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바각설이의 애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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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3-03-08  |  발행일 2013-03-08 제면
“남편과 공연중 취객이 치마 들추며 ‘자러 가자’ 할 땐 다 때려치우고 싶죠”
글·사진= 박진관기자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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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월·이재선 모자가 대구-포항고속도로 영천휴게소에서 각설이품바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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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월씨가 만든 명월문화예술봉사단이 대구지역의 한 요양원을 찾아 무료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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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대경품바각설이연합회 회원들이 팔공산 자락의 한 식당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누더기 옷을 걸친 채 더벅머리 가발을 하고 한바탕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흥겨운 춤을 추며 장타령을 하는 각설이.

장타령꾼을 낮춰 부르는 말인 각설이는 옛날 장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중국 무협지에서는 9대 문파에 필적하는 개방파 걸인들로 곧잘 표현된다. 이들이 부르는 품바는 민초의 울분과 억울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멸시나 학대 등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온다. 한이 깃든 소리다.

풍자와 해학, 걸쭉한 입담으로 서민의 애환을 풀어주는 품바각설이들이 지난 달 23일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 식당에 모였다.


대경연합회 25명 중 부부만 5쌍이나 활동
모자·형제지간도…
남편사별·사업실패 등 입문 사연도 다양

月 최대 60건 공연요청,하루 100만원 벌기도
영업영역 준수 불문율, 대개 다른 직업 병행

위문공연·봉사도 열심“근대골목 상설공연 꿈”


이날 모임은 대경품바각설이연합회 유재월 회장(59)이 주선했다. 이들은 2003년부터 매년 초 총회를 열고 함께 친목을 다지고 있다. 회원 수는 약 25명. 눈발이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회원들은 2013년 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들을 표현했다.

“의상은 어떤 것을 입는 게 시대의 추세에 맞나. 엿은 어느 공장 제품이 더 맛있고, 잘 팔리나 등등 공연과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와 축제소식을 교류합니다. 또 회원 상호간 경조사를 챙기고 이참에 얼굴도 한번 보는 것이지요.”

유 회장은 경력 9년의 여성각설이다. 주무대는 대구-포항고속도로 영천휴게소. 매주 주말과 휴일 아들 이재선씨(전 대구시립극단 연극배우)와 함께 영천휴게소에서 7년째 품바공연을 하며 엿을 팔고 있다. 이재선씨는 현재 위클리포유에서 격주로 인기리에 연재중인 ‘이재선 가족의 콜롬비아 생활연극기’의 주인공. 유씨는 아들의 권유로 장타령꾼으로 나서게 됐다.

“처음엔 아들이 멀쩡한 대학 나와서 괜찮은 직업 버리고 각설이를 한다기에 말렸지요. 그런데 공연하는 걸 보니 너무 잘하고 신명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했죠. 처음엔 얼굴 들고 못 나가겠던데 지금은 아들이 제 스승인 셈입니다. 호호호.”

유재월씨는 대구시 동구 신천2동에서 북과 장구, 경기민요를 가르치는 한편 신암5동 주민자치센터에서 민요강사를 하고 있다. 유씨는 정은하, 박숙경 선생으로부터 민요를 사사하고 반야월저탄장 부근 공터와 신천철교 아래서 피나는 연습을 했다. 유씨는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다. 민요를 같이하는 동료·제자와 더불어 명월문화예술봉사단을 조직해 요양원에서 한달에 한번 이상 무료 위문공연을 한다. 또 동부여성문화회관과 붓다의 집 등지서 7년째 설거지봉사를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동부여성문화회관 의류수선반 회장으로 회원들에게 바느질과 손지갑 제작 등을 가르치고 있다.

각설이는 지역이나 기업의 문화축제, 사내연수 레크리에이션, 각종 실내외 모임, 복지관 행사 등에 나가 공연을 펼친다. 따로 구역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수년째 터를 잡고 있는 곳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2003년 이 모임의 산파역할을 한 김창수씨(58·초대회장)는 40세 때 사업실패로 방황을 하다 각설이 품바의 길로 접어들었다. 각설이를 하면서 수억원의 빚도 다 갚고 자식들 대학공부까지 다 시켰다.

“초등학교 때 전교어린이회장, 고교시절 학생회장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끼도 있었고, 응원단장을 하는 등 남 앞에 나서길 좋아했어요.”

김씨의 주특기는 장구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하는 코믹각설이다. 진주개천예술제 입상경력을 비롯해 공중파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베테랑이다.

“보통 봄~가을에 바쁘고 겨울엔 한가한 편입니다. 한달에 60건 정도의 공연요청이 들어와 일정을 소화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땐 동료들에게 양보합니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요.”

그는 회원들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다. 모임을 만들고 수년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각설이로 활동하는 사람끼리 서로 모르는 척하고 지나치기가 다반사여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처음엔 다들 개성이 강해 융합하기가 힘들었습니다만 점차 모임을 같이 하면서 친해졌어요. 지금은 다들 형님, 아우 하고 지냅니다.”

김씨 역시 유 회장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나면 구미와 대구지역의 요양원을 찾아 재능기부를 한다.

“재미있게 분장을 하고 걸쭉한 입담을 하면 요양원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다를 외로운 분들이잖아요.”

대경품바각설이연합회 회원은 3개월마다 한번씩 모임을 갖고 1년에 한번 관광버스를 대절해 야유회를 간다.

회원 중에는 부부각설이도 5개팀이나 있다. 임창수·강승희씨는 부부각설이다. 부부는 임씨의 형으로부터 권유를 받고 시작했다. 임씨의 형 역시 각설이다. 형은 “나중에 원망은 하지마라. 그런데 하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부는 지방공연을 자주 간다. 어떨 땐 3~4일간 체류하면서 공연을 할 때도 있다. 신혼처럼 재미있게 살고 있지만 남들이 모르는 애환도 있다. 강승희씨의 경험담이다.

“남편과 함께 공연을 하다 가끔 술에 취한 남성이 치마를 들어 올리거나, 함께 자러 가자는 등 성추행을 할 때는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떤 여자가 남편에게 돈을 줄 테니 나랑 살자고 며칠간이나 치근댔던 경우도 있습니다.”

이재선씨는 각설이품바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 케이스다.

“분장이나 품바프로그램에는 정형화된 틀이 없어요.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죠. 얼굴에 점 하나 더 찍고 덜 찍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학과 풍자로 민중의 애환을 얼마나 절절하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보다 못나고 모자라거나 병든 사람을 보면 왠지 우월감을 느낍니다.”

이들의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될까. 보통 2인1조로 하는데 개인의 능력에 따라 40만~50만원, 100만원까지 벌기도 한다.

김창수씨는 “옛날엔 각설이가 엿만 팔았지 ‘공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개업 때 도우미아가씨를 불러 공연하는 것보다 각설이품바공연 요청이 더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월드컵을 전후로 각설이업계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품바각설이 데뷔를 위한 전국대회나 축제도 있다. 충북 음성품바축제나 전남 무안품바명인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 입상을 하면 각설이로서의 명성이 더 올라간다. 또 전국모임도 있다. 현재 김창수씨가 전국품바각설이연합회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각설이들은 보통 전업으로 하기보다 2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끼가 많고 신명이 있는 사람에겐 딱 맞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김씨의 설명이다.

“각설이는 밑천이 필요 없고 재고도 없는데다 돈 빌려달라는 사람, 보증 서달라고 하는 사람 없어서 참 좋습니다. 한번은 막창집 개업날에 공연을 하러 갔는데 막창집 주인이 나중에 각설이가 돼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각설이는 돈이 있어도, 하고 싶어도 ‘끼’가 없으면 못한다. 특히 여성은 더 그렇다. 조영옥씨(56)는 전국노래자랑, 주부가요열창 등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실력파다. 남편 사후 13년차 각설이로 활동하면서 1남2녀를 홀로 키웠다. 큰아들은 씨름선수이고 둘째 딸은 서울에서 뮤지컬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조씨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면서 “제가 바로 그런 케이스”라고 말했다.

신춘희씨(51)는 노래방을 경영하면서 시간이 나면 각설이품바 활동을 하고 있다.

“사복을 입으면 부끄럼을 잘 타는데 삐삐머리를 하고 색동옷만 입으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 오르는지 모릅니다.”

김창수씨는 “2013년 회원들 모두 건강하고 일거리가 많이 생겨 돈 많이 벌기를 빈다”면서 “서울의 인사동처럼 대구도 근대골목에 품바각설이 상설공연을 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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