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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 |
만두는 삼국지에서 유래됐으며 만두를 처음 만든 사람이 제갈양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군을 이끌고 운남지역 노수를 건너려 할 때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큰 물결이 출렁거려 강을 건널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제갈양은 이 지역의 지리와 날씨에 정통한 맹획(제갈양에 패한 남만 지역 수령)에게 사연을 물었다.
맹획은 “이 강에는 전쟁 통에 전사한 수많은 병사들의 원혼이 모여있어 과변을 일으킨다.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49개의 사람 머리를 제물로 바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제갈양은 나라를 위해 싸운 병사들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었다. 이에 병사들에게 소와 양을 잡아 고기 속을 만들게 하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든 다음 증기로 쪄서 만두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하나씩 노수에 던지니 물결이 잔잔해져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두는 유목민들이 먼 길을 떠날 때 간편한 식사 대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곡식을 가루를 내어 반죽하거나 숙성 등을 거쳐 건조시켜 끓는 물에 넣어 바로 먹을 수 있게 했다. 거란족의 벽화에도 만두나 만두 찌는 찜통의 그림이 있는데 이게 시초라는 설이 있다.
만두의 두(頭)는 머리 모양이요, 만(饅)은 기만하다의 만(瞞)과 같은 음에서 온 것으로 하늘을 속이려 만든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두’라는 말은 1643년 편찬한 ‘영접도감의 궤’에 나온다. 중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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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음식전문가> |
우리나라에 만두가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하는데 상화로 발효시킨 찐빵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상화는 밀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려 반죽을 해서 찐 것이다. ‘고려사’에는 충혜왕 때 궁의 주방에서 만두를 훔쳐 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도 만두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당시에는 밀가루가 귀해 메밀가루를 사용했다. ‘이순록’에는 인조가 전복만두를 좋아해서 생신날 왕자가 비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든 전복만두를 가지고 새벽문안인사를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관악산 신방사를 방문했을 때 스님으로부터 만두를 대접받고 “스님이 속인에게 눈처럼 하얗게 찐 만두를 대접하다니 놀라 자빠질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만두를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만두가 귀한 음식이었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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