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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통융합적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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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팀기자
  •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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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0년, 사자는 남동 유럽 아프리카 최남단의 케프주와 동쪽 소아시아에서 인도 북부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아종(亞種)이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다른 사자에 비해 훨씬 늠름하고 웅장한 사자가 아프리카 북부 전역에 서식하고 있었다. 체중 225㎏, 몸집이 3m가량으로 현존하는 사자보다 40㎝ 정도 더 큰 것이었다. 백수의 왕이라고 부를 만한 사자, 그것이 바바리사자였다. 그러나 바바리사자의 역사는 한순간도 평화가 없는 박해의 역사였다. 기원전 6세기,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하고,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마케도니아를 병합한 뒤 이집트까지 정복, 소아시아에서 북아프리카 일대로 영토를 넓혀나갔다. 지도자들은 승리를 자축하고, 더 나아가 힘에 의한 지배를 과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정복한 토지의 동물들을 대량으로 포획하여 로마의 야외경기장에 모인 25만 명의 대관중 앞에 내보이는 것이었다. 로마시민에게 볼거리로 제공된 뒤 바바리사자는 더욱 잔혹한 운명과 만나게 되어 있었다. 사자들은 경기장에 방사되어 자신에 찬 검투사들과 목숨을 건 일전을 벌여야 했다. 바바리사자에게 있어서 결투의 보수는 ‘죽음’이었다.

기원전 27년, 로마는 제국으로 재탄생하고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초대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41년 간의 재임 동안 아우구스투스는 다양한 축전을 위하여 3천500마리 이상의 동물을 로마로 운반시켰다. 그 중에는 수백 마리의 바바리사자도 포함되었다. 바바리사자들을 등장시킨 축전, 그것은 ‘피의 축전’이었다. 당시의 로마에는 그리스도교가 금지되고 있었다. 금지에도 불구하고 신앙집회를 열다 붙잡힌 그리스도교도들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중의 앞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다.

유럽사자는 2세기 무렵에는 절멸하였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한 때에도 바바리사자는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한 아종, 남아프리카에 분포했던 케프사자도 절멸했다. 최후의 한 마리는 1865년에 나타르에서 포획되어 사살됐다. 이제 바바리사자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다.

모로코 북부의 아틀라스 산맥, 20세기에 들어 바바리사자는 이 한정된 지역에서만 겨우 숨죽여 서식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아틀라스 산맥의 자연조건은 특히 가혹해서 20세기 초까지 인간이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최후의 낙원에도 드디어 인간의 마수가 침입했다. 1922년 아틀라스 산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바바리사자가 사살당했다. 고귀한 ‘왕’의 혈통은 단절된 것이다.’ (-하야시 요우히사 외,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박해받은 왕, 바바리사자’)

어릴 적 읽은 시튼의 동물기 기억나십니까.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오토의 세계종교사 중 그리스도교편, 세계의 지리 등 이 짧은 한 편의 글에 글 쓰는 이들이 오류를 범하면 안 되는 상식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많이 읽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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