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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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26   |  발행일 2015-06-26 제38면   |  수정 2015-06-26
그대 발길 붙잡는 300살 느티나무 그늘…그리고 마르지 않는 샘물 용천수 한 모금
의상대사가 짓고 일연선사 중창
헐티재 넘어 2㎞ 산길 내려가면
오른쪽에 아담한 용천사
한때는 승려 1천여명의 대가람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비슬산 용천사.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천하제일의 물맛을 자랑하는 용천사 샘물.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용천정의 샘물을 관으로 연결해 누구나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용천사 범종각과 300년 되었다는 느티나무.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대웅전 축대 아래에 오랜 유물들이 정렬되어 있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각북면 비슬산 용천사
용천사 입구. 작은 연못을 만들고 석축을 쌓는 등 최근 진입로를 확장하고 있다.


당나라 아가씨 선묘는 젊은 의상스님을 사랑하였다. 의상이 수행에 들어간 지 10년, 그 시간 동안 선묘는 그를 위한 법의를 짓고, 그의 득도를 기원하며 기다렸다. 단 하나의 바람만 있었을 뿐, 떠나실 때 그 모습 보여 주소서. 그러나 운명은 엇갈려,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의상이 탄 배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보며,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진다. 죽어 용이 된 선묘는 이후 내내 의상대사를 수호하였다고 전해진다.

◆ 천년 고찰 용천사

신라로 돌아 온 의상대사는 전국에 많은 사찰을 짓는데, 문무왕 10년인 670년 청도 비슬산 동쪽 기슭에 지은 절이 옥천사(玉泉寺)다. 최치원의 기록에 의하면 옥천사는 화엄경을 널리 펴기 위한 화엄십찰(華儼十刹)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이후 1267년 고려 원종 때 일연선사가 중창하여 불일사(佛日寺)라 했고, 다시 용천사(湧泉寺)라 개칭했다.

가창댐 지나 청도 가는 길. 헐티재를 넘어 굽은 산길을 2㎞쯤 내려가면 오른쪽에 용천사가 있다. 예전에는 도로에서 살짝 물러난 조금 높은 지대에 수목들로 가려져 있어 잘 눈에 들지 않았다. 최근 도로 쪽으로 석축을 쌓고 진입로를 새로 내는 공사를 하고 있는데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분위기다. 오솔길 분위기가 나던 옛길에는 잡목들이 잔뜩 쌓여 통행이 불가능했다. 새로운 입구에는 ‘비슬산 용천사’라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서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응진전과 화엄당, 요사채, 용천각, 산신각이 자리하고, 오른쪽에는 주지실과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 앞에는 300년쯤 되었다는 느티나무가 상쾌한 그늘을 드리우며 서 있고, 그 옆에는 땅으로 땅으로 자꾸만 눕는 배롱나무가 낮은 테두리의 보호 속에 살고 있다. 통나무 의자 몇 개가 이 나무들의 그늘과 향기 속에 놓여 있다. 앉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혹적인 쉼터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주 커다란 돌구유가 하나 놓여 있다. 구유 속에는 ‘까실쑥부쟁이’가 가득 자라고 있다. 원래는 스님들의 공양을 위해 곡식을 저장하거나 밥을 퍼 보관했던 것이라 하는데, 옛날 이 절집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크기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김진규의 사적기를 보면 ‘불전과 승료가 늘어선 것이 마치 바둑판에 돌 놓인 듯 정연하고, 층층이 올라선 누대는 하늘로 우뚝 솟아 뭇 별들을 사열하듯 하니, 이러한 사관은 거미줄처럼 뒤엉킨 민가와 함께 모란이 피어나듯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었다. 그 옛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시고 보각 국사께서 중수하셨다 하나 어찌 이보다 더 장관이었으리요’라고 했다.

지금은 아담하고 단정한 절집이지만 한때 용천사는 승려가 천여 명이나 되는 대가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백련암, 청련암, 일련암, 남암, 서암, 내원암, 부도암 등 47개의 암자를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1631년에 중창한 대웅전만이 옛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 다른 건물들은 모두 근대에 세워진 것이다. 대웅전 축대 아래에 정렬되어 서있는 일부만 남은 석탑과 석등의 팔각 간주석,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던 정료대도 옛 시간을 말해준다.

◆ 용천, 마르지 않는 샘물

용천사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끊임없는, 물 흐르는 소리. 용천사에는 용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이 우물 속에는 천년 된 물고기와 500년 된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가물 때나 장마가 질 때나 늘 일정한 양의 맑은 물이 솟고, 사철 마르지 않으며, 한겨울에도 어는 법이 없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충주의 달천물과 용천사 샘물 맛이 천하제일이라고 적혀 있다. 의상대사가 옥천이라 이름 한 것도, 일연선사가 용천이라 이름 한 것도 모두 이 샘물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몇 해 전 용왕제를 지내다 샘물 표면에 용의 형상이 나타나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더 오래 전에는 용천정에 오색 무지개와 함께 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헐티재를 넘어 청도와 대구를 오갔던 소 장수들은 용천정에 기도를 하고 용을 보면 크게 성공했다 하고, 자식이 없는 사람이 기원하여 용의 머리를 보면 아들을, 꼬리를 보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지금 용천정은 보호를 위해 덮어 두었다. 대신 관을 연결해 누구나 받아갈 수 있도록 설치해 두었다. 마당 한쪽의 석조 샘으로도 용천의 물은 계속 흘러나온다.

의상대사와 선묘의 이야기는 영주 부석사의 전설로 유명하지만, 어쩐지 용천사에 올 때마다, 용천의 샘물을 마실 때마다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된 선묘 아가씨를 떠올리게 된다. 부석사의 땅 속에도, 용천사의 우물 속에도, 아가씨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 풍경이 울면, 그 생각이 옳다고,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된다. 오늘처럼.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 파동에서 가창댐 쪽으로 들어가 헐티재를 넘어 조금 가면 용천사다. 용천사 샘물은 누구나 받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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