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형 문화평론가
72년 만에 부활한 미국여자프로야구 WPBL 개막전에서 한국의 김라경 선수가 뉴욕 하이츠의 투수로 선발 등판했다. 역사적인 첫 투구, 첫 탈삼진의 영예도 차지했다. 아쉽게 첫 승리는 놓쳤지만,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 선수가 마운드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김현아, 박주아 선수도 각각 보스턴과 SF에서 활약 중이니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미국에서 여자가 처음 야구를 한 기록은 무려 18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사' 여대 야구부가 그 주인공인데, 성평등 투쟁의 일환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1890년대에는 통이 큰 바지인 '블루머'를 입은 소녀 야구팀들이 들불 번지듯 유행했다. 미 전역에 100개 넘는 팀이 결성되었다고 하니 가히 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학생 야구 내지는 세미프로 정도에 불과. 진짜 '프로'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는 여자 야구는 1940년대에 태동한다.
1941년 진주만 공습 후, 미 전역은 입대의 열기로 가득 찬다. 그야말로 이 시기는 의사에게 뇌물을 주고 체력심사 결과를 조작해서라도 입대하고자 애를 썼던 시절. 이제 길거리에 젊은 남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지자, 미국은 군수공장을 돌릴 자원마저 부족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때 나왔던 포스터가 바로 그 유명한 '로지 더 리베터'였다. 천공기를 든 이 근육질 여성의 프로파간다는 실제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용감한 젊은 여성들이 너도나도 군수공장으로 달려가 B-17 폭격기나 셔먼 전차 제조에 동참했던 것이다.
이 시기, 공장이 아닌 야구장으로 달려간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영화 '그들만의 리그'의 주인공이었던 AAGPBL(전미여자프로야구리그)의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치마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하는 등 약간의 엔터테이너적인 기질도 선보였던 모양인데, 상기한 영화에서도 그러한 다소 코믹했던 역사적 사실이 잘 그려지고 있다. 어쨌든 실제 이 시기에는 많은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리그를 떠났던 것이 사실이고, 이 여자 야구선수들 역시 그 빈 공간을 채우며 한때는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1954년, 이제 6.25에 참전했던 200여명의 선수들까지 다 돌아오게 되자 자연스럽게 AAGPBL은 나름의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사라지게 된다. 그 뒤 74년이 흘렀고, 이제 우리의 김라경 선수가 그 마운드를 이은 것이다.
감동적인 여자 야구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약간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6·25에 참전했던 선수들 중 가장 유명한 야구선수는 MLB의 마지막 4할 타자로 유명한 테드 윌리엄스였다. F9F 펜서 제트기를 몰고 무려 39회의 전투 출격을 했던 그는, 한 번은 평양을 폭격하다가 대공포에 맞고 불이 붙은 기체로 구사일생의 동체착륙을 하기도 했다. 야구 역사상 넘버2의 타자가 하마터면 한국전쟁에서 전사할 뻔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테드 윌리엄스가 목숨 걸고 지킨 자유대한은 오늘날, 이 땅의 야구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병역면제 혜택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대만에게만 승리하면 군면제가 덜컥 주어지는 것이다. '고기 5인분 먹으면 냉면 공짜' 원래 이게 정상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냉면 먹으면 고기 5인분 공짜' 이런 요상한 제도를 택하고 있는 셈이다. '군대 갔다 오면 아시안게임 면제'가 돼야지 '아시안게임 갔다 오면 군대 면제'라니, 이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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