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전투 기념관 준공도 못하고 폐허…박쥐 우글거리고 잡초가 무성했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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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5-08-07  |  발행일 2015-08-07 제면
■ 광복 70년·창간 70년 ‘독립운동의 聖地’만주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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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적비 옆 기념관은 준공도 하지 못한 채 박쥐의 소굴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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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제비석 앞에서 만주항일기행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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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이로 백두산 천지의 장엄한 광경이 펼쳐지는 순간 일행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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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단둥의 일보과 인근에서 압록강유람선을 타던 중 북한 주민이 통통배를 타고 유람선 가까이로 와 관광객에게 북한산 물품을 팔고 있다.


단둥에서 유람선을 탔다
평안도 사투리 사내가
통통배를 타고 다가와
김치·오리알 등을 팔았다
국경경비대가 보고 있는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다 갖다 바쳐야 한다”고 한다

장수제의 안내문에는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중국 소수민족이라고 적혀있다
동북공정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다롄~단둥 =인천공항을 이륙한 여객기는 1시간여 서해 상공을 비행한 뒤 랴오닝성 다롄에 닿았다. 다롄은 요동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랴오닝성 제2의 도시다. 동북지역에 사는 중국인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항구도시라서 ‘북방의 명주’라고도 불린다. 다롄은 발해만을 끼고 있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하지만 지금의 하늘은 잔뜩 찌푸린 모습이다. 다롄~단둥은 고속도로로 연결돼 있다. 단둥까지 보통 차로 4시간이면 도착하는데, 중간쯤에서부터 공사구간이라 1시간 더 걸린단다. 도심을 벗어나 교외에 다다르자 개발구인 듯 크고 작은 빌딩과 아파트공사가 한창이다. 이어 옥수수 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30여분간 동쪽 평원을 달리자 왼쪽에 험준한 산이 보인다. 바로 다롄의 진산인 대흑산이다. 이곳에 고구려 천리장성의 끝 비사성이 위치한다. 비사성은 수·당나라의 수군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처음 맞닥뜨리는 산성이었다.

버스는 평원을 한참 달려 단둥에 도착했다. 가는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와 국도변 주유소에 있는 화장실을 찾았다. 중국의 화장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불결한 데다 악취도 많이 난다. 노상에서 허연 배를 드러내고 담배 를 피우는 중국 남성의 모습도 그대로다. 7년 전 베이징올림픽 이후 대도시의 공공화장실이 크게 개선됐다고 하나 이곳까지는 미치지 않은 모양이다.

▲단둥=단둥(丹東)은 ‘붉은 동쪽’이란 뜻으로 ‘안동’이라고도 했다. 도시가 아름다워 ‘동북의 소주, 항주’라고도 불렸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단둥에서 가장 큰 북한식당인 ‘평양고려관’을 찾았다. 6층 건물인 이 식당은 2011년 오픈했다. 여성 복무원에 따르면 직원이 100명 넘고, 해외에 있는 북한식당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단둥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가는 요로여서 그럴 것이다. 여성 복무원은 왼쪽 가슴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배지 대신 인공기 배지를 달았다. 김정은의 사진이 박힌 배지는 아직 없는가 보다. 북한식 요리가 나오고 3명의 무희가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 마치 남한의 걸그룹 같다. ‘휘파람’ ‘도라지’ ‘반갑습니다’ ‘임진강’등 귀에 익은 노래를 부른다. 주위의 권고로 동행한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무대에 나가 ‘임진강’을 구성지게 불렀다. 남과 북이 합창을 할 땐 늘 한 핏줄이건만 헤어지면 다시 남남이 된다. 이곳 말고도 단둥엔 묘향산, 봉선화 등 북한식당이 많다고 한다. 이날 저녁 압록강 조·중우의교 옆 광장을 찾았다. 강 건너 신의주 하늘에 서치라이트 불빛이 왔다 갔다 할 뿐 어두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단둥의 밤은 휘황찬란했다.

▲압록강 유람선=이튿날 오전 일행은 압록강 단교를 찾았다. 6·25전쟁 때 미군 전폭기의 폭격으로 끊어졌다는 교각이다. 교각 3개를 남겨 둔 끝지점에 다다르자 신의주가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압록강 유람선은 보통 단교 인근 선착장에서 출발했는데, 전과 달리 호산장성(고구려 박작성) 부근에 선착장이 하나 더 생겼다. ‘일보과(一步過)’, 한 발짝만 가면 바로 북한 땅에 닿을 수 있다는 곳을 지나니 북한과 중국의 강폭이 3m도 채 되지 않는다. 이곳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탔다.

기자는 이번이 네 번째 단둥 방문이지만, 이곳에서의 유람선 관광은 처음이다. 유람선은 윤중도(북한 땅)와 북한 내륙 사이를 오갔다. 배의 왼편, 오른편이 다 북한 땅이다. 흰 염소를 몰고 가는 북한 주민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경비 초소와 총을 든 군인도 있다. 고구려의 볼록한 옛 산성과 넓은 압록강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단교 주위를 맴돌았던 예전 유람선보다 훨씬 스릴이 넘친다. 일행은 선상에서 북쪽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무표정한 모습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물살을 가르며 가던 배가 갑자기 멈췄다. 어디서 통통배가 다가와 밧줄을 유람선에 맸다. 북한 주민인 듯 평안도 사투리를 거칠게 쓰는 중년의 사내가 유람선에 기대 물건을 판다. 산삼주, 김치, 오리알 꾸러미, 북한 담배 등 여러 품목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손을 내저으며 촬영을 못 하게 한다. 관광객이 창문을 열고 너도나도 북한산 물건을 샀다. 산삼주는 100위안, 김치는 20위안, 흥정을 하는 북한주민의 솜씨가 예사가 아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경비대, 유람선 소유자가 눈과 입을 맞추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는 거래다.

“저기 서 있는 국경경비대가 다 보고 있는데 어떻게 물건을 팔 수 있나요”라고 하자 “다 갖다 바쳐야 합네다”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선상에서의 한국관광객과 북한주민 간 사무역은 10여분간 계속됐다. 하늘엔 먹장구름이 잔뜩 끼었다.

▲단둥~지안=단둥에서 지안까지는 차로 5시간쯤 걸린다. 도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왕복 2차로이지만 도로 사정은 나아졌다. 조·중 국경을 따라 오른쪽으론 압록강, 왼쪽으론 험한 산맥이 이어진다. 1시간쯤 달리자 동양 최대의 수풍댐이 보이고 관전만족자치현에 들어섰다. 이곳은 고대 만주족과 한민족이 섞여 살던 곳이다. 청나라는 봉금정책을 펴면서 유조변(버드나무 울타리)을 설치해 한족의 출입을 봉쇄했다. 그들은 언젠가 동북지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족이란 거대한 블랙홀에 동화돼버려 말과 글을 잃었다. 지난달 1일 발생한 한국공무원연수단 버스사고 지점을 지나 지안으로 가까이 갈수록 산세는 더 험하고 길은 가파르다. 그 옛날 이민족이 고구려를 침략하려 할 때도 이 길을 지나갔으리라.

▲지안 고구려유적=지안은 무덤과 성곽관광이 전부다. 국내성 유적지인 지안 시내는 물론, 주변에 크고 작은 1만여기의 무덤이 있다. 그야말로 무덤전시장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형태로 남아있는 무덤은 장수제릉이다. 이 능은 장군총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고구려 20대 왕 거련의 무덤으로 추측한다.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릴 만큼 거대한 이 돌무덤은 광개토대제비에서 동북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다. 하지만 안내문엔 장수제가 28대 왕으로 나와 있다. 게다가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라고 버젓이 쓰여있다. 동북공정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기자의 이번 지안 방문은 2004·2005·2007·2009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2007년까지는 장수제릉의 꼭대기까지 철제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으나 2009년엔 입구를 폐쇄했다. 이번엔 아예 철제사다리를 철거했다. 수차례 중국 측에 지적했던 사항이었다. 광개토대제릉으로 올라가는 길 역시 철제사다리를 없애고 돌계단으로 만들었다. 대제릉 앞 태왕향조선족소학교는 폐교돼 창고로 쓰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개토대제비는 전과 다름없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행 중 1명이 비석 안에서 비석을 촬영하려다 중국측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비석 아래 지폐가 흩어져 있는데 마오쩌둥 대신 퇴계의 초상화가 그려진 한국의 1천원짜리다.

버스는 지안시내를 돌아 다시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성하고분군과 환도산성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하나도 손을 대지 않은 좁은 도로 그대로다. 환도산성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남문 좌우로 성곽을 새로 쌓고 음마지도 복원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난 뒤 10년째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일행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성 점장대까지 올라가 기념촬영을 했다.

▲백두산=통화에서 숙박하고 오전 4시, 빈관에서 해도 뜨기 전에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통화~백두산 구간은 산악 도로다. 백두산까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6시간쯤 달리자 백두산 서파 정상 턱밑까지 다다랐다. 백두산 천지로 오르는 길은 크게 네 갈래다. 대표적인 코스가 장백폭포와 흑풍구를 지나는 중국 측 북쪽 능선(북파),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금강대협곡을 지나는 서쪽 루트(서파)다. 이 루트는 고산화원과 들꽃을 감상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따라 올라가는 길이다. 수림이 장관이다. 마지막은 북한 측 삼지연에서 등반하는 루트다. 압록강대협곡을 따라 가는 길인데, 중간에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다. 백두산 제1봉인 장군봉을 지근에서 감상할 수 있다.

기행단은 혼잡한 북쪽 능선보다 서쪽을 택했다.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1시간 이상 서 있어야만 했다. 평소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데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더 많았다. 예전엔 버스가 산문을 바로 통과했는데 이젠 산문 밖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제2주차장에서 저상버스나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주차장에선 날씨가 맑아 천지를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정상 밑 제3주차장에서 1천400여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갈수록 날씨가 흐려졌다.

‘천지에 가서 천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라는 말이 생겼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만주기행을 와서 천지를 보지 못하면 그 실망감이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서파 정상에 이르자 금세 구름이 비켜나고 햇살이 비치면서 맑고 푸른 천지가 일행을 맞이했다. 일행은 모두 “와!”하는 함성을 질렀다. 지금까지 열 번 넘게 천지에 올랐지만 이번처럼 구름과 햇빛이 재빨리 교차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천지 주변 정상에서 약 40분간 머물면서 천지를 카메라에 담았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음에도 일행은 천지 주변을 맴돌았다. 이윽고 먹장구름이 천지를 덮자 일행은 하산했다. 하지만 곧이어 햇볕이 들자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천지에 올랐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하산하는 걸음조차 멈추게 했을까.

▲청산리 전적비=10년 만에 청산리를 다시 찾았다. 당시 하늘도 지금과 같이 쾌청했다. 그때는 용정에서 출발했는데 이번엔 이도백하에서 백두산수림을 거쳐 왔다. 청산리는 화룡시 용성진 부흥향에서 서남쪽으로 12㎞ 떨어진 백두산 자락 산골마을이다. 청산리에선 1920년 10월21~26일 10여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국민회 등 2천여명의 독립군연합부대는 일본의 5천여 정규군을 맞아 1천여명의 적을 섬멸했다. 청산리 전적비는 2001년에 준공했다. 2005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전적비의 상판이 떨어져나가는 등 관리가 소홀했으나 다시 보수를 해 말끔하게 단장했다. 기념관이 새로 들어선 것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준공을 하지 못한 듯 기념관 내부는 박쥐의 소굴로 변해버렸고 주변엔 잡초가 무성했다. 기행단은 전적비 앞에 머리를 숙인 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군을 기리며 묵념을 올렸다. 동행한 아동문학가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이 마타리꽃을 꺾어 헌화했다.

W3면에 계속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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