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버틀러:대통령의 집사·머드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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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1-29   |  발행일 2013-11-29 제42면   |  수정 2013-11-29

버틀러:대통령의 집사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관람가)

34년간 미 대통령 8명 수행한 흑인집사 실화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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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남북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됐다. 하지만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관행은 남부 지역를 중심으로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 있었다. 식당이나 극장, 학교 등 공공장소에선 흑인과 백인을 분리함으로써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을 차단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애완동물보다 못한 취급까지 받았다. 1926년 남부 목화농장에서 일했던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 가족 역시 그런 아픈 미국 역사의 희생양이다.

어린 세실은 어머니(머라이어 캐리)가 백인 주인에게 능욕을 당하고, 이에 항변하는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죽이는 모습을 목도한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자가 된다. 이를 불쌍히 여긴 백인 노부인(바네사 그레이브)은 세실에게 집안 서빙을 맡기고 백인의 예의범절을 가르친다. 이른바 ‘검둥이 하인’이 된 것이다.

어느덧 성장해 청년이 된 세실은 고향을 떠나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리고 백인을 위한 웃는 얼굴과 자신의 진정한 얼굴, 두 개의 얼굴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언제나 성실하게 손님을 응대하던 모습을 눈여겨 본 백악관 인사담당자는 그를 버틀러로 발탁한다. 이후 그는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단 한 명의 집사로 살아간다.

‘버틀러:대통령의 집사’(이하 버틀러)는 1952년부터 86년까지 백악관 집사였던 유진 앨런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을 시작으로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존슨, 닉슨, 포드, 카터, 그리고 레이건까지 8명의 대통령을 수행했다. 백악관에서 버틀러로 살았던 만큼 당시 굵직했던 미국 근현대사는 그의 삶을 관통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버틀러’가 진정 보여 주고 싶은 건 장애보다 더 큰 장애인 인종차별이다. 세실은 흑인으로 태어난 게 ‘천형(天刑)’으로 여겨질 만큼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감내하며 당시로선 최고의 위치라 할 수 있는 버틀러가 됐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이웃의 부러움을 사는 안정적인 생활은 꾸리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 취급 못 받는 흑인이며, 백인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면 세실은 스스로를 위안한다. “집사의 역할은 매우 작고, 어쩌면 하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없다면 그들은 그리 많은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 버틀러는 흑인과 백인 간의 소통 창구 역할로 일정부분 기여했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안 보고 못 들은 척 벽지에 새겨진 무늬처럼 희미하게 존재해야 했지만 때로는 그들도 진실을, 또 정치적 소신을 나름 피력해왔다. 그래서일까. 세실이 수행한 대통령(레이건을 제외한) 대부분은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흑인인권법안을 제안했던 케네디는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저격당했다.

영화 도입부에 인용된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 이유다. 그는 비폭력과 사랑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이 인종차별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했다. 흥미로운 건 세실과 달리, 인권투쟁을 하는 장남 루이스(데이비드 오예로워)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는 점이다. 마틴 루터 킹은 그런 루이스에게 넌지시 말한다. “버틀러는 그들(백인)로부터 대단한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라며 “우리의 인권투쟁 못지않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버틀러’는 리 다니엘스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포레스트 휘태커의 인상적인 연기가 빛을 발한 작품이다. 그런 두 사람이 이 영화의 뼈대라면, 여기에 살을 붙여나간 건 오프라 윈프리, 로빈 윌리엄스, 존 쿠삭 등 유명 스타의 대거 등장이다. 이들 덕에 ‘버틀러’는 좀 더 특별한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머드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관람가)

사랑을 믿고 싶은 소년과 사랑을 갈구하는 살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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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드’는 두 남자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믿고 싶은 열네 살 소년 엘리스(타이 쉐리던)와 목숨을 던져서라도 사랑을 갈구하고 싶은 남자 머드(매튜 매커너히)가 주인공인 이야기. 영화는 그런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깨지고 바래져도 또다시 잉태되는 영원한 사랑이라니 일단 궁금하다.

미시시피 강변에서 나고 자란 엘리스는 절친 넥본(제이콥 로플랜드)과 함께 놀러간 무인도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걸려있는 보트를 발견한다. 아지트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검게 그을린 초라한 행색의 머드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는 평생을 사랑한 주니퍼(리즈 위더스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이곳에서 잠시 피신중이라고 말한다. 엘리스의 눈에는 그런 그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한편 청부업자까지 동원한 유족은 그를 잡기위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주니퍼에 대한 그의 사랑을 굳게 믿는 엘리스는 무인도를 탈출하려는 머드의 계획에 힘을 보탠다.

카메라는 시종 엘리스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간다. 그는 지금 열네 살이라는 나이가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에 놓여 있다. 상급생과 첫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그를 어린애 취급하고, 부모는 지금 이혼을 준비중이다. 그런 그에게 일종의 소통구가 된 건 정체불명의 이 남자, 머드다. 십자가가 박힌 행운의 부츠를 신고, 팔에 뱀 문신을 한 그는 누가봐도 예사로운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스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서 평소 품어왔던 이상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는 소년 엘리스의 성장담이다. 그는 머드를 통해 상처를 치유받고, 다시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한다. 이는 곧, 다시 상처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엘리스는 이제 당당히 맞설 용기가 생겨났다. 따라서 그가 깊은 수렁에 빠진 머드를 도와주는 건 사랑에 대한 자신의 평소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엘리스와 머드, 두 사람은 닮아 있다.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것도, 유년 시절 뱀에 물리는 경험까지 똑같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사랑을 통해 성장해가지만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삶은 특히나 똑같다.

‘머드’는 전작 ‘테이크 쉘터’를 통해 불안에 휩싸인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담아냈던 제프 니콜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다. 고향인 아칸소주의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영화속에 오롯이 담아냈다. “나의 10대 시절은 사랑이 영원할 것을 믿었고,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었다”고 말한 그는 “사랑에 빠지면 마치 열병을 앓는 것 같지만, 그것에 실패했을 때의 고통은 더욱 크다”고 했다. 엘리스가 성장통을 겪었던 10대 시절 감독의 자아라면 머드는 그의 이상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제프 니콜스 감독은 매튜 맥커너히를 각본 단계에서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테이크 쉘터’의 열렬한 팬인 맥커너히 역시 그의 출연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덕분에 현실보다는 환상에 젖어 사는, 어른보다는 아이 같은 사고 방식의 머드 캐릭터가 완벽히 탄생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주인공은 엘리스를 연기한 타이 쉐리던. 2011년 ‘트리 오브 라이프’로 데뷔한 쉐리던은 상실과 성장을 경험하는 엘리스의 모습을 녹록지 않은 연기력으로 소화해내며 맥커너히의 아우라를 뛰어 넘었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맥커너히 역시 “전혀 연기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한 엘리스의 모습이었다”고 극찬했다.

미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듯 매혹적이고 감성적인 서사와 이미지들이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영화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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