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사투리의 맛과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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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7   |  발행일 2019-06-27 제30면   |  수정 2019-06-27
시위현장에서 들은 “발러!”
택시기사가 말하는 ‘깡철이’
‘개락같이’ 피었다는 제비꽃
구수하고 정겨운 사투리는
우리들이 지닌 멋이 아닐까…
[우리말과 한국문학] 사투리의 맛과 멋
김주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의 일이다. 우리는 그날도 서울 충무로에 모여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고 밀고 밀리는 긴박한 사이 시위대 누군가로부터 “발러!”라는 말이 전해왔다. 나는 밀치고 나가려는데, 대학원 동기가 손을 당기면서 “발르자고” 하였다. 그의 손에 이끌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는데,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그때 ‘발러’라는 말은 ‘물러나라’ ‘도망쳐라’라는 말이라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것을 ‘치받고 나아가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다. ‘토껴!’ ‘토끼자!’라고 했더라면 단박에 알아챘을 것을.

2001년 2월에 대구에 이사 온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따라 비가 오다, 해가 나다, 다시 싸락눈이 내리는 등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길이 제법 질척거려 택시를 탔는데, 나이 든 기사분이 “깡철이 심술을 부리네!”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깡철이 몰라요? 승천하지 못한 구렝이” “그럼, 이무기 말인가요?” “그래요. 그 깡철이 심술부리면 날씨가 이렇게 요상시럽단 말이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깡철이가 대구의 사투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그 말을 했을 때 학생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 ‘아하, 말도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해였던가, 학기 중반 무렵에 메시지가 왔다. “아들아 수업 끝나고 족구장으로 와.”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홀로 되신 어머니가 나한테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는데. 황망한 겨를에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과대표가 보낸 것이었다. 동기들에게 ‘아(이)들아 수업 마치면 족구장에 모이자’고 한 것인데, 잘못하여 나에게도 보낸 것이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무언가 기분이 상쾌해졌다.

또 한번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걔 참 낭창해.” “그러게 말이야, 얼굴은 해사한데.” 나는 그 말이 무언지 몰랐다. ‘낭창거리다’는 말을 아는데, 낭창하다니? 그래서 동료 교수한테 물었다. “낭창하다가 무슨 말이에요?” “어리바리하고, 뭐랄까, 설명하기는 어렵고… 겨울연가에 나오는 유진이 역 있잖아, 그런 인물을 가리킨다고 보면 돼요.” ‘아 그런 말이었구나.’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단박에 깨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대구 지역에서 청소년 사이에 유행하는 사투리라는 것도 알았다. 어떤 사람은 그 말을 알아야 대구 사람이라고 했다.

몇 년 후 시를 가르치는 동료 교수와 식사를 하고 학교 야외박물관을 거닐었다. 박물관 주변에는 잔디 사이로 제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것을 보고 그는 “제비꽃이 개락같이 피었네”라고 했다. 아! 잊고 있었던 말, 그 말을 나는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들었고 심심찮게 썼는데, 대처에 나온 후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개락같이 피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최근 들어 ‘오픈사전’에 ‘개락’이 ‘홍수’ 또는 ‘많다’라는 뜻으로 동해안 북부지방 사투리로 소개된 것을 보았다. ‘개락같이’라는 말은 경북 지역에서도 많이 쓰였는데,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목월은 ‘사투리’라는 시에서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고 했다. 그 시를 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시인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떠오를 것만 같다. 해맑고 천진한 모습이. 계속해서 그는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고 노래했다. 아, 목월이야말로 사투리의 진맛을 제대로 아는 시인이었을 것이다. 사투리는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정겨운 맛이 난다. 그것은 우리들이 지닌 멋이 아닐까!
김주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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