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2] 풍국면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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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01   |  발행일 2015-09-01 제5면   |  수정 2015-09-01
“국수 본고장은 대구” 80여년 한우물…年 6200만명분 면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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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 최익진 대표와 그의 선친인 고(故) 최정수 대표가 건면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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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은 자동화 설비로 탱글탱글한 면발을 뽑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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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면 설립 초창기에 일하던 여성 근로자의 모습. <풍국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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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전 풍국면 공장 내에 ‘풍국면’이라 적힌 운송차량이 보인다.

대구에 올해로 82년 된 국수공장이 있다고 하면 대구 사람들도 놀란다. 국수(건면·생면을 건조한 것) 단일공장으로 전국 매출 1위를 점한 지 오래다.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면 제품도 이 공장 뒤를 따른다. 국수업체 <주>풍국면이다. 직원 41명에 1인당 직원 매출은 무려 2억5천853만원(2014년)이다. 한 해 총 생산량은 6천200여t으로, 국수 한 그릇을 100g으로 환산하면 무려 6천2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 “제일모직 부럽지 않았다”

1970년대 풍국면은 최고 전성기였다. 당시 대구사람들 입으로 “풍국면이 침산동 제일모직만큼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이 퍼졌다. 풍국면은 연매출 30억원을 돌파해 국내 건면 시장의 30%를 차지했다. 최고 스타였던 영화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 TV 광고에 나와 풍국면을 홍보했을 정도다.

1985년 오뚜기를 비롯한 식품 대기업들이 국수 시장에 뛰어들면서 풍국면은 곤두박질쳤다. 전국의 중소 규모 유명 국수공장들이 수없이 문을 닫았다. 최익진 풍국면 대표가 1993년 가업을 잇기 위해 이곳에 입사하자 부채가 매출(13억9천만원)보다 많았다.

 

70년대 국내 건면시장 30% 점유 ‘전성기’
85년 대기업의 진출로 빚만 느는 고난기

 

93년 증권맨 최익진 풍국맨으로 가업승계
유통망 개척과 품질개발 사활 ‘명성회복’

 

이마트 PB 1호·CJ 고급면 OEM 생산 등
국수 단일공장 매출 1위…세계 1등 눈앞

 


지난달 19일 오전 대구시 북구 노원로 풍국면 공장에서 만난 최 대표는 춥고 배고프던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고생이 말도 못했다. 빚은 쌓이는데 (국수) 팔 데가 없으니 밥값도 아꼈다. 직원들이 단 돈 만원을 달랑 들고 서문시장에 가면, 반찬가게 노점상들이 ‘아이고, 1만원짜리 왔네’하고 농담 아닌 농담을 걸어왔다. 그렇게 산 반찬 1만원어치로 전 직원 20여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7~8년이 후딱 지나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 대표는 자신이 아버지의 국수공장을 맡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풍국면집 아들로 살았지만, 선친이 새벽부터 전국 영업처에 전화를 걸어 국수를 팔던 기억을 빼면 아는 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기업 증권회사에 다니며 전환사채 발행업무를 맡고 있었던 소위 ‘잘나가는 증권맨’이었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선 MBA(경영학석사)도 받았다. 선친을 도와 일하던 고모부의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부탁을 번번이 거절했다. 하지만 회사가 걷잡을 수없이 힘들어지자 결국 자신의 커리어를 접었다.

◆ 최초의 유통 혁신

쪼그라든 풍국면을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손수 1t 트럭을 몰고 대구시내 시장을 돌며 국수를 팔았다. 당시만 해도 별다른 영업 마케팅이 없었다. 한번 정한 가격은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단 1원도 낮추지 않는 게 국수업계의 마케팅 수준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아이디어 하나. 대구지역 인근 유명 빵업체들에 풍국면 국수의 위탁판매를 맡기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작은 유통망을 확보한 것인데 생각보다 잘 먹혔다. 문제는 이 소식을 접한 다른 국수업체들이 같은 영업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해 이마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됐다.

관건은 유통망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잘나가던 풍국면이 죽을 쑤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압도적인 영업망을 갖춘 식품 대기업에 맞설 만한 경쟁력이 없어서다.

최 대표는 직접 유통망을 개척했다. 놀랍게도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은 현재 국내 1위 대형유통업체인 이마트다. 1993년 첫 점포를 낸 이마트는 당시 설립 3년째를 맞고 있었다. 그는 “이미 미국 유학생활에서 월마트를 경험했던 만큼 국내서도 대형마트가 급성장할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풍국면의 도전은 퇴짜를 맞는 일부터 시작됐다. 거래를 트기 위해 반 년 가까이 이마트 서울 본사를 찾아갔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사람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어렵게 만난 담당이란 사람 입에선 “풍국이 무슨 면(面) 단위 이름이냐”란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말 그대로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푸념이 나왔다. 하지만 이마트 인근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상대를 어떻게 설득시킬지를 고민하며 보낸 시간들이 힘을 발휘할 때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1995년 말 풍국면은 이마트에 PB(대형마트 자체 브랜드)제품 납품권을 따냈다. 이마트에선 내부적으로 “풍국면이 사실상 이마트 PB 1호”라고 얘기한다. 20년 전 PB의 개념조차 생소할 때 풍국면이 납품권을 획득한 것이다. 이마트와 손을 잡으면서 매출은 날개를 달았다. 지난해엔 매출이 106억원까지 늘었으며, 이 중 이마트에 납품된 풍국면의 매출은 약 35억원으로 전체의 33%에 달한다.

◆ 품질로 승부한다

풍국면은 먹고 살 만해졌지만 쉴 틈은 없다. 국수 자동화 생산설비를 갖춰 위생과 식품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쓰기로 한 것이다. 연매출이 28억원이던 2003년 당시 자동화 생산설비에만 40억원을 쏟아부었다. 돈만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자동화를 추진한 몇몇 공장들이 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기계에서 뽑아낸 면이 유통과정에서 뚝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생산설비에 어떤 문제가 있어 면이 끊어지는지 파악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다.

최 대표는 “자동화 설비 후 문을 닫은 국수공장이 있다고 하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갔다. 생산과정을 일일이 체크해 뭐가 문제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면은 수분을 머금었다가 다시 일부를 내뿜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건조를 덜 시키면 면이 부서진다. 이 점을 확인하고 풍국면 공장엔 습도조절 장치를 기존 공장 것과 달리 적용시켰다. 내 예측은 적중했고, 풍국면 기계에서 나온 면은 으스러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최근엔 CJ제일제당과도 거래를 하고 있다. 이 업체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일제면소’가 내놓은 국수는 모두 풍국면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으로 생산한다. 코스트코홀세일에서 판매중인 국수류는 전량 풍국면 상품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풍국면은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하나는 라면처럼 조리가 간편한 국수를 개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메밀국수를 국내 소비자들이 좀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풍국면의 메밀국수는 국내에서 생산된 것 중 메밀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3년 내 최고급만 취급한다는 일본 대형할인마트 ‘AEON’의 매장에 풍국면을 입점시키는 것은 가장 가까운 목표이기도 하다.

최 대표는 “국수로 세계 1등을 하는 것이 목표다. 품질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수준인 만큼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확신한다. 장수하는 1등 기업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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