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파리를 죽이지 마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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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0-03-12  |  발행일 2020-03-12 제면
조선시대에도 전염병 만연

정약용은 '조승문'지어 애도

"파리는 굶어죽은 자의 전신"

비판 칼날 위정자에게 돌려

위기때 정치능력 발휘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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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나면서부터 병마와 투쟁하며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왔다. 커다란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첨단 의학기술이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를 현격하게 저하시켜 인간의 기대수명을 연장시켜 주기는 했지만, 전염병은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광우병, 탄저병, 사스, 돼지콜레라, 조류독감 등은 물론이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중국 우한발 폐렴인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에도 자연재해와 함께 전염병은 지속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00만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경술년(1670)과 신해년(1671)의 대기근이다. 이 시기는 지구 전체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 소빙기(Little Ice Age)가 형성되었으며, 농업 생산의 감소로 인해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러한 대재앙은 왕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다산 정약용의 시대에도 기근과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는 이를 목도하며 파리를 조문한다는 '조승문(弔蠅文)'이라는 장편시를 지었다. 경오년(1810) 여름에 파리가 극성을 부려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해 산골짜기까지 만연하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은 괴변이라며 독한 모기약을 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파리 소탕작전에 나섰다. 다산은 여기에 촉발돼 '조승문' 한 수를 지었던 것이다.

다산은 이 시의 서문에서 "아! 죽여서는 아니 된다. 굶어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 전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해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했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고 했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에서 구더기가 생기고, 구더기가 파리로 변해 날아든 것이니, 파리는 결국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다산의 '조승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죽은 백성의 몸에서 파리가 나와 우리의 밥상까지 날아들었으니 실컷 먹게 하자고 했다. "아! 이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와 모이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애도의 정치학과 함께 다산의 애민정신을 읽게 된다. 그가 '파리=백성'으로 받아들여 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의 '조승문'은 비판의 칼날을 위정자로 향하게 했다. 글의 마지막에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로 날아가 구중궁궐에 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뭄과 홍수 등의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지만, 여기에 가혹한 징수까지 가해지니 백성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임금에게 날아들어 그들의 슬픔을 하소연하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도 없고, 개학도 몇 주 늦추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일수록 위정자의 정치적 능력이 특별히 발휘돼야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이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산이 지하에서 다시 일어나 '조승문'을 새로 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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