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상)삼겹살 이야기

  • 이춘호
  • |
  • 입력 2014-07-25   |  발행일 2014-07-25 제41면   |  수정 2014-07-25
‘국민 메뉴’ 삼겹살구이 대구에 언제 처음 나왔을까
20140725
2010년까지 인기를 누렸던 예전 방식의 생삼겹살 스타일. 지금은 두께가 이것보다 2~3배 두껍고 더욱 숙성을 강조한다. 흑돼지 명가로 불리는 김천시 지례 흑돼지 구이.

돈철살인(豚鐵殺人)!

돼지고기 얘기를 하자니 갑자기 그 단어가 생각난다. 그 시절, 그러니까 쇠고기가 산삼보다 더 귀하던 시절, 대구는 돼지찌개와 돼지두루치기의 본산이었다. 유조선 사고 해역을 떠다니는 두꺼운 기름띠 같은 돼지기름, 잘 정리되지 않아 비쭉비쭉 올라온 검은 돼지털, 요즘 사람들에겐 혐오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허기가 일상이 된 그땐 돼지고기 한 점이 죽은 세포를 벌떡 깨우는 가공할 만한 파워를 갖고 있었다. 시들어가는 서민의 기력을 깨우니 그것이 바로 ‘돈철살인’이 아니고 뭘까?

돼지고기만큼 숱한 얘기거리를 가진 음식도 드물 것이다. 농경사회 때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결해주는 ‘통과의례육(通過儀禮肉)’이었다. 각종 고사는 물론 기제사, 향사 등엔 으뜸 제수였다. 무속인에겐 영험한 식재료였다. 오줌보는 축구공 대용이었다.

예전에 소는 도축금지 대상이었다. 그래서 평생 쇠고기국 한번 못 먹고 죽은 민초들도 많았다. 대신 개·돼지가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였다.

중국과 제주도는 돼지를 최고의 고기로 추앙한다.

특히 제주도에서 쇠고기는 최악의 고기로 받아들인다. 대구에서 유명한 갈빗살집도 거기로 건너가면 채 1년을 못 견디고 문을 닫을 것이다. 쇠고기 정육점도 거의 몰살지경이다. 오직 돼지만이 귀하신 존재다. 제주도에선 3일 이상 진행되는 잔치 때 돼지 삶은 육수에 몸(모자반)과 메밀가루를 넣고 매생이처럼 걸쭉하게 끓인 ‘몸국’을 제1의 전통음식으로 섬긴다. 잔치국수도 돼지를 끼고 돈다. 멸치육수 대신 사골육수를 사용해 중면을 넣고 그 위에 토핑처럼 삼겹살을 도리뱅뱅이처럼 돌려놓는다.

전북 진안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독특한 돼지요리를 해먹는다. ‘애저(哀猪)요리’다. 흔히 ‘돼지새끼집’을 애저라 한다. 애저를 한자로는 ‘아저(兒猪)’라고 한다. 일찍 희생되는 아주 어린 새끼돼지가 너무 애석하다는 뜻으로 슬플 哀(애) 자를 써서 애저라고 한다.

그런데 애저요리 중 가장 별스러운 스타일이 제주도 한 시장 안에서 팔리고 있다. 새끼를 꺼내 믹서에 갈아서 고춧가루, 깻가루, 김, 생강, 잔파, 참기름, 미나리 등으로 갖은 양념을 한 후에 계란 노른자와 식초를 넣어 조리한 ‘애저회’다. 암퇘지는 보통 임신 4개월이면 분만을 하게 되는데, 전라도의 애저는 생후 2개월 미만의 새끼돼지를 쓰지만 제주도는 뱃속에 들어 있는 2개월 내지 3개월의 태아를 쓴다. 이 무렵의 새끼는 돼지의 형태를 어렴풋이 갖추기는 했으나 아직 뼈가 굳지 않고 돈모가 자라지 않은 연한 상태다. 양념이 되어 대접에 담긴 발그스름한 반 액채 상태의 회다. 양이 적어 애저 한 마리는 성인 남성이 두 모금이면 마셔 버린다.

70년대초 냉면집 ‘삼겹살’ 시초
양은도시락 뚜껑에 1인분씩 제공
돼지갈비는 78년 ㅅ대구에 첫 등장
90년대 들어 ‘숙성 생삼겹살시대’
2000년대 중반이후 ‘두께의 전쟁’
최근엔 제주흑돼지 삼겹살 인기

◆ 돼지수육의 메카, 서성로 돼지골목

경상도는 타 지역에 비해 유별스럽게 돼지요리를 즐긴다.

대구의 경우 광복 직후부터 70년대 후반까지는 돼지수육 전성시대였다.

수육과 함께 눌린 돼지머리도 인기였다. 삶아 흐물흐물해진 돼지머릿살을 모두 발라내 네모난 곽에 넣고 상어 피편처럼 눌러 만든 것이다. 50년대부터 중구 서성로는 돼지골목으로 유명했다. 서성로 돼지고기집은 50~60년대 1기, 70년대 생겨난 2기 식당으로 나눌 수 있다. 1기 대표주자는 서성식당(주인 정순연씨)이다. 그다음 순대, 수성, 김천, 대구 등 5개 식당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장사를 했다. 대구식당은 이후 밀양식당이 돼 지금 골목 초입을 당산목처럼 지키고 있다. 현재 8번식당과 이모식당이 가세 서성로 3인방 돼지집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76년 오픈한 8번식당은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 고향인 합천을 방문할 때 이 집 고기를 갖고 가면서 유명해진다.

돼지국밥 역시 경상도가 메카다.

경북보다 경남이 더 전통이 짙다. 대구는 원래 돼지국밥이 대세가 아니었다. 경남 밀양 무안군의 동부식육식당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어 전국 돼지국밥 1번지로 불린다. 그런데 돼지국밥이 대박이 난 건 부산이다. 부산역 앞 초량 차이나타운 근처 ‘평산옥’, 서면 롯데호텔 뒤편 ‘송정돼지국밥’, 구포시장 근처 ‘덕천고가’ 등이 부산 돼지국밥의 명가로 군림한다. 이에 반해 중부 지방은 돼지국밥은 별로 인기가 없고 대신 병천순대 등 순대국밥이 강세다. 순대국밥도 처음에는 수애(제주식 순대)처럼 창자 안에 돼지피만 넣었다가 나중에 찹쌀과 당면 등이 들어간다. 현재 대구의 돼지국밥은 봉덕시장과 명덕시장, 그리고 대명동 파크맨션 근처 ‘파크 돼지국밥’, 달서구 용산동 ‘고령돼지국밥’, 앞산네거리 근처 ‘밀양돼지국밥’, 염매시장 초입의 ‘선산돼지국밥’ 등이 대표 격으로 뛰고 있다. 70년대 대구에선 특이하게 돼지수육과 칼국수가 세트메뉴로 결합된다. 그러면서 노보텔(옛 국세청) 옆 골목에 암뽕(돼지자궁)칼국수 거리가 형성된다.



20140725
고온의 화덕에서 피자처럼 빨리 구워내는 ‘3초삼겹살’.

◆ 삼겹살의 화려한 진화

돼지요리는 이 정도에서 진화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70년대 정말 다양한 고기 메뉴가 혈전을 벌인다.

동인동찜갈비, 대신동 쇠갈비, 불고기, 북성로 돼지불고기우동, 삼겹살, 돼지갈비, 돼지불고기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출시된다.

70년대 초 대백 바로 옆에 있는 원산면옥에서 삼겹살 구이가 등장한다. 양은 도시락 뚜껑에 1인분씩 썰어내 와 구워 먹게 했다. 이 흐름과 맞물려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가 등장한다. 60년대 ‘계산땅집’에서 발흥한 불고기 여파가 ‘돼지불고기’로 이어진다. 현 노보텔 뒤편에서 오픈한 ‘팔군식당’은 대구에서 맨 처음 돼지불고기 시대를 연다. 삼겹살보다 저렴한 다릿살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만들었다. 78년 의성 출신 황희순씨가 남구 대명1동 현 남구 CATV 자리에서 ‘대원돼지숯불갈비집’을 연다. 대구 첫 돼지갈비구이집이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건 남부정류장 근처의 ‘미정’, 달성파출소 옆 ‘마당갈비’ 등이다. 이게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들안길 ‘서민숯불갈비’ 시대를 연다. 흥미로운 사실은 돼지갈빗집이 거의 프로야구 출범 원년이었던 82년쯤 몰렸다는 점이다. 팔군의 아성을 접수한 건 82년쯤 북성로 기계공구 골목 한편에 포장마차형 원조돼지불고기 시대를 연 최진수씨다. 이에 앞서 칠성시장 내 함남·단골식당에서 돼지석쇠불고기를 탄생시킨다. 그 흐름을 역 이용한 건 82년쯤 남부정류장 맞은편에 문을 연 미정과 마당갈비. 두 식당 모두 한약재를 양념재료로 흡수한 게 특징이다.

물론 80년대 가장 번성한 돼지 메뉴는 단연 ‘삼겹살’. 90년대 중반 콜드체인시스템(냉장유통체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돼지고기는 항상 조심해서 먹어야 될 음식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위생적 도축과 유통이 완비되지 않아 항상 돼지고기는 바싹 구워 먹어야 안전하다는 게 일반인의 인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삼겹살집은 냉동 대패삼겹살이 주종이었다. 쿠킹포일을 깔고 그 위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그런데 그 어름 북구 3공단 내 명성불고기집에서 돼지기름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 바로 불판 한쪽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 생삼겹살 시대의 개막

90년대 초반으로 넘어오면서 기능성 삼겹살 시대로 넘어간다. 와인, 고추장 등 양념에 잰 ‘숙성 생삼겹살 시대’가 개막된다.

이어 호동이, 호박터 등이 1인분 2천원짜리 양념돼지갈비 시대를 연다. 그 흐름과 함께 IMF 외환위기 직후 고향솥단지생삼겹살 시대가 열린다. 고향솥단지는 원래 서울에서 시작됐지만 이걸 2002년쯤 대구에서 수입해 더욱 꽃을 피운다. 기존 네모난 불판 시대를 종식시키고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솥뚜껑을 불판으로 등장시켰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냉동삼겹살은 퇴조하고 생삼겹살 시장이 본격화된다. 고향솥단지는 이를 역이용하면서 기존 곁반찬으로 내던 걸 과감하게 삼겹살 옆에 매칭시켰다. 묵은지, 콩나물, 호박, 햄, 가래떡까지 올려 이보다 더 푸짐하고 재밌는 삼겹살 차림은 없을 것 같았다. 2000년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삼겹살 두께가 더 두꺼워지고 더욱 새로운 육질과 맛을 위해 별의별 테크닉을 다 구사했다. 고기를 더 빠른 시간 내 더 맛있게 골고루 익히기 위해 칼집을 십자 모양으로 넣었다. 그 모양이 꼭 벌집 같아 ‘벌집삼겹살’로 불렸다. 대박이었다. 이어 피자처럼 300℃ 가까운 고온의 화덕에서 피자처럼 빨리 구워내는 ‘3초삼겹살’도 강력한 세를 유지했다.

2005년 무렵 제주도에서 새로운 삼겹살 문화가 형성된다. 제주 ‘근고기’ 문화이다. 제주도에선 100g 식으로 팔리는 게 아니고 한 근 600g을 기준으로 고기가 팔렸다. 한 근 삼겹살을 현지인들은 근고기라고 했다. 거기선 삼겹살보다 주로 목살이 많이 팔렸다. 제주도 흑돼지는 제주도 똥돼지의 연장선상에서 팔렸다. 초창기 제주도에선 오분자기뚝배기, 갈치 요리 등이 대표적 관광음식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제주흑돼지근고기가 대세였다. 제주도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의 가시식당 등은 돼지두루치기구이가 대박을 낸다. 고추장에 재어놓은 고기를 구워서 삶은 고사리와 함께 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1박2일에서 제주시 노형동 돈사돈 고기를 소개했다. 이게 대박을 친다. 나중에 늘봄, 칠돈가 등은 빌딩형 삼겹살집으로 인기를 얻는다. 제주도 삼겹살은 기존 경상도 삼겹살보다 훨씬 두꺼웠다. 제주도 삼겹살 신드롬이 3년 전쯤 대구에 상륙한다. 기존 양념돼지갈비는 물론 얇은 삼겹살 시대가 된서리를 맞게 된다. 물론 이런 가운데도 1인분 1천500원짜리 ‘삼겹사랑’이 반짝 붐을 일으켰고 수입 갈빗살을 1인분 4천원에 파는 뒷고기도 선방을 한다. 대구에선 돈사돈, 돈앤돈, 제주포크 등이 두꺼운 목살구이 시대를 연다. 이젠 그 흐름이 지역 삼겹살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두꺼운 왕소금구이 삼겹살 명가인 맛찬들, 존슨식당, 양군팩토리, 고령불 등 지역 두꺼운 삼겹살 전문점의 깊숙한 얘기가 이어진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