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유천하-경북의 술을 찾아서 .6]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 개발한 ‘봉밀주’

  • 이두영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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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12   |  발행일 2013-07-12 제39면   |  수정 2013-10-21
100년만에 순수 벌꿀로만 발효 성공
조선시대 보양주로 특권층만 즐겨
달콤한 맛 풍부한 향 여성들도 호평

인류가 만든 최초의 가공음료로 알려진 술.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온갖 정성과 비법을 동원하여 우리만의 멋과 맛, 향을 지닌 수많은 명주를 만들어 즐겨 왔다. 특색이 있는 술을 보유한 만큼 특색있는 술 문화도 창조해 왔다.

전통술에 대한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문헌에 나타나는 술에 대한 이야기는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帝王韻記)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중국의 옛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발효의 나라’라고 할 만큼 술과 장 담그기 기술이 발달하였다고 전해지며, 고구려의 발달된 양조기술이 신라에 전달돼 ‘신라주’라는 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일본 고사기(古事記)에 따르면 백제 역시 일본에 양조기법을 전달할 만큼 술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주류가 기록된 문헌을 토대로 술의 종류를 살펴보면 모두 379종에 이르는데, 외래주 74종을 제외한 305종이 전통 민속주로 밝혀졌다.


◆ 역사 속의 봉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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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 기타 첨가물 없이 순수하게 벌꿀과 효모만으로 발효시킨 봉밀주 시제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걸 100년만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픽=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이렇게 깊은 역사를 간직한 채 다채로웠던 전통주는 일제 강점기에 세수확보를 목적으로 한 조세령의 공포·시행으로 가정에서 담가먹던 가양주가 전면 금지되고 탁주와 소주, 약주로 획일화된다. 광복 이후엔 식량난으로 지역 대부분의 전통 민속주의 명맥이 단절된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계기로 주류 분야의 무형문화재를 전통문화의 계승보전이란 관점에서 인식하기 시작한다. 민속주 기능보유자를 지정하는 등 전통주 부활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2011년에는 농식품부에서 전통주 등의 산업발전 기본계획을 확정·발표함으로써 2015년까지 5년간 전통주 산업의 육성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특히 해외시장 진출의 확대, 농업과 동반성장을 추진하기로 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벌꿀은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농축된 당분으로, 포도당과 과당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다. 포도당과 과당이 혼합된 벌꿀에 적당한 농도로 물을 첨가해 희석하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진행된다. 자연 발효된 벌꿀 발효주의 경우 과일이나 곡류의 재배 이전, 즉 상고시대 이전에 인류에게 알코올 음료로 제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벌꿀에 관련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벌꿀을 생산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벌꿀 발효주에 대한 내용은 조선시대 동의보감(1611년), 고사십이집(1787년), 임원십육지(1827년), 오주행문장전산고(1850년) 등에도 전래되는 대표적인 보양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경제상황으로 볼 때 극히 특권층 만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며, 조선시대에서는 왕실과 사대부들이 주료 음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동의보감에서 봉밀주는 보양과 정기를 증진시키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 맛이 달콤하고 발효시에는 풍미가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벌꿀을 이용한 술의 구체적 제조 기술을 언급한 기록이나 유물이 거의 전해져 내려오지 않아 명맥이 끊겨 버린다.


◆ 외국의 벌꿀 발효주

외국의 경우 벌꿀발효주를 우리보다 더욱 즐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벌꿀 발효주를 가리키는 Mead(미드)라는 낱말이 생성된 시기는 대략 서기 600년경으로, 어원은 인도-유럽어족 가운데 하나인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Medhu’라고 한다. 서양의 벌꿀발효주는 신화 속의 술로 전해지고 있으며, 꿀을 주재료로 해서 발효시킨 알코올성 음료로 오랫동안 북유럽을 지배한 게르만족의 북구신화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밀월(蜜月·Honeymoon)이란 말의 유래는 신혼 초 한 달간 정력에 좋다는 꿀로 빚은 꿀술을 마시면서 보냈다는 게르만 민족의 고사에서 유래됐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벌꿀주를 많이 마셔온 독일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덴마크, 에스토니아, 북유럽 등 여러나라에서 벌꿀주에 관한 문헌과 유물이 많이 발견됐다.

특히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에거(Eger)라는 도시는 벌꿀주를 제조하는 도시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인데 1460년에 벌꿀주 제조공장이 13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벌꿀 발효주에 대한 연구내용과 생산관련 자료는 동양보다 서양이 더 많이 축적하고 있으며, 벌꿀의 생산량도 동양보다 서양이 많다. 따라서 일반 서민이 구하기 쉬워 벌꿀 발효주 자가제조가 활발히 이뤄졌으며 많이 애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100년 만의 재현 노력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벌꿀 발효주와 관련된 연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 sp.)의 효모를 활용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벌꿀 자체의 영양분 부족과 관능성 저하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약용식물, 과채류 등을 발효 후반에 첨가하는 연구가 주류를 이뤘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벌꿀에 물을 첨가해 희석하고 포도당을 적정량 첨가해 멸균한 후 단일 효모 또는 2종 이상의 효모를 자연·인위적으로 첨가하여 3∼5개월 정치발효를 수행한다. 이후 약용식물이나 관능·기능성을 가지는 다양한 첨가물을 넣어 1년 이상 숙성 후 최종 병입해 제품화하는 공정을 갖는다.

이 방법은 초기 벌꿀과 포도당 첨가에 의한 고당조건에서 효모균들의 초기 생육적응 및 성장이 원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발효기간이 길어지는 단점이 있다. 발효기간이 길어짐으로 인해 세균, 곰팡이 등과 같은 다른 미생물에 대한 오염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의 독보적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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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하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장(오른쪽)은 최근 <주>미드드림과 봉밀주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했다. <연구원 제공>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원장 석현하) 연구진은 우선 고당 조건, 고삼투압 조건에서 견딜 수 있는 내당성이 강력한 균을 선별·분리했으며 배지 선정과 잡균의 오염을 방지할 수 있는 기술적 검토를 진행했다.

또한 선별·분리한 효모는 관능성과 기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2차 약용작물이나 기타 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좋은 맛과 향을 가질 수 있는 효모를 최종적으로 선발했다.

약 3개월에 걸친 실험 끝에 연구원은 내당성이 있으면서도 좋은 풍미를 갖는 효모 이사첸키아 오리엔탈리스(Issatchenkia orientalisis) MS-1을 최종적으로 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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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이 개발해 미드드림에 기술 이전한 봉밀주가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연구원은 이 효모의 최적의 발효조건을 확립하고 마침내 대용량 발효조에서 성공적으로 벌꿀 발효주를 생산한다. 그리고 최첨단 마이크로필터레이션 시스템을 적용해 벌꿀 발효주에 들어있는 균체를 제거, 제품화에 성공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봉밀주는 순수하게 벌꿀과 효모만이 첨가된 발효주로, 2012 안동탈춤페스티벌 등에서 시음회를 가진 결과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발효주가 갖는 맛과 향이 풍부하고 꿀이 가지는 달콤함을 잘 살려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목넘김이 좋아 여성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연구원은 일제강점기 이후 100년 만에 복원한 순수 벌꿀 발효주 봉밀주 생산 기술과 관련해 2건의 특허를 출원했으며, 지난 연말 경산지역 <주>미드드림(대표 허건영)에 기술이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상황이다. 조만간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돼 일반인들이 맛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석현하 원장은 “봉밀주와 같이 우리 민족의 멋과 전통을 과학적으로 전승·발전시키는 데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며 “지역의 특산물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과제를 계속 수행하고, 이를 기술 이전시켜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동=이두영기자 vic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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