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완 유메타랩 대표
플랫폼에 서서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시대의 마지막 칸에 올라타 있는가. 산업혁명의 매연 속에서 어떤 자는 공장을 소유했고, 어떤 자는 공장에 소유되었다. 인터넷이 세계를 갈랐을 때도 같았다. 어떤 자는 코드를 썼고, 어떤 자는 코드 한 줄에 지워졌다. 역사는 언제나 그런 방식이다.
다만 이번에는 다르다고들 한다. 이번에는 사다리 자체가 타들어간다고. 인간의 지식은 한때 희소했다. 변호사의 한 시간, 의사의 한 시간. 그 한계비용이 가격을 만들었고, 그 가격이 부를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것의 가격이 0으로 수렴하고 있다. 인지 노동의 자동화는 도피처마저 삼킨다. 마치 출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계층 상승의 사다리였던 직업이 가장 먼저 자동화되는 영역이 되어버렸다고들 한다. 대학 졸업장이 약속했던 미래는 더 이상 없다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다고. 산업혁명은 100년이 걸렸지만, 인터넷은 30년, AI는 연 단위로 패러다임을 갈아치운다고. 어제의 전문성은 오늘의 기본값이 되고, 내일의 진입장벽이 된다고. 그런데 잠시 멈춰서 다시 본다.
사다리가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다리의 모양이 바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직공의 손이 가치를 잃었을 때, 기계공의 손이 새로운 가치를 얻었다. 그때도 사람들은 "이번엔 끝이다"라고 말했다. 종말론은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문법이다. 그러나 종말은 매번, 다른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생성의 한계비용은 0으로 수렴할 것이다. 그러나 판단의 비용, 책임의 비용, 신뢰의 비용은 그렇지 않다. 의사의 한 시간이 비싼 이유는 진단을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진단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기계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그 답을 보증하는 인간의 무게는 오히려 무거워진다. 사라지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옛 형태다.
차고에서 시작하던 시대가 끝났다고들 한다. 모델을 만드는 일에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델을 쓰는 일은 정반대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본 없이 시작하는 자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무기다. 진입장벽은 역사상 가장 낮다.
5년에서 10년. AGI라는 단어가 그 끝에 있다. 그 시간표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표가 맞다고 해서 결말까지 맞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인지 노동을 AI가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인간이 인지 노동에서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척도였던 시대가 끝난다면, 우리는 처음으로, 노동이 아닌 것으로 인간을 정의해야 하는 시대를 맞는 것이다. 그것은 위협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플랫폼에 서서 망설이는 동안에도 시계는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시계가 간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의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계가 가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멈춘 시계 앞에서는 누구도 출발하지 않는다.
아직 낮이다. 해는 지평선에 걸려 있고, 그림자는 길어졌지만, 빛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동안에도 사람은 드나든다. 닫히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 들어서야 할 이유가 된다. 물론 낮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비로소 낮이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속도는 우리가 망설이는 속도보다 빠르지만, 우리가 걷기 시작하는 속도보다는 느리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어쩌면 이 구절은 밤을 두려워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낮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낮이 짧다는 사실은, 낮을 슬프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 낮을 빛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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