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 제 9막 “침대에서 자고 싶다”

  • 입력   |  수정 2012-05-11  |  발행일 2012-05-11 제면
벌레와의 전쟁…한달간 방 안에 텐트 치고 자다가 “이건 아니잖아∼”
[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 제 9막  “침대에서 자고 싶다”
콜롬비아에서는 대나무의 일종인 ‘라 구아두아’ 나무로 만든 가구가 전통공예로 유명하다. 필자가 침대를 만들어보겠다며 길이 10m가 넘는 구아두아 나무를 옮기고 있다. 정말 길다.


뜨끔!

마취주사가 턱밑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온다. 색이 유난히 하얀 천정을 쳐다보고 있자니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윽고 실과 바늘이 날카롭게 찢어진 살갗을 뚫고 서걱거리면서 상처를 꿰매기 시작한다. 분명히 마취를 한 것 같은데 통증은 여전하다. 마취가 아직 안됐다는 신호를 보냈으나 우리집 오른쪽에 사는 간호사 리즈비안은 아무 걱정 말라는 듯 눈을 마주하며 웃어준다. 병실 문 밖에는 우리집 왼쪽에 사는 금꾼 페르난도가 역시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 정작 우리집에 함께 사는 아내는?

곁눈질로 쳐다보니 아주 열심히 내 턱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다. 이런 에피소드는 좀처럼 얻기 힘들다는 듯 아주 흥미진진해 하는 모습이다. 피 묻은 솜, 간호사의 손길과 표정, 병실 전체의 모습 등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담고 있다. 이 정도면 아내가 아니라 외주 카메라감독이다. 대체 내 턱은 왜 이렇게 찢어졌을까?



[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 제 9막  “침대에서 자고 싶다”
부상투혼…세바늘 꿰매다//바닥에 내려놓다 구아두아나무가 튀어 올라 필자의 턱을 강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마취도 덜 된 상태에서 듬성듬성 꿰매준 마을병원 간호사들과 찰칵. 아시아인 최초 치료라며 ‘흥분’했다.

마을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2층집이 나란히 세 채가 있는데 가운데 집이 바로 우리집이다. 그렇게 누비아 선생님 집에서 이사를 나왔지만 우리는 한동안 텐트를 치고 잤다. 벌레 때문에….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바퀴벌레 한 마리만 나와도 기겁을 하고 온가족이 소탕작업을 벌이지 않는가. 여기서는 애당초 벌레 소탕작전이 불가능하다. 좀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공기 반, 벌레 반이다. 밥을 먹을 때나 책을 읽을 때는 하루에도 수십 종의 벌레들과 만나면서 전투를 치른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아내도 벌레라면 기겁을 하며 달아나곤 한다. 그것도 안면이 좀 있는 바퀴벌레는 그렇다 쳐도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이 날아들면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란다. 한때는 귀신 잡는 해병이었는데 지금은 벌레보고 놀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끔은 옆집에서 페르난도도 놀러오고 그집 수탉도 놀러오는데 이 녀석은 꼭 남의 집 현관문 앞에 볼 일을 보고 간다. 게다가 집 밖과 안이 구분이 안 돼서 신발을 신고 방까지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그냥 이불 깔고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유일한 벌레 청정지역은 텐트 안.

[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 제 9막  “침대에서 자고 싶다”
침대는 역시 과학(?)이다//턱을 세바늘이나 꿰매고도 부상투혼(?)을 발휘, 구아두아 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필자. 나무가 썩거나 벌레가 들지 않도록 약을 바르고, 침대크기에 맞게 자르고, 조립(?)하니 자연산 침대가 완성됐다. 확실히 침대는 과학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벌레들과 상견례를 끝내자 서서히 적응되기 시작했다. 막내 정호는 느리게 기어가는 녀석을 손으로 잡아 창밖으로 던질 정도가 되었고, 다른 가족도 벌레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어졌다.

낭만적인 텐트생활?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내내 딱딱한 바닥에서 자면 온몸이 뻐근해서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가끔 몸부림 심한 막내의 발길질에 제대로 맞기라도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멍이 들곤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다!

우리 가족은 텐트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방 한쪽 구석에서 뼈대만 드러내고 있던 ‘나무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침대가 되었다. 그래 지금부터 너는 그냥 ‘나무틀’이 아니라 다시 침대가 될 것이다. 작전개시!

우선 빠진 나무막대를 끼우고 손질해서 침대 프레임을 튼튼히 했다. 우리집 왼쪽이웃 페르난도가 자기 집에서 쓰던 매트리스를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남은 과제는 매트리스를 받치는 나무 널판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 제 9막  “침대에서 자고 싶다”
침대서 벌레와 ‘아늑한’ 동거//수십종의 벌레 때문에 한동안 방안에 텐트를 치고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던 필자의 가족은 이제 '부상투혼'과 '과학'이 접목된 침대에서 벌레들과 안락한(?)동거를 하며 지낸다

콜롬비아에서는 라 구아두아(La Guadua·매우 굵고 키가 큰 대나무)나무로 만든 가구들이 전통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일반 합판보다 손이 많이 가고 가공도 쉽지 않아서 전문 가구매장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자개농처럼 구아두아 장인의 제품은 엄청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냥 가까운 목공소에서 합판을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페르난도가 좋은 제안을 했다. 금꾼 페르난도의 친구인 또 다른 페르난도(마을에는 페르난도가 참 많다)의 농장에는 라 구아두아 나무가 많으니까 같이 가서 몇 그루 베어오자는 것이다.

돈도 안 들고 침대 만드는 재미도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페르난도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난 그 선택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전혀 몰랐다.

페르난도의 정글칼은 만능이다. 사탕수수를 자를 때나 집 옆에 자란 풀을 벨 때도 썼고, 지금 라 구아두아를 자르는 데도 쓰고 있다. 검도 동호인들이 베는 대나무 두께와는 엄청 차이가 나는데도 페르난도는 능숙하게 구아두아를 쓰러뜨리며 ‘무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잠시 후 무사 페르난도는 차력사 페르난도가 되어서 10m가 넘는 구아두아 나무를 어깨에 메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해병 이재선도 질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런데 구아두아는 어깨에 올리는 게 더 어렵기 때문에 중간에 내릴 수가 없다. 따라서 힘이 부치고 다리가 후들거리더라도 쉬지않고 언덕을 올라 집 앞 공터까지 도착해야만 했다.

그렇게 네댓 번을 옮겼을까. 비지땀을 흘리며 무거운 구아두아를 땅에 던지는 순간, 탄력이 붙은 구아두아가 바닥에서 튀어올라 내 턱을 정통으로 가격하고 말았다. 난 순간 놀라서 주저앉았고 턱 밑으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이 더러워서 상처를 만져볼 순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이 상처는 꿰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고, 구아두아 침대가 아닌 병원침대에 먼저 눕는 신세가 된 것이다.

상처 크기로 봐서는 적어도 일곱 여덟 바늘은 필요할 텐데 세 바늘로 간단히 그리고 간격 넓게 치료가 끝났다. 이래도 되나? 아무튼 턱밑에 영광의 상처를 얻고 병실을 나서는데 카운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까르헤따 데 살룻, 뽀르 빠보르.”

간호사가 웃으면서 건강카드를 달라고 한다. 여긴 콜롬비아! 대한민국 건강보험카드가 적용될 리 없다. 무보험 외국인으로 치료비가 7만8천페소(약 4만7천원)나 나왔다. 한국에서 봉합을 좀 해봐서 아는데 세 바늘이면 그리 비싸지 않다. 몇 년 전 유도도장을 다닐 때 버팅(Butting·권투나 격투기 종목에서 머리로 상대편 선수를 들이받는 것)으로 눈썹 위에 일곱 바늘을 꿰맨 경험이 있다. 당시 마스크 공연을 할 때였는데 분장을 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마스크가 상처를 자꾸 건드려서 아프게 공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정형외과에서 지불한 치료비는 1만원 정도.

마취주사가 뒤늦게 효력을 발휘하는지 턱의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꿰맨 턱에서 소리가 났다. 집에 돌아가면 텐트 안에 누워 턱 마사지나 하며 좀 쉬려고 했더니 페르난도가 내 어깨를 ‘턱’ 치며 휴식은 ‘턱’도 없다는 듯 이제 ‘턱’ 꿰맸으니까 하던 걸 마저 하자며 병원 문‘턱’을 나섰다. 차력사 페르난도는 무자비한 작업반장 페르난도가 되어서 나를 재촉해 다시 구아두아를 두어 번 더 옮기게 만들었다.

그 다음 과정은 침대 폭에 맞게 구아두아 나무를 자르고 반으로 쪼개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을 햇볕에 말린 후 나무에 벌레가 슬지 않도록 엘 포르몰(El Formol·포르말린)을 바르고 말리고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페르난도에게 받은 매트리스의 먼지를 털어내고 짜맞춘 구아두아 나무 위에 얹었더니 방 한쪽 구석에 있던 나무틀은 어느새 훌륭한 침대가 되었다.

침대에 길게 누워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눈을 떴더니 아내는 캠코더를 들고 침대를 샅샅이 촬영하고 있었고, 페르난도는 벽에 기대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그렇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멕시코민요 ‘라 쿠카라차.’

1910년 독재정부와 지주들의 착취에 저항한 멕시코 농민들이 부른 노래로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란 말은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보잘 것 없는 농민들의 생명력이지만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고 영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페르난도, 그대의 끈질긴(?) 이웃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날 이후 우리 가족은 침대에서 단잠을 잔다. 또 다른 이웃, 바퀴벌레들과 함께….

前 대구시립예술단 극단 단원 mc8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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