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제철 만난 굴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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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41면   |  수정 2014-10-31
탱글 통통 ‘바다의 우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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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말이면 경남 통영시는 도시 전체가 굴천지로 돌변한다. 특히 고성만 굴밭에서 수확해온 껍데기에 쌓인 굴은 통영의 대표적 굴마을인 양촌마을 박신장 등에 보내지고 아녀자들은 속살만 빼내는 작업을 박신장에서 한다. 양촌마을 박신장 작업 전경.

지난 16일 오후 6시 통영시 동호동 굴수하식수협.

올해 첫 경매된 햇굴이 ‘초매식(初賣式)’을 갖고 본격 수매에 나섰다. 초매식은 굴산업 발전 및 번영을 기원하는 풍어제.

지금부터 통영산 생굴이 진미를 더할 때이다. 통영의 대표적 굴 마을은 통영시 용남면 동달리 동암마을과 삼화리 양촌마을.

남해안 생굴은 경남 통영과 고성, 거제, 마산,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매년 10월부터 늦게는 이듬해 4월 말까지 4만t 이상이 생산된다. 이는 전국 생굴 생산량의 80~90%. 이 굴은 모두 통영시 동호동 전국 유일 굴수하식수협을 통해 전국에 보내진다. 수하식굴은 굴을 바다에 늘어뜨려 양식하는 방식이다.

이 무렵 통영에서는 아녀자 보기가 어렵다. 모두 ‘박신장(剝身場)’으로 일하러 가기 때문이다. 오전 4시를 조금 넘기면 통영시에서 아녀자를 태우고 와서 박신장 앞에 내려놓는 봉고차 전조등 불빛이 어촌을 깨운다. 80호가 모여 사는 양촌마을의 박신장은 모두 10여 군데. 굴마을답게 굴 껍데기가 모여 형성된 굴담과 굴탑이 인상적이다.

물론 통영굴은 자연산이 아니고 양식. 키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평균 10회 이상 바다로 들락거려야 수확이 가능하다. 특히 박신장 아녀자들의 손목은 말이 아니다. 통증이 심해 일하는 중간 뜨거운 물에 한 손을 담그기까지 한다. 일당도 시급이 아니라 깐 무게만큼 돈을 지불한다. 많이 버는 사람은 하루 15만원 선. 굴은 아무나 못 깐다. 굴눈 아래 연하 부위를 칼로 밀어 넣은 뒤 속살이 상하지 않게 상하좌우를 과학적으로 파고들어야 비로소 열린다. 일반인은 한 달 이상 연습해야 작업대에 오를 수 있다. 깐 굴은 11㎏ 단위로 비닐봉지에 채워져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동호동 경매장으로 보낸다.


굴은 오후에 경매

특이하게 굴은 오후 5시에 경매가 시작된다.

그래야 동절기 특성상 18시간 햇빛에 노출되지 않고 전국 곳곳으로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영굴은 모두 고성만 굴목장에서 자란다. 수산 당국에 허가를 받아야 양식할 수 있다. 이젠 한려수도 굴양식장이 포화상태. 당국이 더 이상 양식장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단다. 바다 임차료는 1㏊당 6천만원 선. 한번 바다로 나오면 4~5t 따 온다. 현장으로 가는 배를 여기선 ‘뗏목선’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자동 채굴기를 통해 따낸 굴을 집어넣어둔 500㎏쯤 되는 망을 뗏목선으로 옮겨주는 리프터가 장착돼 있다.

국내의 수하식굴 산업은 1960년쯤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는데, 이 수하식이 남해에 들어오면서 굴 주산지가 바뀐다. 양식의 시작은 굴을 종착시키는 조가비 엮는 작업부터. 굴은 6~8월 산란을 한다. 때를 맞추어 조가비를 엮은 줄을 바다에 내리는데, 이를 ‘채묘(採苗)’라 한다. 채묘한 굴은 두 번째 겨울에 수확된다. 깐 굴의 크기는 보통 8g 이상, 큰 것은 12g 정도. 인종 종패장에서 가져온 종패를 매달아 키우는 양식줄을 지탱하는 가로 밧줄 길이는 200m. 40㎝ 간격으로 6.5m 줄에는 굴 종패 25~26개가 붙는다. 굴이 바닥에 빠지지 않게 스티로폼 부표를 단다. 요즘은 담치가 극성을 부린다. 굴줄이 올라오면 60㎝ 길이로 잘라줘야 담치 제거기가 잘 작동된다. 굴은 2년 정도 키워야 경매장에 나올 수 있다.


굴의 종류도 여러 가지

삼천포 갯벌소굴, 여수돌산 생굴, 천수만 바위굴, 섬진강 강굴, 고흥 소굴….

한국의 굴은 크게 양식굴과 자연산굴로 나뉜다.

서해안 굴의 메카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포구 굴맛 체험장과 천북 굴단지. 그래서 서해안 굴이 ‘천북굴’로 불린다. 여긴 통영과 달리 수하식이 아니고 직접 바위에 붙은 굴을 쪼아 속을 캐내는 방식. 아낙네들이 갈고리로 물이 들어오는 오후 2시까지 일한다. 또한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 인근에선 갓난아기 머리만 한 자연산 통굴이 명물이다.

통영굴보다 한 달 늦게 자연산 굴 채취가 이뤄지는 곳이 있다.

어리굴젓 생산지로 유명한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11월 중순부터 내년 봄까지 제철인데 요즘 굴 수확철을 맞는다. 간월도 굴은 표면에 털 모양의 돌기가 많아 양념이 골고루 배 김장용이나 어리굴젓용으로 인기가 높다. 서산지역에는 간월도를 포함해 모두 7곳의 어리굴젓 가공업체가 입주 연간 100여t의 어리굴젓을 생산하고 있다.

통영에서는 생굴이 인기인데 간월도는 영양굴밥이 인기다. 간월도영양굴밥의 특징은 쌀을 안칠 때부터 재료를 전부 넣고 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밤과 버섯, 당근, 굴을 쌀과 함께 안친 후 후 대추, 호두, 은행을 밥 뜸 들일 때 넣는 것이 포인트.

‘태안반도의 땅끝마을’로 불리는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마을’.

여기에 기네스북이 인정한 2.7㎞ 벽화가 이원방조제에 조성돼 있다. 이 마을은 동절기 ‘태안 깜장굴’의 본고장. 이 해역은 서해안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세다. 자연산 굴은 갯벌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모래바닥인 남해안 수중에서 자라는 수하식굴에 비해 더 쫄깃하고 검고 작아서 서해안 어리굴젓의 기본형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어리굴젓과 진석화젓을 구별해보자.

어리굴젓은 짜지 않게 담근 굴젓. 여기에 고춧가루를 추가해 먹는다. ‘어리’란 말은 ‘덜되고 모자란다’는 뜻을 가진 ‘얼’이 어원이다. 얼간으로 담근 젓을 어리젓이라 한다. 젓갈 담글 때 소금은 젓갈 재료의 20~30%. 하지만 어리굴젓은 보통보다 훨씬 적은 7% 수준. 단단하고 작은 굴이 아니면 제대로 된 어리굴젓이 어렵다. 상온에서 쉬 상한다.

진석화젓은 소금이 굴 양의 30% 정도. 그래서 좀 짜다. 20일쯤 숙성하면 굴에서 국물이 나온다. 이를 받아 물을 부어가며 달인 후 삭혀 굴젓에 다시 붓고 또 삭힌다. 1~3년 둬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진석화젓과 어리굴젓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충남 서해안은 어리굴젓, 전남 서남해안은 진석화젓이 인기.


전남 광양의 강굴

매년 초봄쯤 통영 수하식굴이 숙질 때쯤 전남 광양 섬진강 끝자락 망덕포구의 ‘강굴(일명 벚꽃굴)’이 만개한다. 강굴은 꽃을 따라 올라간다. 채취 시간도 그렇지만 판매 루트 역시 꽃이 피었다 지는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광양에 매화꽃 피고, 하동에 벚꽃 일어나면 직접 와서 사 먹는 사람이 많다. 일주일쯤 뒤 광양에 꽃이 지고, 충청도쯤에 피면 그곳에서 택배 주문이 갑자기 늘어난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벚꽃의 개화가 서울까지 올라가면 주문이 폭주한다.

이른 강굴이 꽃망울을 틔울 때 잠수부(머구리)는 강물에 들어간다. 강굴은 섬진강이 제 안의 깊이로 피워내는 꽃. 강굴의 채취는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을 따라간다. 광양시 망덕포구를 거슬러 20분을 올라가면 ‘돈탁마을’이다. 거기가 국내 강굴의 한계선이다.

강굴은 수심 3∼4m 강바닥 돌에 붙어 산다. 강굴은 크기가 일반 굴의 10배 이상. 어른 손바닥보다 크고, 어떤 것은 직경 30㎝ 이상이다. 강굴은 오직 섬진강의 끝에서만 자란다. 재첩처럼 해수와 담수 사이에서만 자란다. 채취는 2월에 시작해 4월에 끝을 맺는다.

강굴을 세상에 알린 것은 20여년 전 이 포구 운영호의 선장 이성면씨. 그는 원래 잠수부였다. 여수에서 물질을 하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고향인 망덕포구로 돌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다시 물에 들어갔다. 거기서 묘하게 생긴 굴이 있어 술안주로 먹었는데 입소문이 났다. 섬진강댐 공사 이후로 하류로 내려오는 강물의 수량이 많이 줄었다. 강 하류의 염도가 급속하게 올라가 강굴은 하루가 다르게 준다. 강굴은 물의 염도에 아주 민감하다. 망덕포구 인근의 염도는 16∼18%. 더 올라가면 강굴에는 치명적이다. 완전히 자취를 감출 날도 멀지 않은 느낌이다.

바다와 가까워지면 알도 작고, 껍질도 흑갈색이 된다. 염도와 온도가 적당하면 며칠 밤에 5㎝ 이상을 훌쩍 자란다. 갑자기 자라면 그 흔적이 굴 껍질에 나이테로 새겨진다.

섬진강의 강굴은 세 개 마을이 관장한다. 돈탁과 망덕 그리고 하동 쪽 한 마을이다. 채취의 권한은 원래 마을에 있지만 따는 게 어려워 잠수부를 부른다.


대구의 굴국밥

14년 전쯤 대구에서도 굴국밥 붐이 인다.

최근 등장한 멍게비빔밥처럼 통영·거제권에서 진격해온 음식이다. 2001년 등장한 동구 신천동 ‘청정굴국밥’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원조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후발주자로는 수성구 만촌동 ‘마당넓은집’이 기억에 남는다. 가맹점으로는 ‘모려촌’이 강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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