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만찬장에 '전계아(煎鷄兒)'라는 생소한 이름의 요리가 올랐다. 조선 중기 안동의 유학자 김유가 쓴 고(古)조리서이자 보물인 '수운잡방'에 수록된 전통 음식이다. 매운 고추가 전래되기 전 참기름에 지진 닭고기를 간장과 초피로 담백하게 조려낸 것으로, 안동찜닭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전계아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한 영남 남인의 '접빈 정신'이 담긴 음식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명분과 의리를 지켰던 남인들은 궁핍할지언정 옹졸하지 않았다. 조정의 핍박으로 살림은 피폐해도 찾아온 손님에게 가장 귀한 것을 내어놓는 성의를 보였다.
이재명 정부가 강경 우익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영남 남인의 상징적 요리를 대접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단순한 환대를 넘어 고도의 정치적·외교적 함의가 깔려 있다. 우선 다카이치 총리를 향한 서늘한 '선비식 경고'로 읽힌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역사 왜곡에 앞장서 온 인물에게 영남 남인의 숨결을 통해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역사적 신의와 염치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영리한 포석이다. 영남 남인의 유산이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대구경북 주민들에게 정권의 포용성과 진정성을 어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재명 정부의 '계산'이 무엇이든 간에 영남 남인의 음식은 대한민국을 대표해 외국 정상을 맞이하는 최고의 외교 카드로 선택됐다. 대구경북의 정신과 문화가 대한민국 국격의 중심에 서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500년 전 전계아 한 그릇에 담겼던 가치를 대구경북의 정치인들도 되새겨야 한다.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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