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의 제자 서열, 400년만에 정리됐다

  • 이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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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5-16 07:56  |  수정 2013-05-16 09:22  |  발행일 2013-05-16 제2면
‘左 류성룡, 右 김성일’
호계서원 위패 자리 정해져
문중·유림 등 복설 확약식
20130516
15일 경북도청에서 400년간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안동 호계서원 복설 추진 확약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권영세 안동시장을 비롯해 문중 대표, 도내 유림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경북도 제공>

퇴계 선생의 제자인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학봉 김성일(1538~1593)의 위패 서열을 놓고 400여년간 이어져 온 풍산류씨와 의성김씨 가문의 자존심 대결인 이른바 ‘병호시비(屛虎是非)’(영남일보 2009년 4월1일자 7면 보도)가 문중 합의로 일단락됐다.

15일 경북도청 강당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권영세 안동시장, 문중 대표(퇴계·학봉·서애·대산종손), 도내 유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동 호계서원(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복설 추진 확약식이 열렸다.

호계서원은 1573년 조선 선조때 퇴계 이황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려 안동에 세운 것으로, 그동안 퇴계 왼쪽에 누구를 모시느냐를 두고 두 가문과 제자들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1620년 퇴계 선생의 수제자인 학봉과 서애를 배향하는 과정에서 서열 문제로 병호시비가 일어났고, 이후 400여년 동안 갈등을 빚어 왔다.

영남지역에서 병산서원과 호계서원 사이의 대립인 ‘병호시비’는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나 계속됐다. 그동안 이들의 서열을 놓고 임금에게까지 상소가 올라가는 등 논란에 휩싸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의 모체인 병산서원은 1572년 류성룡에 의해 현재의 풍천면 병산리로 옮겨졌고, 서원으로 된 것은 1614년 사당을 건립하고 류성룡의 위패를 모시면서부터다.

하지만 최근 호계서원복설추진위원회, 영남유교문화진흥원, 경북도지사, 안동시장이 협의를 거쳐 문중 간에 호계서원 복설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위패 서열을 ‘左 서애, 右 학봉’으로 결정했다.

문중들은 호계서원을 성곡동 안동야외민속박물관 일대로 옮기고, 대산 이상정 선생(1711∼1781)을 호계서원에 추향하기로 했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강당을 옮겨 짓고 사당을 다시 설치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호계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으로 사라졌다가 1878년 강당만 건축됐으나 다시 안동댐 건설로 현재 임하면 임하댐 인근으로 이건(移建)됐다. 사당 등의 복설은 경북도문화재위원회 고증 절차를 거쳐 추진된다.

안동=이두영기자 vic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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