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이름말이 가진 힘과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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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1   |  발행일 2019-07-11 제30면   |  수정 2019-07-14
자율 없는데 ‘야간자율학습’
이 거짓이 사회 신뢰 좀먹어
이름이 순하지 않고 틀리면
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아
名實이 서로 맞게끔 붙여야
20190711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이름말(=명칭어)은 그 힘이 세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80년 이전에 ‘보충수업’이라고 부르던 학교 수업이 있었다. 신군부 집권 후 과외가 폐지되면서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야간자율학습’이란 이름말로 학생을 강제로 학교에 붙들어 두고 밤늦게까지 공부시키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요즘은 이 방식이 없어진 곳도 있지만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야간자율학습’에 들어간 ‘자율’은 학생의 처지에서 보면 거짓말이다. 전혀 자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이란 거짓의 탈을 쓴 ‘야간자율학습’이 40년 가까이 계속되었고, ‘야간강제학습’을 당하면서 자란 청소년들에게 큰 해악을 끼쳤다. ‘자율’이 전혀 아닌데도 그럴듯하게 포장한 이름말에 묶여서 30여 년을 살아온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거짓말로 적당히 포장하여 이름말을 붙여도 된다”는 생각을 스스로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길러 왔을 것이다. ‘자율형사립고’의 ‘자율’은 놔둬도 과연 괜찮을까.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낱말일수록 그 힘이 세다. 특히 국민 모두가 자주 접하는 이름말은 사려 깊게 지어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이란 이름말은 한국 사회의 신뢰 기반을 좀 먹는 데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가 부닥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신뢰의 붕괴다. 신뢰는 사회를 지탱하는 밑바탕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일이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신뢰의 붕괴는 대부분 힘 있는 자들의 부정과 부도덕에서 비롯된다.

위나라 왕이 공자를 초빙하여 정사를 맡기려 했을 때 제자 자로가 스승에게 여쭈었다. “스승님은 장차 무엇을 먼저 시행하시렵니까?” 공자가 답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 잡겠다(正名).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順)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공자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정명이야말로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체로 본 것이다. ‘名=이름’을 넓게 말하면 언어이고, 좁게 말하면 ‘이름말’이다.

정치적 의미가 강한 이름말은 그 힘이 특별하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나라 이름을 줄여서 ‘한국’이라 부르고, 북쪽에서는 ‘조선’이라 칭한다. 남쪽은 ‘남한’과 ‘북한’이란 이름말을 쓰고, 북쪽은 ‘북조선’과 ‘남조선’이란 이름말을 쓴다. 양측은 이 점에 있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래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편찬하려는 사전의 이름도 ‘겨레말사전’이라 칭하고 있다. ‘한국’의 ‘한(韓)’은 한강 이남의 삼한(三韓)에 역사적 뿌리를 둔 것이어서 북쪽이 배제되어 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단군조선에 역사적 뿌리를 둔 것이어서 ‘한’과 다르다. 나라 이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힘은 크고 무거운 것이어서 ‘한국 대 조선’의 이름말 대립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사투리 이름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는 도 이름이 들어간 ‘경상방언’ ‘전라방언’ ‘서울방언’ ‘평안방언’ 등의 이름말을 쓴다. ‘경상방언’을 ‘동남방언’, ‘전라방언’을 ‘서남방언’, 충청·서울·경기를 묶어서 ‘중부방언’, ‘평안방언’을 ‘서북방언’, ‘함경방언’을 ‘동북방언’이라 부르는 학자도 있다. 내가 ‘경상방언’이나 ‘평안방언’과 같이 도명이 들어간 이름말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일반인 누구나 이 이름말을 들으면 바로 어느 지역 사투리인지 그 뜻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상방언’이란 이름말은 바로 이해되지만 ‘동남방언’은 이 방면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어야 알 수 있다. ‘서북방언’과 같은 사투리 이름은 30대 이하 보통 젊은이 대부분이 알아듣지 못할 듯하다. 학술 용어도 대중적 이해가 높은 것이 더 낫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방향을 기준으로 붙인 사투리 이름말은 중앙중심의 사고방식이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중앙지향적이다. 지역 말의 특징을 드러내야 하는 사투리까지 ‘중부’를 중심으로 나머지를 바라보는 이름말을 붙여야 할까. 이름말은 우리의 생각에 크게 작용한다. 명실(名實)이 서로 맞는 이름말을 붙이고 쓰는 일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 참으로 요긴한 일이다. 정명(正名)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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