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이영희 기증 복식, 새바람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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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0   |  발행일 2019-05-10 제23면   |  수정 2019-05-10
20190510

국립대구박물관이 올해 전반기 보기 드문 특별기획전을 선보인다. ‘이영희 기증 복식, 새바람’으로 오는 18일부터 9월15일까지. 개막식 17일은 그의 1주기를 기리는 날로 정해졌다. ‘죽기 하루 전까지 쇼를 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던 그가 지난해 갑자기 폐렴 후유증으로 작고하자 ‘패션계의 큰 별이 졌다’는 애도와 함께 사계(斯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획전의 ‘새바람’은 고인이 최고의 옷으로 꼽은, 프랑스 파리 컬렉션 출품작 ‘바람의 옷’을 계승·발전시켜 나가자는 후대들의 염원이 깃들여 있는 것으로 수용해도 됨 직하다.

패션 디자인은커녕 한복에는 더더욱 문외한인 일반인에게 한복전시회는 생소하다. 한복 명장 이영희를 어렴풋이 알거나 또는 여배우 전지현의 시외할머니로 기억을 하는 알 만한 사람들조차 한복 방면에는 오불관언의 태도를 보이기 일쑤다. 그러나 한복 패션계의 거장에 사연과 스토리를 입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구시 장원용 소통특보가 칼럼거리로 어떻겠느냐며 소개한 이영희 선생과 그 유가족, 그리고 국립대구박물관 사이에 맺은 인연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활용되고도 남을 만큼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 ‘모든 작품과 소장품 모두 기증할 생각’이라고 밝혀 온 고인의 유지(遺志)가 유족들에 의해 받들어져 그의 유품 대부분이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올해까지 기증받은 한복 관련 작품은 모두 8천300여점이나 된다. 지난해 1차로 1천여건을 기증받았을 당시 보기드문 기증 사례로 홍보를 하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일반인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처럼 워낙 작품 수가 많다 보니 상설 전시는 엄두도 못내고 대부분은 수장고에 보존처리되며, 오는 전시 기간인 7월쯤에는 교체전시를 통해 기증 자료를 분류·정리하는 모습까지 전시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립대구박물관이 이 명장의 작품들을 가장 잘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간택된 것 같다는 게 김현희 학예연구실장의 분석이다.

이영희 명장은 한복의 현대화와 세계화에 일생을 바친 타고난 ‘한복 외길’ 인생이었다. 40대의 늦은 나이에 한복의 길에 입문했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남다른 색감을 익혔고, ‘지독하게 한복을 사랑한 덕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 만방에 자랑하게 됐다.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했고 이후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은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로 ‘가장 현대적이면서 바람결에 따라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는 자평과 함께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는 외신의 극찬을 받았다. 이전까지 ‘한국의 기모노’라는 뜻의 프랑스어 ‘기모노 코레’에 ‘한복(Hanbok)’이란 제 이름을 찾아준 주인공도 바로 그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박물관을 연 것도 한복 세계화의 거점을 마련하는 차원이었다. 한복 세계화의 가능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한복으로 번 돈을 한복에 모두 투자한다’는 신념과 투합했다. 온 사재를 쏟어넣었지만 박물관이 협소해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어려웠던 점을 생전의 그는 못내 아쉬워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어떤 한 기관이나 개인이라도 우리 문화를 좋아하는 분이 하루라도 빨리 나와서 아주 제대로 된 박물관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그렇게만 된다면 한복의 세계화는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그의 염원이 거의 모든 소장품의 국립대구박물관 기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영희 명장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을 받드는 일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특히 섬유·한복 패션의 본고장인 대구경북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이영희 명장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여고를 나온 토박이다. 생애와 업적을 현창(顯彰)함은 물론 그가 기증한 소장품들을 상설 전시할 박물관 건립 또한 필요하다. 명장의 유훈(遺訓)에 충실하자면 그의 유품들이 예술로 소비될 뿐만 아니라 한복산업용으로 활용돼야 한다. 전시 인프라는 물론 연구·전승을 위한 소프트웨어까지 구축돼야 하는 이유다. 대구 사람, 한복명장 이영희의 한복 미학은 새로 탄생돼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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