싼 中제품 수입 의존 늘어나
주변 숙박시설 부족 등도 문제

◆24시간 쉼없이 돌아가는 동대문

지난 16일 새벽 1시30분, 서울 동대문쇼핑타운 내 백화점형 의류 도매 쇼핑몰인 청평화시장. 20~30대 의류를 주로 판매하는 이 시장은 문 앞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입구 도로가엔 어른 키만한 의류가방 더미들이 가득 쌓여 있고, 그 옆엔 물건을 전국 각지로 실어나르는 차량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있었다. 이들 더미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낮보다 더 눈코 뜰 새 없는 시장 풍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비닐 가방을 손에 든 도매상들이 폭 100㎝ 남짓 되는 좁은 통로로 점포 이곳저곳을 휘젓고 뛰어다니며 옷을 사들였다. 삼삼오오 쇼핑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은 물론 타국어로 흥정을 하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동대문 야시장은 거대한 K-패션몰을 연상케 했다. 오후 8시가 지나 의류 도매상가들이 속속 문을 열자 드디어 시장 전체가 살아난 듯했다. 누죤·패션몰 유어스·디오트·디자이너클럽 등 건물형 의류 도매상가 20여 개가 본격 영업에 들어갔다. 이들 상가는 다음날 오전 9시쯤 문을 닫는다. 두타·롯데피트인·밀레오레 등 10개 남짓한 소매 상가들은 보통 오전 10시쯤 문을 열어 밤까지 영업을 한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에 따르면 동대문시장 내 점포는 모두 3만1천여 개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에서 소매 의류점포를 운영하는 이정미씨(여·45)는 “동대문 패션시장은 낮보다 밤이 더 활기가 넘친다. 특히 최근 들어 의류쇼핑몰을 하는 20대 창업자들이 늘면서 이곳으로 의류를 구매하러 오는 사람들이 증가해 동대문의 인기도 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매를 주로 취급하는 야시장의 파워는 매출 실적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동대문 상권의 총매출이 12조5천억원으로 추정되며, 이 중 90%를 차지하는 것은 도매 의류다.

◆디자인에서 유통까지 원스톱 패션

이처럼 동대문 야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옷 한 벌이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완만한 경사가 있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옷봉투를 뒷좌석에 실은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내며 오간다. 그들이 튀어나온 샛길 안쪽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봉제공장이 있다. 뿐만 아니다. 의류 디자인을 기획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있는 디오트, 원단을 공급하는 동대문종합시장, 시야게 업체(다림질 등 마무리 과정) 등 패션 원스톱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얼마 전 동대문을 방문한 제니스 해몬드 하버드대 교수(비즈니스스쿨)는 한 인터뷰에서 “동대문시장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원스톱(디자인·원단 공급·봉제·생산·유통) 공급 사슬을 갖춘 곳”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이 같은 시스템 덕에 동대문은 국내 패스트패션을 선도한다. 일본의 유니클로나 스페인의 자라처럼 의류의 생산과 유통을 한꺼번에 해내는 업체들이 한곳에 집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위주의 SPA 브랜드와 차이가 있다면 동대문은 다품종 소량이라는 점이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도보로 10~20분이면 디자인 공장·생산 공장·봉제 공장 등을 방문할 수 있다. 밤 동안 디자이너가 만든 의류가 바로 다음날 시장 점포에 내걸리는 시장이 바로 동대문이다. 이만한 패스트패션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먹구구식 정부 지원으로는 한계

동대문 야시장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점포 상인들이 양질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저가의 중국 상품을 수입해 파는 일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동대문이 갖고 있는 의류 생산 본연의 기지 역할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패션산업기지로 바꾸겠다는 정부 계획 또한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2002년 동대문시장을 관광특구로 지정해 발전 계획을 세우는가 싶더니 현재까지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다. 시장 상인들은 “이름만 특구지 다른 시장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한다. 시장 인근엔 외국인이 묵을 만한 변변한 숙박시설이나 교통 편의시설 등이 크게 부족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 방안은 빠져 있다. 연간 방문 관광객이 무려 700만명에 이르지만 인근 호텔 등 숙박시설의 객실은 고작 2천개 수준이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 관계자는 “각종 규제를 풀고 관련 조례를 만들어 야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관광특구로서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대문이 세계적 첨단 패션단지로 거듭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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