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시민불복종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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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8   |  발행일 2016-11-18 제22면   |  수정 2016-11-18
민주시민의 진정한 의무다
[경제와 세상] 시민불복종의 의무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손이 뻗지 않은 곳이 없는
전대미문의 부정부패사건
엘리트 고위공직자가 조연
최소한 복종은 안하는 것이

경영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의 공통 관심사인 조직의 연구가 전공인 관계로 필자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공부해왔는데 지금껏 읽은 글들 중 최고를 고르라면 주저 않고 19세기 중반 미국 철학자 소로(H.D. Thoreau)의 ‘시민 불복종의 의무(On the Duty of Civil Disobedience)’를 택할 것이다. 이 책은 깊은 숲 속 오두막에 혼자 살며 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명상을 기록한 걸작 ‘월든’을 쓴 소로가 1849년에 집필했는데 2000년 뉴밀레니엄 때 인류역사상 최고의 글 열 편에 뽑히기도 했다.

이 글에서 소로는 다른 사람에게 종속된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인 진정한 시민이 되려면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복종하지는 않는 것이 의무라고 강조한다. 도덕적 양심이 국가나 법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선출한 정부라도 불의한 행동을 할 때는 자신의 양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소로의 주장은 후에 간디와 킹 목사의 비폭력 불복종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는데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와 반대로 도덕적 양심에 따라 불복종함으로써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불복종은 권력의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개인적 위험을 초래한다. 소로도 당시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미국의 법정치제도는 악하기 때문에 복종할 수 없다며 세금 납부를 거부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즉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의한 권력에 불복종하는 것이 왕의 노예이던 백성과 스스로의 주인인 자유 시민을 구분하는 기준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이제까지 밝혀진 사실만 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은 물론 국가의 생존이 달린 안보와 외교에까지 정의롭지 못한 세력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손을 뻗친 전대미문의 부정부패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는 부패한 권력층 이외에도 겉으로 볼 때는 남부러울 것 없는 최고의 경력과 학벌, 지위를 가진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조연으로 거들었다. 즉 권력층의 불의한 요구에 많은 공직자들이 도덕적 양심을 저버리고 복종하면서 국가 전체를 붕괴시킬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공직의 정점에 있는 장관들의 행태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이번 정부의 장관급 각료들 중 단 한 번이라도 청와대의 불의한 압력을 거부한 사람은 CJ에 대한 부당한 기소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결정한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승마대회에 출전한 정유라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린 관련자들을 처벌하라는 어불성설의 요구를 사실에 입각하여 거부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불복종 사건 직후 경질되었다. 노대래와 유진룡은 장관직을 날려버렸지만 전문가와 공직자로서 소신과 양심에 따라 불의한 권력에 불복종함으로써 자유 시민의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반면 의견 한번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고 권력자의 어록을 받아 적기 바빴던 나머지 대다수 각료들은 여전히 왕정시대의 백성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 검찰과 관료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그 전 정권 하에서의 행태를 추구하는 새로운 권력에 “우리는 영혼 없는 관료다” 또는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는다”고 후안무치 격으로 강변해왔다.

소로가 불복종 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 친한 철학자 에머슨이 면회 와서 “철학자가 어떻게 감옥 안에 있느냐”고 묻자 소로는 오히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철학자가 감옥 밖에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현대 민주사회의 주인인 시민은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따라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불의한 권력이나 체제에 맞서 싸우지는 못해도 최소한 불복종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다. 이제 우리는 권력자의 신하인 백성으로 살 것인가, 스스로의 주인인 시민으로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조가 명확하게 선언하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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