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20] 대구∼영천 은해사 묘봉암 단풍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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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27   |  발행일 2015-11-27 제40면   |  수정 2015-11-27
봉황 부리에 해당하는 묘봉암에 서니 대구가 ‘세 번째 비상’을 시작했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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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의 자전거가 펑크가 나서 불시착한 시천마을에서 본 새가 날아가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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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유원지길을 지나는 라이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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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단풍라이딩에 나섰는데 도착하니 낙엽라이딩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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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이 운부암 보화루를 돌아보고 묘봉암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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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라이딩을 마치고 귀갓길에 만난 물빛고을 하양의 자전거 타는 풍경.




햇빛 찬란한 날 은해사 단풍라이딩을 계획했으나, 주말만 되면 하늘은 얼굴을 찌푸렸다. 바이커들은 3주째 ‘꾸리무리’한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를 지경이다. 일기가 왜 이렇게 불순한가 싶어 알아보니 역대 셋째로 강한 슈퍼 엘니뇨 때문이란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오거나 흐렸다. 맑은 날을 꿈꾸다가는 겨울 만나겠다 싶어, 비만 안 내리면 무조건 GO할 수 있는 분들과 지난 여름 달렸던 길을 달렸다.

대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영천 은해사로 가는 길은 팔공산길과 금호강길로 나뉜다. 팔공산길로는 대구공항~불로시장~백안삼거리~능성동 예비군훈련장~갓바위삼거리~임도 지름길~은해사에 갈 수 있고, 금호강길로는 만촌경기장~안심도서관~금강잠수교~하양~와촌 용천리~시천리~동강~와촌~청통IC~관방길을 거쳐 은해사~운부암(왕복)~묘봉암(왕복)~은해사~대구 귀환. 라이딩을 마치고 집에 가면 엉덩이가 얼얼해지는 라이딩거리 80여㎞의 순라이딩 5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다.

대구에서 영천 은해사까지 라이딩을 계획하게 된 것은 내 귓전을 천년바위처럼 때리던 묘봉암을 자전거 타고 가서 보고 싶어서였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과 서봉을 거느리고 있는 팔공산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어쩌다가 꼴찌 타령을 하는 지경이 되어버렸을까. 신라오악이던 팔공산은 오늘날 다섯손가락은 고사하고 10대 명산 축에도 끼지 못한다. 내 귀에는 갓바위 부처도 부산·경남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푸념과 동화사 통일대불 조성을 잘못해서, 팔공산을 훼손해서, 비로봉의 송전탑 때문에 대구가 기울었다는 풍문이 들린다. 물론 빛 좋은 팔공산 국립공원 추진운동도 희망처럼 울린다.

금강동 부근서 만난 반계수류
달빛아래 一葉帆舟만 띄워도
한강 르네상스가 부럽겠는가
배 띄워라 배 띄워라
금호강에 배를 띄워라

묘봉암 원통전은
관음불 머리 위 바위가 압권
우리 전통 건축미학을 살린
또 하나의 걸작이다

동화사와 은해사를
봉황의 몸으로 이해하고
바윗덩어리를
봉황의 부리로 신성시하면서
불당 안으로 모신
그 대자대비한 지혜에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팔공산 봉황설화와 관련해서 주목할 사람이 있는데 동화사를 창건한 심지대사다. 그는 헌덕왕의 아들로 근친 간의 기나긴 권력 다툼을 목격하고는 불가에 귀의한 뒤 팔공산을 불국토로 만든 인물이다. 동화사 사적기에는 한겨울인데도 불간자(佛簡子·미륵보살의 수계를 의미하는 징표)가 떨어진 곳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유가사라 부르던 절 이름을 오동나무 꽃 절, 동화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팔공산의 오동나무 꽃은 왜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만개했을까. 심지대사는 동화사만 창건한 것이 아니고 팔공산에 자리 잡고 있는 파계사와 영천 은해사의 중암암, 묘봉암, 하양의 환성사를 지었다. 비록 동화사(제9교구)와 은해사(제10교구)는 관할하는 말사를 달리하는 본사이지만 나에게는 봉황의 몸으로 한 덩어리다. 대구의 신비를 풀려면 동화사, 파계사, 은해사를 팔공산과 한 몸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봉황의 부리를 모셔 놓은 곳이라 하여 묘봉암을 찾아가는 것은 올해 포토바이킹의 숙원 라이딩 중 하나였다. 봉황의 부리에 해당하는 은해사 묘봉암을 찾아가는 늦가을 여행은 상상의 라이딩을 넘어 현실로 다가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만날 봉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비 맞은 안심습지 오카방고는 노리끼리한 얼굴을 하고 겨울 채비에 들어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촌자전거경기장 중간 합류 장소로 이용되는 안심도서관 주변에 늘어앉은 팔순 노인의 기색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앉은 자리가 아리랑고개 같았다. 금호강자전거길은 일부 개선 요망사항이 있으나 몸에 익어가는 탓인지 자랑스럽고 슬슬 우러러보이기 시작했다.

금호강은 포항시 죽장면 석계리 매봉산 기슭 문암지에서 출발하여 영천을 지나고 경산시 하양을 거쳐 안심습지와 동촌을 돌아 신천과 합류하여 달성군 강창 나루터에서 큰 물이 되는 낙동강의 지천이다. 금호(琴湖)는 호수와 금호강이 합쳐진 이름으로, 금호강은 이슬이 내리고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에 갈대 바람이 불 때마다 거문고 소리를 낸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장엄해 예로부터 모든 악기의 으뜸인 ‘백악지장(百樂之丈)’으로 불렸다. 풍류와 멋을 아는 선비 사이에서 거문고 연주는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김부일 전 대구민학회장은 금호강을 갈대가 거문고 소리를 내는 호수라 하여 이름 지어진 ‘선비의 강’으로 풀었다. 그는 “율하동 근처의 금호강은 원래는 반계(磻溪)라 하였다. 반계는 중국 섬서성 보계현에 있는 봉상계의 이름으로 위수로 흘러든다. 위수가의 반계는 강태공이 고기 잡는 것은 관심도 없고 주 문공을 만나기 위하여 세월 보내며 낚시하던 곳”이라면서, 율하휴먼시아 아파트에 조성된 반계공원으로는 부족하다며 반계(磻溪) 지명 확산론을 펴고 있다. 대구의 정체성 바로 세우기와 관련하여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반야월 안심습지를 지날 때면 강태공의 후예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일대에서 선비들은 고산팔경을 노래했다.

우리 시대의 고산팔경을 찾을 때다. 포토바이킹은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눈앞에 들어오는 풍경을 골라 찍는다. 금강동 부근에서 반계수류를 낚아챘다. 달빛과 어울리는 일엽범주(一葉帆舟)만 띄워도 한강 르네상스가 부럽겠는가. 배 띄워라! 배 띄워라! 금호강에 유람선 말고 배를 띄워라!

반야월 연근단지로 이어지는 금강동에서 금강잠수교를 건너면 경산 땅이다. 금강잠수교와 하양교로 이어지는 구간은 12㎞ 거리로 경산참외단지, 현흥리, 환상리, 대조리, 하양초등학교 화성분교, 경산종묘유통센터, 대부잠수교, 대추마을길, 진량휴먼시아가 포함되는 금호강변로이다. 자전거길 밑으로 소방도로가 있어 라이딩하는 장면을 포토바이킹하기 좋았다. 호산대학교와 화성로를 잇는 대부잠수교 진입 지점은 통행 차량이 많아 각별한 주의를 요하고, 교통안전 표지판과 시설물을 보강해서 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휴먼시아 103동 근처에서 하양자동차운전학원을 보고 좌회전해서 하양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대학로 296길이다. 용천제방길을 따라 가면 금호강자전거길과 만나게 되고, 은해사 방향으로 가려면 용천마을회관으로 들어가야 된다. 용천5길을 따라 대광섬유, 시천리 하교를 통과해서, 협동교~시천1길~태화산업이 위치한 와천서길을 따라 와촌노인회관 부근 계전1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직진한 뒤 다시 계전2교를 빠져 나와 동강교차로를 만나면 안전하게 은해사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어선 셈이다. 꼭 이 길을 통해야만 은해사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는 길 위에서 헤매는 데 최적화된 여행수단이다. 와천서길, 계전교, 동강교차로만 숙지하고 있으면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다. 목적지가 분명한 라이더에겐 다른 길도 하나이니까.

동강교차로에서는 청통IC방향으로 금송로를 따라 소월교, 와촌교를 지나 2㎞쯤 가면 우측에 천일주유소가 나온다. 여기에서 신호대기하다 안전하게 횡단하거나 좌회전해서 호젓한 관방길로 들어서면 은해사로 가는 지름길이 나온다. 갓방못으로 가는 관방길에는 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차량 통행은 한산하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3㎞를 가면 갓방못에서 잠시 쉬어간다. 갓방못 쉼터에서 대동로 쪽으로 좌회전해서 조금 가면 오른쪽으로 보화사 가는 길이 나온다. 보화사길로 난 고개를 넘어서면 은빛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은해사에 도착한다. 오전 9시30분에 출발하여 중간에 펑크 수리하느라 30분 지체되는 관계로 오후 1시경 도착했다.

금호강길로 해서 은해사 가는 길은 지난 7월에 일주해서 구면이었다. 그때는 은해사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왔는데, 이날은 운부암과 묘봉암을 목표로 해서 점심 식사로 체력 충전을 해야 했다. 허기를 채운 일행은 은해사로 들어서자마자 단풍 라이딩이 아니고 낙엽라이딩을 즐겨야 했다. 잦은 비로 인해 단풍잎은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쌓여 있었다. 운부암까지는 2.3㎞ 완만한 산길이, 묘봉암까지는 다시 4.3㎞ 가파른 업힐 구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흥암(百興庵), 중암암(中巖庵), 기기암(寄寄庵)은 건너뛰었다.

치일저수지를 지나가는 자전거 행렬은 단풍 못지않게 근사했다. 은해사 입구에서 만난 보화루를 운부암에서 보고는 보화루가 은해사의 통일된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운부암을 배경으로 찍은 라이딩 사진은 멋있었다. 자전거와 어우러진 운부암 보화루는 훌륭한 포토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온통 묘봉암에 꽂혀 있기 때문에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묘봉암으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무리한 라이딩을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힘이 많이 드는 곳에서는 자전거를 끌고 이동했다. 정상은 항상 고생 끝에 포기하지 않고 가면 찾아왔다. 그게 길이다. 묘봉암의 원통전(圓通殿)은 석굴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특히 관음불 머리 위의 바위가 압권이었다. 내 눈에 묘봉암 원통전은 우리의 전통 건축미학을 살린 또 하나의 걸작이다. 동화사와 은해사를 봉황의 몸으로 이해하고, 바윗덩어리를 봉황의 부리로 신성시하면서 불당 안으로 모신 그 대자대비한 지혜에 풍류만다라의 큰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먼 길 달리고 힘들여 찾아보니 대구시민 노릇을 제대로 한 것 같았다. 봉황의 부리에 해당하는 묘봉암에 서니 봉황 세 알(동화사 봉서루 앞의 봉황 알 세개…팔공산 정기를 받아 대통령이 세 명 나온다는 속설(說)이 있음)을 가진 대구가 세 번째 비상을 시작했다는 예감이 들었다.

묘봉암과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비탈길을 조심조심 다운힐하면서, 불현듯 다운힐이 업힐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이 돌지 않는 페달로 전해져 왔다. 반계(磻溪)에서 은해사까지 단풍라이딩을 떠났으나 낙엽라이딩을 하다 돌아왔다. 은해사 묘봉암을 포토바이킹하고 나니 대망의 비슬산 대견사지 일몰 라이딩만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금호강변과 팔공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포토바이킹은 자전거 타러 새 하늘 새 땅을 찾아 은빛 바다를 건너가는 꿈을 꾸며 하산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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