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1년, 대한민국에 묻다] <중> 아프냐? 나는 아프지 않다…공감능력 상실의 이념사회

  • 이은경 노인호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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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0   |  발행일 2015-04-20 제6면   |  수정 2015-04-20
가족 잃은 슬픔도 이념 잣대 들이대…치유보다 반목·갈등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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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길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메시지와 함께 걸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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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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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일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세월호 1주기를 맞은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가한 시민 1만여명은 행사가 끝난 뒤 차로를 점거하고 거리행진에 나섰다. 선두에선 ‘청와대로 가자’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경찰은 ‘차벽’으로 맞섰다. 경찰 버스를 삼중으로 세워 추모객의 광화문 광장 진입을 막았다. 경찰이 광화문 일대에 투입한 경찰관 수는 130개 중대 1만명에 달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광장 건너편에서 ‘세월호 선동세력 규탄 집회’를 열었다. “불순세력 물러나라. 세월호 유가족 물러나라”며 고함을 질렀다. 세월호 이후 1년, 대한민국은 깊은 고통의 바다에 빠졌다. 치유와 위로의 시간은 찾아오지 않았고 봉합되지 못한 갈등만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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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북 논란…이념 논쟁에 진실 외면세월호 참사는 이념 대립과 무관한 사건이다. 이것이 진영논리로 가면서 국민은 분열됐고 사건의 본질은 흐려졌다. 이는 한국정치를 규정하는 증오의 정치, 양극화의 정치가 가장 큰 원인이다.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규명”
600만 서명도 진영논리로 왜곡
본질 외면한채 공감·위로 뒷전
오히려 피해자에 분노의 화살

공동체 애도·문제해결 기회 상실
공공善 부재에 사회 응집력 약화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단식 투쟁하던 세월호 피해자 가족 앞에서 벌인 ‘일베’의 폭식시위를 이념논쟁인 것처럼 이데올로기 덧칠을 한 것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600만 시민이 서명한 의미를 희석시키려 한 시도로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슬픔과 분노를 이념논쟁으로 왜곡시켜 시민들의 거부감과 피로감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민들이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에 대한 논의를 귀찮고 골치 아픈 일로 여겨 외면하도록 유도한다는 얘기다. 노 교수는 이처럼 논점 흐리기가 계속된다면 결국 무관심한 다수가 존재하고, 좌우로 양극화된 진영만 남아 싸우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연희 대구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사회적 위기에 대해 기회주의적 접근을 하는 것도 공동체 개념을 쇠퇴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 비극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이를 함께 풀어 나가지 못하고 대결 국면으로 몰고가서 사회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 지도력의 부재는 사회 단결을 가져오기보다는 사회의 응집력을 약화시키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사고 처리 과정에서 사안이 정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초기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한 공감과 애도는 이미 사회적 갈등에 염증이 난 시민과 목소리를 잃고 사는 사람들의 무기력감을 더 첨예하게 경험하게 했다. 그 결과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분노의 화살이 돌아가는 결과에 이르게 돼 공동체 차원의 애도, 문제 해결, 고통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윤석기 2·18희생자대책위원장은 “전체 사회를 아우르는 건강한 가치 기준과 생활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면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 ‘진영논리’와 ‘패거리문화’가 득세한 오늘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지나 의사와 무관하게 이웃과 사회가 기준과 사고를 나에게 강요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옳고 그름에 앞서 내편, 네편을 따지니 무엇인들 제대로 느끼고 반응할 수 있을까.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다 정치꾼’이라는 유가족들의 호소를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

◆ 일시적 동정심에 이은 혐오와 모멸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지극한 슬픔과 공감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공감과 적대의 감정도 있었다. 슬픔이 깊을수록 반감도 컸다. 희생자에 대한 보상 문제, 유가족의 단식농성 등을 소재로 한 편 가르기와 여론몰이는 이러한 비공감과 반애도의 정서를 자극, 확산시켰다.

전문가들은 고도 경쟁사회가 되면서 협소한 의미의 ‘우리’라는 가족 테두리를 벗어난 공동체 의미는 사회화 전과정을 통해 크게 강조되지 않게 됐고, 경쟁력과 생존 능력의 확보가 강조되면서 이웃의 아픔에 대한 공감, 이타심에는 크게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내가 아무리 바른 소리를 해도 국가는 억압하고, 시민들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남 교수는 “이런 신념 속에서는 삶의 태도가 분열적이며 모순적이 된다. 국가에 대해서는 공포가 본질인 숭배, 시민에 대해서는 최상의 호의가 사회적 인정을 배제한 동정(‘지못미’ 현상의 본질이 이것이라고 볼 수 있다)의 양극으로 분열된다”고 진단한다.

“주체적인 사랑은 부당한 권위에 함께 싸우는 것인데 한국은 이게 특히 잘 안 된다”는 남 교수는 “공감 능력의 상실은 엄밀히 말해 공감은 하지만 인정은 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공감 부족의 현상을 드러나게 하는 결정적 모티브는 ‘주체로서 역사적 패자 의식’, 내가 해봐야 뭐가 달라지겠나 하는 체념과 자기 냉소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 정부나 선사와 같은 구조적 모순, 사회적 인정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분노와 개선에 대한 의지는 애초에 우리 국민의 역사적 유전자에서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고작 감정적으로 희생자에 대한 푸닥거리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뿐이다.

“사유 부재의 삶이 악을 낳았고, 이것은 세월호라는 비극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김석수 경북대 교수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기억해주고 그 속에 동참하여 소통하는 ‘이야기’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죄의식을 잃어버리고 과다 경쟁과 성패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타자의 아픔에 책임을 못 느끼는 무사유의 삶을 살고 있다”는 김 교수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타자를 고려하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웃을 다시 발견하고, 그 속에서 소중한 삶을 일구어내는 공동체를 재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백승대 영남대 교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는 적자생존을 생존전략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도록 부추기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건 공감하며 협력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공동체와 공공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만,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더 비천하게 돼버렸다. 비공감과 적대감을 넘어 공공선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마음을 어떻게 모으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세월호 이후…’ 외부전문가 그룹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 ▲김연희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희철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기 2·18희생자대책위원장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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