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따라 청도 여행 .1] 청도반시 시조목과 감말랭이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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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8   |  발행일 2018-09-18 제13면   |  수정 2018-09-18
평해군수가 효심으로 들여온 시조목…500년 지나 ‘청도 명물’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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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의 산 어귀에 자리한 청도반시 시조목. 이 나무는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인 일청재 박호에 의해 청도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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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매전면 상평리 도로변에 자리한 감말랭이 원조마을 표지석. 청도 감말랭이는 1990년대 후반 상평리 주민들이 대량 가공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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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말랭이 생산은 청도반시의 본격적 생산시기인 추석 전후로 이뤄진다. 감말랭이는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단맛으로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시리즈를 시작하며

청도는 청정자연과 더불어 수많은 역사·문화자원이 남아있는 고장이다. 역사의 중심에 선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으며, 청도인(人)의 정서와 삶이 오롯이 스며든 문화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영남일보는 청도에 산재한 스토리를 소개하는 ‘이야기 따라 청도 여행’ 시리즈를 연재한다. 시리즈 1편은 청도반시의 유래가 된 청도반시 시조목과 감 특유의 풍미가 가득한 감말랭이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를 향한 효자의 정성어린 마음과 더불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농민들의 재치와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조선전기 청도출신 문신 일청재 박호
부모 위해 명나라서 감나무 가지 입수
고향 가져와 접 붙이니 씨없는 감 열려
보통 감나무와 달리 10여m 높이 자랑

반시로 만든 ‘감말랭이’ 전국적 명성
90년대 후반 상평마을에서 최초 가공
마을가구 50호중 40호가 생산에 주력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단맛으로‘인기’



#1. 청도반시의 시조 나무

청도반시는 청도의 대표적 명물이다. 이른바 ‘씨 없는 감’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다. 달콤하고 촉촉한 식감에다 먹기에도 편한 청도반시는 청도군민의 자랑이자 지역 농민의 대표 소득원이다. 매년 가을마다 청도에서는 청도반시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군내 곳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감 가공식품도 인기다.

이러한 청도반시의 기원이 되는 감나무가 있다.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의 산 어귀에 자리한 ‘청도반시 시조목’ 두 그루가 주인공이다. 현재 청도지역 감나무 상당수는 이 시조목의 가지가 퍼져나가 자란 것이다.

시조목이 품은 세월만 어언 반천년이다. 이 특별한 감나무는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신인 일청재(逸淸齋) 박호(朴虎)에 의해 청도에 들어왔다. 일청재는 1512년(명종 1) 식년시 대과에 급제한 인물로 효심이 지극했다. 그는 부모에게 대접할 생각으로 평해(울진)군수 재임 당시 명나라 사신으로 떠나던 친구에게 감나무 가지를 갖다줄 것을 부탁했다. 입수한 나뭇가지는 고향 청도로 가져와 접을 붙였다. 감나무가 성장하자 놀랍게도 씨없는 감이 열렸다. 형태는 둥글납작했으며 그 맛이 사뭇 달면서도 부드러워 먹기가 좋았다. 이후 시조목은 자신의 가지를 청도 전역에 퍼뜨리며 청도반시의 시초가 됐다.

청도반시의 기원을 중국 대륙으로 추정하는 것은 지금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중국·일본과 서남아시아 일부 및 남유럽이 세계적인 감 주산지이지만, 중국의 감 생산량이 타지역을 압도하고 종류도 많다. 500년 전 특정 형질의 감나무 가지가 조선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조목이 자리한 신촌리 일원은 청도반시의 발원지답게 곳곳이 감나무밭이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대나무숲 한가운데에 시조목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시조목은 4~5m 높이의 보통 감나무와 달리 10여m의 높이를 자랑한다. 왼쪽에 자리한 나무가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기둥 곳곳에 보호를 위한 충전재가 덧씌워져 있지만, 그 위용만큼은 청도지역 감나무의 큰어른답게 당당하고 고고하다.

시조목 아래를 자세히 살펴보면 감나무 가지를 접붙인 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 나무 밑동은 감나무목 감나무과의 고욤나무로 위쪽의 가지보다 색깔이 짙다. 고욤나무는 뿌리가 튼튼하고 싹을 잘 틔우는 특성이 있어 감가지를 접붙이기에 좋다. 시조목이 키가 큰 이유는 주변의 대나무 탓이다. 대나무숲에서 빛을 쬐고 살아남기 위해 감나무 스스로 키를 키운 것이다.

#2. 감나무 성장의 최적지

청도반시가 접붙이기를 통해 퍼져나간 것은 과일나무의 성장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일나무는 종자를 통해 품종 특성을 전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청도반시에서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씨를 심더라도 청도반시는 잘 열리지 않는다. 반면, 접붙이기를 하면 나무의 형질이 그대로 전달되기에 청도의 감나무들은 품종의 단일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청도에는 감에 씨가 맺히는 일명 ‘돌감’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청도반시의 기원을 찾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다. 청도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이 청도반시 연구를 위해 일청재가 군수로 재직했던 울진 지역의 감나무들을 살핀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청도반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청도반시 감나무가 유달리 청도에서 잘 자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청도가 과일나무의 성장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과수재배의 중심지가 경북인데, 그중에서도 청도와 영천, 경산 등이 과일로 유명하다. 해당 지역은 일교차가 커서 과일에 저장되는 영양소의 양이 많아 과육이 알찬 것이 특징이다. 특히 청도의 경우 겨울 최저기온이 영하 17~20℃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어 감나무가 동해(凍害)를 입지 않는다.

청도의 토양도 감나무의 성장에 적합하다. 청도의 흙은 수분을 적당히 품는 특성이 있어 극심한 가뭄에도 과수농가의 피해가 적은 편이다.

현재 청도에서 생산되는 청도반시는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청도반시는 수분이 많아 동일한 당도의 다른 과일과 비교해도 식감과 맛이 좋다. 특히 청도지역에서는 서리 내리기 전의 감을 ‘물감’으로 부르는데 그 맛이 더 부드럽다고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최근에는 반시를 얼려서 푸딩처럼 떠먹는 아이스홍시가 인기다. 특히 청도반시의 경우 감말랭이 등 감 관련 식품을 만들기에 좋다. 단단한 씨가 없어 가공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3. 감말랭이로 변신한 청도반시

청도반시로 만드는 감말랭이의 인기도 상종가다. 감말랭이는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단맛으로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감말랭이는 1990년대 후반 매전면 상평마을에서 전국 최초로 가공을 시작했다. 농지면적이 좁아 고소득을 올리기 힘들었던 상평리 주민들이 감말랭이 제조법을 터득한 것이 청도지역 전체로 퍼져 지역 농가소득 증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예전에도 감을 말려서 먹는 경우는 있었지만, 상평리처럼 감말랭이를 대량으로 생산한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감말랭이 제조과정의 번거로움에 있다. 그냥 말리기만 해서는 떫은맛이 나는 데다 온도를 잘못 조절하면 감이 물러지거나 변질되기 때문이다. 상평리 주민들 또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입에 착 감기는 맛의 감말랭이를 만들 수 있었다.

감말랭이 생산은 청도반시의 본격적 생산시기인 추석 전후로 이뤄진다. 수확한 청도반시는 감 특유의 떫은맛을 없애는 탈삽과정에 들어간다. 이후 껍질을 제거한 감을 3~5조각으로 자른 후 곰팡이 방지를 위한 훈연 및 숙성·건조과정을 거치면 감말랭이가 완성된다. 완성된 감말랭이는 대구·경북은 물론 서울 등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며 달콤한 ‘청도의 맛’을 전파하고 있다.

감말랭이에 대한 상평리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상평리 김정오 이장은 “20여년 전 뜻있는 마을주민 몇이 모여 감말랭이 가공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마을 50호 중 40호가 감말랭이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평리 입구의 도로변에는 감말랭이가 시작된 마을임을 알리는 표석이 서 있다. 표석에는 ‘청도의 대표적 특산품인 감말랭이는 1998년 이곳 상평마을 주민들이 전국 최초로 가공(중략) 후손에게 알리고 자긍심을 높이고자 이 표석을 세웁니다’라고 적혀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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