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아, 통영항!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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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8-09-21  |  발행일 2018-08-01 제면
바다,언덕, 햇살과 구름…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통영
아름다움 더할 나위 없지만
항구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자동차소음까지 설상가상
20180801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동호동 방앗간집 아들로 태어난 시인 김춘수. 서문고개 부근에서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와 함께 충렬사 앞 명정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박경리. 갓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인쇄소, 제본사, 표구사에서 일하며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던 시인 김상옥. 약국집 아들인 동랑 유치진, 청마 유치환. 중앙시장 부근 우체국 맞은편 수예점에서 언니 일을 돕던 시조시인 이영도. 이 동네 어느 처녀에게 첫눈에 반해 무작정 동네 여기저기를 서성이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라면서 가슴이 아려오는 시를 썼던 백석.

무전동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90세가 넘어서도 “아직은 젊다”며 쪽빛 바다, 고깃배와 올망졸망 늘어선 집들이 보이는 아름다운 항구의 물과 빛을 그린 화가 전혁림. 6·25전쟁 중 부산에서 부두노동자로 연명하다가 유강렬의 소개로 이곳에 와서 나전칠기 기술원들에게 데생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던 화가 이중섭. 1952년 호심다방에서 열렸던 전혁림·유강렬·장윤성·이중섭이 함께한 ‘서양화 4인전’에서는 서울 사는 어느 부인이 다방에서 현금으로 전혁림의 그림을 사갔고, 이중섭의 ‘소’도 8만원에 팔렸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그 파도 소리는 내게 음악으로 들렸고”라며 고향의 바다를 평생 자신의 예술적 영감으로 삼았던 윤이상이 간사를 맡고, 젊은 김춘수가 총무를 맡았으며 유치환이 초대 회장이 되어 야학·한글학교를 운영하며 연극·음악·문학·미술·무용 등 예술 운동을 전개했던 ‘통영문화협회’. 인구 10만명 남짓한 남쪽 한 모퉁이 조그만 항구 통영이 우리 현대 미술, 문학, 예술에 남긴 발자취는 그야말로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나는 통영이 영원히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면 쩌릿쩌릿한 감동이 밀려오는 글, 눈길이 가는 순간 ‘눈이 확 떠지는’ 그림, 평소 상상도 못 하던 경지로 마음과 영혼을 올려놓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통영에서 앞으로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이곳의 바다와 섬과 언덕과 구름과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더할 나위 없다. 문제는 사람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걸맞은 선택을 하고 자연과 함께 아름답게 살아갈 마음가짐과 실천을 위한 결단력이 있는가다.

고깃배가 정박해 있는 아름다운 통영항 바닷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떼를 지어 출렁인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자발적 캠페인에 호소하거나, 시장논리에 맡겨둘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애초 문제의 시작이 바로 ‘플라스틱이 더 싸게 먹힌다’는 시장논리였고, 한번 쓰고 버린 후부터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은 판매, 구입, 이윤 추구 단계에서는 아무도 계산에 넣지 않는 무책임한 자유경쟁의 논리였기 때문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제작과 판매를 금지하는 분명한 일정을 확정하여 공표하는 과감한 정부 조치가 선행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안 해법의 개발에 투자자금이 몰려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동차와 자동차길은 예술적 영감을 말살시키고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을 파괴한다. 윤이상·유치환·이중섭·그리고 젊은 날의 김춘수와 전혁림이 어울려 만나던 시절의 통영항 사진을 자세히 보면, 지금의 중앙시장 앞 옛 항구에는 올망졸망한 가게들이 물가에 바로 면해 있다. 그러나 지금 그곳은 자동차가 달리는 ‘신작로’가 되어버렸다. 어째서 아름다운 항구의 물에 가장 가까운 소중한 공간을 인간들이 자동차에 헌납하고 이제는 소음과 매연과 난폭한 살상의 위협에 위축되어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는가? 깨끗이 씻은 햇살이 내리비치는 낮에나, 저녁해가 저문 어스름한 밤에는, 가게 앞 바다를 면한 공간에 테이블을 내놓고 친구와 둘러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인생과 예술을 이야기해야 한다. 어째서 그곳을 자동차들이 시끄럽게 달리는 황량한 도로로 만들어 버렸던가? 그 잘난 ‘마이카’를 몰고 씽씽 달리며 바다를 휙 둘러보고 가버리는 것이 그렇게도 좋던가? 인간과 예술과 자연을 파괴하는 자동차 숭배는 이제 좀 그만했으면 한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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