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재단부터 시립희망원까지…터지는 사건마다 해결책 마련 위해 싸워

  • 서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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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4   |  발행일 2018-11-24 제5면   |  수정 2018-11-24
20주년 우리복지시민연합과 대구 복지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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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복지시민연합이 지난 21일 대구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20주년 기념식 및 북콘서트를 열고 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제공>

우리복지시민연합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1989년 대학생 동아리 모임에서 출발한 우리복지시민연합은 1998년 11월 정식 출범했으며, 사회복지시설 비리·복지마피아 문제·교육·의료·노동·시민생활 전반에 걸쳐 줄기차게 편견과 권력에 부딪쳐왔다. 20년전 보수적 색채가 강했던 지역에서 시작한 시민단체 활동은 수많은 비난과 강한 권력 앞에서 무너질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들은 이를 악물고 다시 뭉쳤다. 1997년 시설비리를 고발하자 수십명의 거주인을 동원해 언론사에서 농성까지 하는 사태로 번진 영락재단 비리사건, 2009년 아동매매 불법입양 사건,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 사건, 2016년 대구시립희망원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사건을 이슈화시켜 시민에게 이를 알리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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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복지시민연합이 지난 21일 대구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마련한 20주년 기념식 및 북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복지시민연합 제공>

지역 시민사회복지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로 평가받고 있는 우리복지시민연합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6일 ‘대구 사회복지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말하다’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향후 20년을 위한 방향을 잡았다. 이어 지난 21일 대구 프린스호텔 별관에서 기념식을 열고 ‘대구에서 복지운동을 하다’란 주제로 북콘서트를 가졌다.

김규원·감신 우리복지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우리는 우공이산의 집념으로 복지운동의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숲으로 바꿔놓았으며 이제는 그 숲을 치유의 숲으로 만들려 한다”며 “이번에 출판된 책은 지난 20년, 대구사회복지운동의 중요한 기록으로 많은 사람에게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린 내용을 사건 중심으로 추렸다.


1. 태동기(1989∼1998년)
‘고인물’ 기존 복지계와 대립각


1997년 대구지역은 시설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2월 영락재단 비리 사건에 이어 시설 비리가 계속 터졌다. 결국 4월 시민단체들은 ‘사회복지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를 발족하고 시설비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지자 일부 복지계가 ‘대구사회복지종사자연합’을 꾸려 맞섰다.

1997년은 우리사회복지연구회(우리복지시민연합)가 기존 복지계와 첫 대립각을 세운 해였다. 지역 복지계는 학연·혈연·지연으로 형성돼 있어 건전한 비판세력이 자리잡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시민사회단체가 성명서와 집회 등의 대응으로 비리척결을 외치자 일부 복지계가 이를 대구 전체 복지계 종사자 문제인 것처럼 물타기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는 복지계 내부동요를 막고 외부확산을 차단하는 방편으로 이후에도 빈번하게 이용됐다. 이런 집단행동은 자연스레 배후세력 존재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때부터 ‘복지마피아’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 와중에 한 일간지 기자는 대형복지시설의 불법입소·불법거래 증거를 파악하고도 끝내 기사화하지 않았다. 당시 그 내용이 기사화됐다면 대구의 기형적인 복지는 상당부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2. 도전기(1999∼2008년)
지하철참사 진상조사 위해 힘모아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화재가 발생해 192명이 사망하고 143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대구지역 37개 시민단체들은 긴급모임을 갖고 희생자 추모·참사의 진상규명 등을 위해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참사에 대한 시와 도시철도공사의 대응은 안이했다. 과거 발생한 참사들의 최악의 사례만 모아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공사의 대처는 승객을 유독가스와 불덩이 속으로 몰아넣은 것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사고 현장에 열차가 불타고 있고, 접근로 역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구조활동 등은 단순한 사고에 그칠 수 있는 사건을 대참사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 같은 초기대응 실패는 곧 공사의 조직적인 은폐 및 조작, 시의 사고현장 훼손과 전동차 운행 강행이라는 무리수로 이어졌다.

특히 지하철의 조속한 운행 등을 이유로 물청소로 사고현장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대구시장과 시는 희생자 가족은 물론 대구시민에게 대참사와 은폐주범으로 지목됐고, 이후 대구시는 사고수습의 전권을 ‘중앙정부특별지원단’에 넘기고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3. 전환기(2009∼2013년)
어린이집 교사 블랙리스트 발견


2013년 4월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정보교육교사가 강제적 임금삭감 또는 퇴직을 강요당하자 ‘보육협의회 비리고발고충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 과정에서 시설연합회의 블랙리스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당시 원장은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 급히 직원을 채용하면서 자격조건이 되지 않았지만 뽑게 됐다며 정씨에게 문건을 보여줬다. 그 문건이 바로 시설연합회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였다. 이때 정씨는 블랙리스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동안 입사가 안됐던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어린이집 나들이를 갈 때 15인승 차량에 50명을 태울 것을 강요받았고 원장 딸이 쓰다남은 김밥 재료로 저녁식사를 제공하라는 비인간적 대우에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검찰에서 해당 어린이집 보육교사 5명이 퇴사를 하게 된 사실도 추가로 알게 됐다.

시설연합회는 이 5명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원장들에게 공문으로 보내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후 우리복지시민연합 등은 기자회견, 노동청 고발 등 투쟁을 진행했다. 달서구의 특별감사 등을 통해 대구시는 ‘어린이집 공공성 강화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일부 원장들의 비리 횡포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4. 성장기(2014∼현재)
희망원사태 관피아 문제 드러나


대구시는 2014년 연 130억원을 지원하는 대구시립희망원에 대구시 공무원 9명이 친인척들을 특혜 채용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들을 솜방망이 처벌했다. 시 감사관실은 특혜 채용을 확인했지만 3명만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고 나머지 공무원에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3명도 ‘견책’ 처분에 그쳤다.

대구시 관피아의 표적이 된 희망원은 대구시립시설로 다른 복지시설과 달리 야간근무 없이 주 5일 40시간에 공무원 임금을 주는 전국 유일의 사회복지 사업장이었다. 특히 이들은 희망원을 잘 아는 관련부서와 예산부서 소속으로 조직적으로 지원한 의혹을 받았다.

이들은 희망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지도감독하는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 사건은 각종 갑질·유착·부패 의혹이 짙은 사건이었으나 대구시는 엄정히 문책하지 않았다. 이들은 아직도 대구시청 주요요직에서 근무 중이다.

초기에 바로잡지 못한 희망원 사태는 결국 2016년 9월 언론과 시민단체의 폭로로 더 큰 추악한 진실이 밝혀졌다. 국정감사와 대구시 감사·검찰조사 등이 이어졌다. 희망원에서는 6년8개월간 전체 생활인의 4분의 1(309명)이 사망했고, 그 중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의문사도 드러났다. 불법감금·부당노동 강요·폭행 및 갈취에, 국가보조금 허위청구 및 급식비 횡령(연간 4억원대) 등 비자금도 조성됐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셈이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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