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율법주의적 사회개혁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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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4   |  발행일 2016-10-14 제22면   |  수정 2016-10-14
20161014

김영란법 대상자는 1천만명
대다수가 청탁과 거리 멀어
광범위한 적용은 국민 모독
권력층 부패 차단이 급선무
검찰·사법부의 독립 등 필요

사회나 조직을 개혁하는 데는 강제력을 가진 법이나 규칙을 강화하는 방법과 구성원들의 내면적 가치관을 바꾸는 방법이 있다. 성서에서는 이를 율법과 복음으로 부르면서 율법만으로는 구성원들에게 무거운 짐만 더하므로 반드시 사랑과 복음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전대미문의 율법주의적 사회개혁 시도인 김영란법이 논란 끝에 발효됐다.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우리 사회가 김영란법을 기점으로 영원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듯이 이 법이 우리나라를 선진사회로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국민은 소망한다.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 자체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지만 실행과정에서는 과잉입법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상자와 대상 행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직접 당사자 400만명과 배우자, 관련자들을 포함하면 노동적령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1천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원래 대상이었던 공직자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입법과정에서 언론인과 교사 등 광범위한 직종이 포함되었다. 처벌대상 행위의 범위 또한 엄청나서 직무와 관련이 없더라도 해당자와 배우자들은 일상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특정 사례의 법 저촉 여부를 묻는 문의가 빗발쳐서 권익위 업무가 마비될 정도이다. 해당자들이 과도하게 몸을 낮춰서 안 그래도 침체기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더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권익위원장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김영란법이 상식적 활동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며 무마에 나섰으나, 무수한 개별 사례의 처벌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순적인 것은 1천만명에 가까운 김영란법 적용 대상의 대부분은 부정 청탁을 들어 줄 권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극소수 권력층의 부패가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광범위한 적용 대상을 선택한 것은 국민 다수가 부패했다는 일종의 모독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전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선량하고 성실한 데 비해 지도층의 윤리적 수준과 무능은 심각한 것이 실상이다. 따라서 선진국들처럼 소수 권력층의 부패에 초점을 맞춰 철저하게 수사해 엄단하는 것이 부패를 없애는 바람직한 법제도일 것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청렴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김영란법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만일 실패하면 우리나라의 부패는 한국인의 타고난 DNA 때문이라는 체념적 패배주의가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다.

김영란법의 성공에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다. 부패의 대다수를 저지르는 소수 권력층들은 기존 법제도로도 이미 위법이었으나 권력층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고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왔다. 따라서 김영란법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살아있는 권력까지 성역 없이 철저히 조사해 엄단할 수 있는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이 가장 중요하다. 비싼 음식 좀 먹었다고 처벌하면서 국기를 흔들 수 있는 권력층의 비리는 눈감고 지나간다면 김영란법은 희화의 대상이 될 뿐이며 냉소적 체념주의가 우리 사회를 마비시킬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도층이 이 법의 취지를 진정으로 내면화하여 법 유무에 상관없이 청렴한 생활을 솔선수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장자에 보면 접여라는 현인이 법과 원칙을 명확히 수립하면 백성들이 교화되어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는 통치자를 엉터리라고 나무라면서 “성인은 백성을 인위적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문제를 강제력을 가진 법과 규칙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후진 사회의 전형이다. 진시황, 이사, 상앙, 조고 등이 법가사상에 기반한 철권 통치로 최초의 통일 왕조를 세웠던 진나라가 2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그 후 중국이 내면적 윤리를 강조하는 유가사상으로 전환한 것은 법만능주의의 위험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율법은 사랑과 복음이 있어야만 완성된다고 한 의미일 것이다. 김영란법이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성과 지도층의 내면화된 솔선수범에 기반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를 김영란법이 필요 없는 진정한 선진사회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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