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교수와 대학을 고발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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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2-05-11  |  발행일 2012-05-11 제면
홍승용 대구대 교수 인터뷰
책·연구에 몰두할라치면 ‘정신 차려라, 여긴 서울대가 아니야’ 눈총

기자는 지난 7일 정말 ‘돈이 안되는 공부’를 하고 있는 한 지식인을 만나고 왔다.

그는 정년을 9년 앞뒀지만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면서 명퇴 신청을 했다. 그는 역시 돈이 절대 안되는 독문학과에서 30여년간 머물렀다. 그는 대구대 부설 자율연구소 성격을 가진 현대사상연구소를 개설했다. 연구소는 경산 와촌 팔공산 자락에 있는 자택에 있다. 손 벌리는 게 싫어 각종 지원금도 포기했다. 적잖은 사비를 털어가면서 2007년부터 ‘현대사상’이란 학술지를 매년 2권씩 펴내고 있다. 외국에서 직수입한 이론은 가능한 우리 사정에 맞게 숙성시키고, 가장 한국적 인식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사유의 얼개를 짜가고 있다. 참여 교수들도 ‘독립군’인양 기부하듯 논문을 보낸다. 다들 반자본주의적이다. 그의 서재에 들어갔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그 아래 의자에 ‘법정 스님의 의자’처럼 앉아 있다. 꼭 순교자 같다. 대구대 홍승용 교수(58)의 속내를 들춰봤다.

20120511


◆ 홍승용 교수= 부산에서 출생. 서울대 사대 독어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1983년부터 현재까지 대구대 독어독문학과에 재직 중이며 올해 명예퇴직 예정. 2000년대 후반부터 인문학 기반 붕괴를 우려해 ‘현대사상연구소’를 개설, 지역 소장 인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현대사상 논문시리즈 발간에 주력. 그동안 현대의 키워드, 환상을 넘어서, 아방가르드, 유물론, 사회주의, 지젝 읽기, 변증법, 아도르노, 식민지, 레닌 등의 주제를 다룸. 12일부터 무의식을 주제로 한 11기 세미나 시작. 오는 9월부터 10년간 100권의 인문학 명저를 읽는 ‘고전강독회’ 발족.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베이컨의 신기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부터 현대철학까지를 총망라, 인식론·실천론·미학 분야까지 다룰 예정. 인문학적 기본기가 있는 일반인도 참여가능. 010-5478-6033


학생 취업에 따라 ‘두당 얼마 인센티브’
공문으로 돌아다녀…대학은 어느새 취업학원으로 전락

좋은 직장 취업 따라 학교간 서열 굳어지고
부·권력 세습서열 돼… 대학서열 없애야

정부가 지원 미끼로 길들여 놓은 탓
비판적 담론 형성은 집에서나 해’ 냉소

영어강의가 선진화? 이건 식민지 발상…
전공공부 뒷전이면 대학이 죽었다는 징표

취업 아닌 다른 무엇 가르쳐 줘야 하는데…
성과급·연구비 등 떡밥 주변 맴돌지 않는 교수 많이 나와야


◆ 취업준비학원으로 전락한 상아탑

-대학이 주식회사로 전락한 것 같다.

“오늘날 대학을 권력의 하인으로 만드는 일에는 사회 전체가 가담하고 있다. 좋은 대학의 절대기준은 좋은 직장에 얼마나 가까우냐 하는 생존경쟁상의 서열로 굳어졌다. 정부는 엄청난 세금으로 이 서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대학의 서열은 다시 부와 권력의 세습서열로 이어진다.”

-교수도 ‘취업도우미’로 전락한 것 같다.

“두당 얼마라는 계산만 남은 것 같다. 학생들을 정규직에 밀어 넣으면 두당 인센티브 얼마, 비정규직일 경우에는 또 두당 얼마라는 식의 낯 뜨거운 이야기가 공문으로 돌아다닐 정도다. 책에 열중하면 뒤에서는 ‘교수님 정신차리세요. 여긴 서울대가 아닙니다’란 눈총도 쏜다.”

-취업전선에 동참하지 않으면 교수가 옷을 벗어야 하나.

“대학생활을 접을 생각을 해야 된다. 인문학적 감수성, 인간해방 같은 거창하고 거룩한 이야기는 집에 가서나 하라는 냉소적 충고도 가세한다. 맹목적 생존담론 이외에 아무것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이 야박한 압력 앞에서는 대학서열도, 학과와 전공의 차이도, 또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의 오랜 반목과 갈등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행정과 경영을 떠맡은 분들은 등록률, 취업률, 충원율 등 정부가 제시하는 (생존)지표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

-그래도 자존심 있는 교수인데 어떻게 그런….

“정부가 거액의 각종 지원을 통해 대학들을 말랑말랑하게 길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

-이게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후유증 아닌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논리가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목격하지 않았나.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통찰과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대학은 상아탑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누릴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저항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시비를 걸면 미친놈 소리나 듣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지금의 추세를 필연 혹은 불가항력이라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나 교수 각자가 지식인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할 일을 찾으면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은 아직 도처에 있다. 물론 조금 손해볼 생각도 해야한다. 업적 평가, 성과급, 연봉, 연구비 등의 떡밥 주변을 맴도는 짓을 그만두면 마음 편해질 거다.”

-요즘 교수들, 학술진흥재단 연구비에 너무 연연해 하는 것 같다.

“흔히 ‘학진’이라고 부르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이 원래 취지와 달리 학술운동을 서서히 고사시켜 왔다고 본다. 당첨 논문 한편에 2천만원 이상을 받는다. 학진에 게재되면 일반 학술지에 발표되는 것보다 몇 배 많은 점수를 받는다. 월급이 정규 교수의 4분의 1 수준도 안되는 실력파 시간강사 등은 생계 등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학진에 줄을 선다. 심사 때 논문주제까지 체크하기 때문에 체제유지논리에 부합되는 관변성향의 논문이 줄을 이을 수밖에 없다. 대체로 보수성향 교수들이 심사해서 연구자들은 알아서 정치권력 및 자본의 요구 혹은 지적 유행에 부합되는 주제를 선호한다.”

-자연 반체제적이고 저항적 담론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다.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 전에만 해도 반체제 지식인들의 비판적 담론형성문화가 활발했는데 2000년 이후부터 관심도 없어지고 꺼낼 수조차 없어진 것 같다. 예전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교수는 물론 학생한테서조차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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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수가 ‘사필귀정’ 액자 밑 의자에 앉아 갈수록 신자유주의의 하수인으로 추락하는 대한민국 상아탑의 현실을 걱정스럽게 응시하고 있다.

◆현대사상연구소…비딱하게 연구하기

-그래서 명예퇴직을 한 건가.

“아직 체력이 있을 때 난해한 고전들을 독해하고 글 좀 제대로 쓰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몇 년 전 나와 비슷한 심보를 가진 연구자들 몇몇이 모여 현대사상연구소를 꾸렸다. 매학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15회 정도의 세미나를 열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묶어내고 있다. 현대사상연구소의 출발 구호가 재밌다. ‘돈 안 되는 공부모임’이다.”

-지원 같은 건 안받나.

“자유롭게 연구하기 위해 학진을 향해 줄 서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참여하는 세미나 동지들은 연구비나 연구점수도 포기한다. 참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바람직한 대학교육에 대한 로드맵 같은 게 있어야 될 것 같다.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통로여야 된다.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적 불안과 불행이 증대한다. 유치원에서부터 이미 부모의 능력에 의해 아이의 장래 지위가 고착되어가는 사회, 그것을 각자의 노력으로 바꾸는 것이 요원한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간 서열은 사회적 불평등의 지표다. 이 점에서 근래에 교육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국립교양대학이나, 국립대학 네트워크 등 서열해소 방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학간 서열이 의미 없는 사회가 꼭 지적으로 하향평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될 것 같다.”

◆ 교수를 고발한다

-허울뿐인 교수인 것 같다. 명예교수, 석좌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 입맛대로 교수 브랜드를 남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름은 여러 가지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 홍보나 기업체, 정부 등과의 유대관계를 위해 학문적 역량과 무관하게 교수직을 제공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고급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가능한 한 저렴하게 채용하는 경우다. 둘 다 생존논리의 산물이지만, 대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으로 만들기보다 정치논리와 시장논리에 종속시킬 위험이 크다.”

-교수에 임용됐다고 하면 다들 대뜸 기부금을 적잖게 줬겠구나 하고 부정적으로 본다.

“교수임용 부정은 심심찮게 있어왔다. 그렇다고 정당하게 임용된 분들까지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교수는 편하고 신분 보장되고 연봉도 꽤 되는 철밥통으로 통하는 듯하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분들이 교수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이지는 못한 얘기지만, 연봉이 절반으로 줄어도 교수직을 택할 분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처럼 교수임용 자격논문제도를 통해 엄격하게 질적으로 평가하는 장치를 들이대면, 진짜 공부하는 분들만 대학에 남을 것 같은데….”

-시간강사 문제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닌 것 같다. 비용을 아끼려고 교수보다 시간강사로 채우면 자칫 그 후유증이 고스란히 학생한테 전가될 것 같다.

“시간강사와 전임교수의 연구능력이나 교육의 질은 별 차이 없는데, 연봉은 몇 배씩 차이가 난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가르치는 입장에선 죄인이 되는 심정이다. 우리나라의 교수 당 학생수는 후진국 수준이다. 교수의 연봉을 전반적으로 낮추고, 국가의 교육예산을 확대하는 것이 장기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사학재단은 대한민국표 복마전의 대명사였던 것 같다. 대구대도 아직 재단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은데.

“일반화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건전한 사학도 있다. 허나 내가 몸담고 있는 대구대의 경우 94년 구재단이 비리, 독단, 무능으로 경영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구재단 핵심인사들은 95년에 다시 교과부와 청와대 등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벌였고, 그 실상이 98년 모두 드러나 여러 사람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지난해 교과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는 대구대의 임시이사체제를 마무리하고 정이사체제로 전환하는 이른바 정상화 조치를 취했다. 7명의 이사진 가운데 구재단 추천 이사 3명이 정이사로 들어왔다. 대학구성원들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조치였다. 이제 학교를 되찾았다고 자신하는 구재단 핵심인사는 구재단 복귀에 반대해온 인물들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나도 제법 앞 번호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개인이 대학을 자신의 사유물로 여기고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구조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대구대 정상화를 위해 150여일째 계속되는 철야농성에 매주 토요일 밤마다 참여하고 있다.)

◆ 책 읽지 않는 대학을 고발한다

-대학의 영어교육 어떻게 생각하는가.

“토익의 내용은 탈식민지도 페미니즘도 아닌 실무영어 아닌가. 원어강의를 선진화라고 여기는데 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식민지적 발상이라고 본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분야에서 필요한 만큼 공부하면 되는거다. 실무영어 때문에 전공공부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상이야말로 대학이 전문성을 잃고 무시당하며 죽어가고 있다는 징표다.”

-대학이 취업학원에서 벗어나려면.

“취업 문제보다 훨씬 의미심장하고 흥미진진한 관심사들이 널려 있다는 것을 대학이 가르쳐 주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교수들까지 생존지표와의 싸움에 영혼을 바치는 한 진리와 지혜에 대한 열정은 냉소와 조롱거리밖에 안 된다. 비인기 학과의 비인기 강사가 될 작정하고 일상적 지배질서 너머를 보도록 학생들과 씨름하는 수밖에 없다.”

-좋은 책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괜찮은 책을 골라준다면.

“리영희 선생의 ‘대화’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조정래의‘태백산맥’,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최인석의 단편 ‘약속의 숲’, 황석영의 ‘손님’ 등을 권하고 싶다.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알려고 하면 마르크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와‘자본’,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발자크의 ‘환멸’, 루쉰의 ‘아큐정전’,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철학적 소양이 많은 학생이라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에도 한번 도전해보라.”

(서재 통유리창 너머로 외로운 산길 한 자락이 죽비(竹扉)처럼 걸려 있어 자주 거기로 눈길이 갔다.)

글·사진=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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