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어로 바라보는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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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  발행일 2019-05-16 제30면   |  수정 2019-05-16
매년 신조어 500여개 수집
20~30%정도가 살아남아
장수하는 신어의 특징중엔
새로운 범주화와 가치부여
우리삶의 변화 양상을 담아
20190516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2018년 신어 조사 자료집의 최고 빈도 신어는 ‘판문점 선언’, 2위는 ‘미투 운동’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매년 펴내는 신어 자료집의 빈도순 목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015년 1·2위 신어는 각각 ‘셀카봉’ ‘땅콩 리턴’이었고, 2016년은 ‘흙수저’ ‘아재 개그’였다. 또 예년과 다르게 5월에 대선이 있었던 2017년은 ‘장미 대선’ ‘벚꽃 대선’이 각각 4위와 6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고빈도 신어에 대한 일련의 목록은 신어를 대략 가볍고 격이 낮은 표현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인상적인 평가가 다소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해마다 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어휘를 그해의 신어로 수집하는 것과 그러한 신어를 실제 사전에 등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매년 500개 내외로 수집되어 온 신어 중에서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 안정적으로 언어 공동체에 정착하는 신어의 수는 그리 많지 않고, 일반적으로 정착한 신어만이 사전에 등재되기 때문이다. 언어권별로 신어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연구가 수행되어 왔는데, 한국어의 경우 10여 년간의 추이 조사에서 대략 20~30%의 신어만이 살아남아 사전 등재의 후보 대상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다른 말로 70~80%의 신어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신어의 남발과 남용을 고민하거나, 교육적으로 이러한 신어의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를 논쟁하는 것은 별로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다.

신어의 삶과 죽음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빈도’ 즉, 우리가 얼마나 많이 사용하느냐다. 웹의 언어 사용 비중이 높아진 최근에는 웹에 등장한 대중매체에서 그 어휘가 얼마나 사용되어 왔느냐를 자동으로 분석하여 신어의 생존 여부를 측정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익숙하거나 자주 사용된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판단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도별 빈도와 출현한 기사 건수 등이 객관적인 기준으로 활용된다. 2015년 옥스퍼드 온라인 사전은 ‘Manspreading’(쩍벌남), ‘wine o’clock’(와인을 마시기 좋은 시간), ‘butt dial’(바지 주머니 안에 넣어둔 전화기의 버튼이 눌려 전화가 잘못 걸리는 일) 등을 새로이 등재했는데, 이들 역시 언중에게 인정을 받아 충분한 빈도로 쓰인 예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류의 신어가 이러한 빈도의 기준을 충족할까? 오래 살아남는 신어의 비밀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그 요인이 한 마디로 설명되지는 않는 듯하다.

정착된 신어가 새로운 현상이나 제도 외부로부터 들여온 새로운 문물을 가리키는 좁은 기능만으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다. 2005년도 이후의 신어들을 장기 추적해 보면, 오래 살아남은 신어의 부류에는 새로이 나타난 현상, 제도에 대한 명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어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신어가 가진 다른 기능 중 대표적인 것은 새로운 범주화나 가치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엄친딸’은 단순히 ‘엄마 친구의 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교하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엄마가 늘 나와 비교하는 대상을 새롭게 범주화한다. 일반적으로 엄친딸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완벽한 조건을 가지며, 아들 버전인 ‘엄친아’ 역시 마찬가지다. ‘훈녀’나 ‘훈남’도 유사한데 예로부터 잘생긴 남녀는 늘 있어 왔지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훈훈할’ 정도라는 감성적인 기준을 더해 새롭게 만들어진 말이다. 이것 역시 외적 특성만이 아닌 새로운 기준으로 잘생긴 사람을 범주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어가 가진 새로운 범주화의 기능이라 볼 수 있다. 2005년 신어인 ‘다둥이 가족’은 다자녀 가정이 유표적인 존재가 되면서 생겨난 말이고, 2006년 ‘골드미스’는 능력 있는 미혼 여성이 증가한 당시 현실에서 새롭게 등장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신어는 지칭할 표현이 마땅히 없는 새로운 사물이나 제도를 명명하는 것을 넘어서, 언중이 가지는 언어의 창조성, 새로움의 추구, 웹과 모바일을 통한 언어유희의 향유 등을 보여주며 이러한 요인들이 뒤섞인 복합적인, 존재 이유를 가진다. 언어학자가 아니더라도 신어를 통해 우리 삶의 변화 양상과 언어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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