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피플] 배삼룡 대구 코스모스북 대표

  • 백경열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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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3-10-26  |  발행일 2013-10-26 제면
e-book보다 손때 묻은 ‘이 책’이 더 향기롭죠
64년을 지킨 대구 最古의 서점 현재 보유중인 장서 120만권
400평의 보물섬같은 창고에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부터
40년간 수집한 서적이 빽빽이
디지털 시대, 그래도 존재한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중고서점 책 수집가들의 발길 잇따라
인터넷·대형서점 압박 속에서 古書 통해 지식 쌓는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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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자리잡은 코스모스북 대표인 배삼룡씨가 서점에 켜켜이 쌓아둔 수많은 중고책 사이에 서서 고서적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64년을 한자리에서 지킨 대구 최고의 서점답게 보유 장서만 120만권에 이른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디지털 기기 속에 활자가 스며든 지 오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잉크 냄새를 맡으며 종이에 침을 묻히지 않으려 한다. 젊은층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하다.

여기다 가격과 편리성이 최고의 가치가 된 시대, 온라인 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오프라인 서점보다 더 싸게 책을 살 수 있다. 고객을 찾지 못한 채 먼지 쌓인 책을 부여잡던 동네서점은 이렇게 디지털기기와 온라인 서점의 파워에 밀려 존재의 이유를 잃고 사라져 간다.

게다가 대구의 독서량은 전국 대도시에서 꼴찌 수준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대구시민 1인당 연간 독서량이 12.2권에 불과했다. 전국 7대 도시에서 울산(10.8권)에만 앞선 6위를 차지했다. 교육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2대째, 64년간 한자리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배삼룡 대표(49)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박물관을 찾는 심정으로 배 대표가 운영하는 대구시 중구 남산동 코스모스북을 찾았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서점

최근 10년간 대구의 서점 폐업률은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03년 386곳에 달했던 대구지역 서점은 2011년에는 222곳만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8년 새 무려 42.5%(164곳)나 줄어든 것이다. 전국 7대 도시 폐업률 평균치(28.2%)를 크게 웃돌았다. 같은 기간 광주 34.3%(204→134곳), 대전 27.9%(240→173곳), 부산 25.6%(301→224곳), 인천 24%(167→127곳), 서울 22.7%(547→423곳) 등이었다.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오프라인 서점 시장에서 코스모스북의 존재는 신선하다. 1950년 6·25전쟁 때 현재의 장소에 터를 잡고 영업을 시작한 코스모스북. 당시 이 일대에는 대건고, 효성중·고, 능인고, 정화여고 등 학교가 밀집해 있던 터라 50여곳의 서점이 경쟁하듯 들어서 있었다. 하루에 책을 사러오는 사람이 2만명에 달했을 정도다.

배 대표는 1980년 아르바이트생으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다. 그때만 해도 책과 거리가 멀었던 그는 매일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교복입은 학생의 러시에 넋이 나갈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주말에도 참고서 등을 사기 위해 이 서점을 찾는 학생이 5천명 넘었다. 자신과 같은 아르바이트생이 10명이나 됐지만 책을 찾는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골목은 마비되고 진열장은 텅 비어버리기 일쑤였다.

세월의 부침 속에 1대 채해기 대표가 세상을 뜨고, 배 대표는 1985년 코스모스북을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서점도 점점 활력을 잃어갔고 전통시장 같던 왁자지껄함은 골동품 가게 특유의 고즈넉함으로 바뀌었다. 보유 서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책을 찾는 발길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현재 초·중·고교 학습서적부터 각종 전집, 전공서적, 사전, 일반서적뿐만 아니라 절판 도서, 고문서에 이르기까지 약 120만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장서를 보유 중인 이 서점을 찾는 고객은 하루 100명 남짓.

없는 책 빼고 다 있다는 ‘서점계의 화개장터’는 사람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책은 한 사람의 인생, 서점은 꿈을 키워주는 곳

개점 당시만 해도 중고 서적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배 대표는 이 서점을 운영하면서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고 힘주어 말한다.

“당시엔 중고 책을 사들여 판매하다 보니 책을 훔쳐 가져오는 학생도 많았어요. 힘 좀 깨나 쓴다는 문제아가 친구의 책을 뺏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하다 보니 책을 가지고 오는 학생 표정만 봐도 훔친 건지 아닌지 알게 됐지요. 다들 살림살이가 힘들고 책이 귀할 때였던지라 가만히 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책을 훔치는 행위 자체가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생들이 이런 짓을 할 때마다 크게 혼낸 것은 물론, 부모를 불러 각서까지 쓰게 했다. 책을 뺏긴 학생에게는 책을 돌려주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책을 빼앗긴 아이의 꿈이 산산조각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한번은 참고서 수십 권을 들고온 학생이 있었어요. 같은 반 친구 7명의 책을 몽땅 빼앗아 가져와 난리가 났었어요. 결국 책을 돌려줄 수 있었고, 학교 및 부모에게 통보했지요. 이후 5년쯤 뒤에 서점 앞으로 공군 정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목에는 빨간 머플러를 두른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나를 보고 거수경례를 깍듯이 하는데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지요. 알고보니 그때 책을 빼앗긴 7명 중 1명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꿈을 지켜준 것 같아 뿌듯했다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짙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중고서점으로 입소문이 나다보니 책 수집가의 발길도 잇따른다.

그는 “약 20년 전쯤 털신을 신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채 서점을 찾았던 한 노인도 기억에 남는다. 경남 산청군에서 왔다는 노인은 다짜고짜 경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며 “황당했지만 조목조목 품목을 적어온 노인에게 일일이 책을 찾아줬는데 그 분량이 5t트럭 1대에 가득찰 만한 분량이었다. 그날 노인이 사간 책은 자그마치 1천450만원어치였다. 당시 보통의 봉급 생활자가 한달에 20만원 정도를 버는 시기였으니까 어마어마한 돈”이라고 회상했다.

배 대표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취재진을 이끌었다. 그와 함께 서점 인근에 자리한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행으로 치면 금고일 터. 이중 철문이 굉음을 내며 판도라의 상자가 공개됐다.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배 대표의 말이 꿈결인 듯 나른하다.

1천320㎡(400평)이라는 공간에 천장까지 가득찬 각종 서적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40여년간 수집된 서적은 철학, 문학물부터 원예, 무기 및 군사, 사진, 컴퓨터 등의 전문서적, 초·중·고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6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모인 기독관련 서적 3천권, 30㎜ 영화필름, 무협비디오 2만개, 음악다방서 소장하던 LP판 수백장도 눈에 띄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와 행정지도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료 또한 책장 한 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현재에도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승합차를 타고 책을 쓸어담기 위해 오는 손님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고서의 메카는 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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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룡 대표가 중고 학습서적을 정리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처음이 있어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

코스모스북을 비롯한 오프라인 서점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인터넷 서점과 대형서점의 진출에 중·소규모 동네 서점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모습이다.

힘이 부족하면 모여야 살 수 있다. 부산의 움직임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부산지역 32개 서점은 올 1월 ‘부산서점협동조합’을 결성해 동네서점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공동구매 방식을 통해 도서 원가를 낮추고 공공기관에 책을 납품하는 등 판매망을 구축해 골리앗에 대항하자는 것이다. 이에 울산과 대전에서도 협동조합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대구는 이마저도 늦다.

배 대표는 오프라인 서점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1979년 교과서가 개편돼 책의 크기가 포켓 수준에서 현재의 소설책 크기로, 참고서도 A4 크기로 규격화되면서 기존의 책장을 사용하기 힘들게 됐다. 당시 할 수 없이 책을 눕혀서 쌓아둘 수밖에 없었는데, 고객이 책을 보려고 일일이 펼쳐보니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책 표지가 심하게 훼손됐다. 책의 상품성은 떨어지고 막대한 손실도 입었다. 판매 속도 역시 형편없이 추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당시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목공소와 계약해 서점 전체의 책장을 새로 만들었다. 3일을 밤낮없이 노력해 책을 모두 꽂을 수 있었다. 그해 다가온 신학기에서는 전년 대비 700%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다. 혁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의 미래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갈수록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지워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코스모스북 역시 시대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서점은 98년 대구 최초로 홈페이지를 제작,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시민들은 손때를 묻혀가며 책을 읽기를 원했고, 온라인 장터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후 코스모스북은 두 차례에 걸친 개선 작업을 통해 현재의 형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책을 검색하고 구입하고 싶은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맞춤식 요리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오프라인 서점은 이 점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배 대표는 “앞으로 폐교를 활용해 코스모스북이 보유한 전문서적을 교실마다 진열하는 게 마지막 목표다. 솔직히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장소를 만들겠다. 진정한 지식은 고서를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학문을 바탕으로 현재를 연구해 미래의 인재를 기를 수 있는 메카로 꾸미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코스모스북의 마지막 전체 요리를 하루라도 빨리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오프라인 서점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날이 분명할 테니 말이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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