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파리1대학 법학박사
헌법 제114조 제1항에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라고 되어 있다. 한 문장이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헌법기관으로 최초 선거관리위원회를 1963년 창설했다. 위원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이 아니고는 파면되지 않는다. 선관위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도, 국회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기관이 되었다. 그렇기에 선관위는 오랫동안 감사원의 직무감사 범위를 둘러싼 헌법적 논쟁이 지속되어 왔고, 국회 등 정치 권력으로부터 강한 독립성을 보장받는 기관으로 '성역'에 가까운 지위를 누려왔다. 막강한 권한과 지위 때문인지 선관위는 그동안 감사원의 감사 문제를 둘러싼 논란, 채용 비리 의혹,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논란 등으로 국민에게 적지 않은 불신과 실망을 안겼다. 6·3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사태라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줄을 서다 발걸음을 돌린 유권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도 집계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심장이라는 선거의 근간이 휘청거린 아찔한 상황이다. 이는 단발적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표출이다. 헌법이 보장한 독립성은 선관위의 책임을 물을 외부 감독과 책임 추궁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패로 기능해 온 측면이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은 선거관리기관의 권한보다 사법적 통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2021년 베를린 선거에서는 투표용지 부족과 장시간 대기, 절차상 오류 등이 발생했다. 독일 사회는 이를 단순한 실수로 덮지 않고 베를린 일부 지역에 재선거를 함으로써, 선거관리 과정 전반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 중요한 것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실수에 대해 검증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가 작동했다는 점이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위원회는 선거법 준수를 감독하지만 절대적 권력을 갖지 않고 실제 선거는 지방정부가 관리한다. 법원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고, 의회와 언론이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미국은 더욱 강력한 분산형 구조를 갖고 있어, 권한이 한곳에 집중된 한국과 같은 형태의 중앙선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주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법원이 이를 감독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선관위는 독립성은 강하지만 책임성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기관이 스스로의 공정성에 의문을 던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선관위는 선거마다 반복되는 사전투표 불신 논란에 방어적으로만 대응했고,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에는 인색했다. 인사 교체와 수사만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선관위라는 헌법기관 자체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국정조사로 다음 세 가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첫째, 투표용지 수량 결정이 어떤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는가. 둘째, 사전투표 관리 체계의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셋째, 독립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를 견제할 민주적 책임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감시자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Quis custodiet ipsos custodes?)"라는 유명한 질문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선거관리위원회를 바라보며 던지는 질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감시자는 자신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검증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선관위가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진정한 주춧돌이 되려면, 국민의 감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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