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상상 속에 국수’ 이미희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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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22   |  발행일 2016-04-22 제42면   |  수정 2016-04-22
이름도 별난 ‘모리국수’…묵은 땀 쏙 빼는, 상상 그 이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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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 갱시기, 매운탕, 해물탕, 칼국수, 어탕국수를 합쳐놓은 듯한 포항 구룡포발 까꾸네 모리국수. 어부들이 먹던 해물칼국수인 모리국수가 최근 대구 중심가에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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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별미 국숫집 하나가 새로 태어났다.

중구 수동 중식당 천안성 바로 옆에 자리한 ‘상상속에 국수’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모리국수’.

뭐, 모리국수? 의령 메밀소바, 제주 고기국수, 충북 옥천 생선국수, 경남 거창의 어탕국수, 안동의 건진국수, 부산 밀면, 대구식 육국수 등보다 더 정체가 애매모호한 음식명이다.

일단 오너셰프 이미희씨가 구룡포의 국수 명가인 ‘까꾸네’로부터 조리법을 전수해 대구로 가져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했다.


당일 잡은 생선·해물에 끓인 칼국수
오래 전부터 구룡포 어부 해장음식
‘모리’ 어원 日語·사투리 추측만 무성

15년前 ‘까꾸네’서 먹고 13년 단골
2014년 어머니 여읜 후 우울증·방황
상상 속에 있던 국수 배우며 벗어나
포항 원조 비법 전수…대구 첫 오픈
깔끔하고 맑은 매운 맛 신세계 선봬



기자도 10여 년 전 모리국수를 처음 접하곤 머릿속이 아주 복잡했다. 그 국수는 국내 각종 국수 스타일을 하나로 뭉쳐놓은 것 같았다. 짬뽕, 갱시기, 어탕, 해물탕, 매운탕, 칼국수 등의 공통분모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해물칼국수보다 해산물·생선칼국수 같았다. 화끈거릴 정도로 매운맛이지만 각종 해산물을 베이스로 해서 그런지 뒤끝이 아주 깔끔하고 맑았다. 멸치 육수도 사용하지 않는다. 국물이 맑지 않고 죽처럼 걸쭉하지만 최고급 고춧가루 때문인지 면발을 다 먹고도 성에 차지 않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국물을 퍼먹었던 기억이 난다. 모리국수를 생각하면 벌써 땀이 송글송글 돋아난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생선이 가장 많이 유통됐던 항구 중 한 곳인 구룡포.

울산 방어진과 함께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임과 동시에 청어, 고등어, 훗날에는 국내 대게 유통의 절대다수를 점하던 곳이다. 부산 초량에는 못 미치지만 경북 동해안 어촌 중에서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해 일본인거리가 새롭게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권종원·이옥순 부부는 가난했다. 이옥순씨는 48년 전 구룡포 수협이 바로 보이는 뒷골목에 입에 풀칠할 공간을 연다. 이씨는 1만원을 빌려 시누이 집 마당에서 판자 국숫집을 마련했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25세 젊은 나이 때부터 고운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식당 이름은 ‘까꾸네’로 했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막내딸이 어릴 때 이웃 주민들로부터 귀염을 독차지했다. 딸을 보면 다들 까꿍, 까꿍을 연발했다. 자연히 부부의 국숫집은 ‘까꿍네’로 불렸고 나중에 ‘까꾸네’가 된다.

초창기에는 번듯한 메뉴판도 카운터도 없었다. 주먹구구식 국수를 끓여 팔았다. 무슨 치밀한 레시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새벽 4시가 되면 갓 경매를 마친 항구의 사내들을 위해 국수 한 ‘다라이’를 삶았다. 번듯한 생선을 살 돈이 없었다. 어판장 후미에 나뒹굴던 죽은 고기 등을 얻어오기도 했다. 그걸 잘 양념해서 냄비에 담았다. 그러면 자기들이 알아서 가져다 연탄불에 끓여 먹었다. 각자 식성에 따라 양념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술에 찌든 속을 푸는 데는 역시 매운맛만 한 게 없었다. 칼국수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었다. 어부들은 국수는 불어도 상관 안 했다. 다들 국물맛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 무렵 포항의 물회, 속초의 섭국, 제주의 자리물회 등 국내 어촌 마을의 해장음식은 다들 모리국수식이었다.

◆모리국수의 어원

국수에는 이런저런 생선이 많이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생선은 아귀와 열합(홍합), 미더덕 등이었다. 어황이 좋으면 곰치, 대게 등도 들어갔다. 들어가는 생선이 자주 바뀌었다. 사내들이 오늘은 무슨 고기가 들어갔느냐고 하면 무뚝뚝한 남편 권씨는 “나도 모린다”고 말하거나 “이것저것 모디 들어갔다”고 대답했다. 모리를 생선 머리라고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여러 수산물을 몰아넣으니 ‘모리’가 되었다고도 하고, ‘내도 모른데이’가 변용됐다고도 한다. 일부 국수 연구가는 모리는 나무 빽빽할 ‘삼(森)’ 자의 일어 훈독 발음이라며 본래는 숲을 의미하지만, 구룡포에서는 ‘많다’는 뜻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생선이 넉넉하게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요리여서 모리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구 서문시장의 명물국숫집이었던 ‘왕근이’, 강원도식 냉면인 ‘막국수’와 모리의 어감이 비슷한 것 같다. 왕근이는 대구식 사투리로 ‘아주 많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막국수는 ‘지금, 방금 거칠게 마구잡이 메밀국수’란 뜻을 갖고 있다.

◆ 모리국수에 반한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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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희 오너셰프.

그녀는 싹싹하고 친절하다. 일본의 유명 료칸의 지배인급 친절도를 품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피가 그렇단다.

대구여고를 나온 그녀는 원래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했고 나중에 학원선생이 된다. 모리국수를 만난 건 2001년. 포항에 사는 그녀의 막내 이모와 함께 구룡포로 놀러갔다. 구룡포초등학교 정문 앞 철규분식에서 50년대식 찐빵을 먹고 우연히 들른 까꾸네. 거기서 만난 모리국수는 훗날 그녀의 삶의 노정을 완전히 바꿔놓게 된다.

“저는 원래 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리국수는 남달랐어요. 국물은 뻑뻑한데도 그렇게 담백할 수가 없었어요.”

모리국수에 반한 그녀는 무려 13년간 그 집의 골수단골이 된다. 많이 갈 때는 격주로 갔다. 그녀는 대구에 모리국수 전문점을 내기 전 바리스타의 길을 잠시 걸었다.

바리스타 전에는 5명의 직원을 데리고 광고회사 사장이 되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삶이 아니었다. 바리스타의 꿈을 꾸면서 커피 연구에 푹 빠졌다. 그렇게 해서 지인과 함께 동업 형식으로 달서구 상인동 e편한세상 아파트 상가에서 ‘프렌치 홈’이란 숍 인 숍(Shop in shoip) 커피숍을 차렸다. 커피숍 한쪽에서는 프랑스 디자인 가구인 몽티니 등을 팔았다. 당시 패션 블로거 사이에 예쁘고 개성 있는 프로방스풍의 커피숍으로 소문난다.

하지만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장사 못지않게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먼 세상으로 가버린다. 그녀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는다. 2014년 가게도 정리했다. 1년6개월간 방황의 나날이었다. 그녀의 ‘수호천사’는 모리국수였다. 10년 넘게 상상 속 모리국수를 배우기 위해 곧장 구룡포로 내려갔다. 내려갔을 때 장남 진수씨가 가업을 이은 상태였다. 그녀를 위해 진수씨가 대구로 와서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 장인급 정성…맛 해부

대구식 모리국수는 조리사를 괴롭힌다.

잔치국수 끓이는 것과 방식이 확 다르다. 뭐랄까, 곰탕 끓이듯 대하지 않으면 맛이 손님을 배신한다. 이 셰프도 엄청 고생하고 나서 원형의 맛에 조금 근접할 수 있었다. 칼국수라고 얕봤다가는 모리국수한테 큰코 다친다.

그녀는 고춧가루부터 다시 공부했다. 신맛 나는 고춧가루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에 사용한 경북 모 지역의 고추는 김장김치에 어울리는 신맛고추였다. 영양고추로 바꾸자 신맛이 말끔히 사라졌다.

사람이 많이 올 것에 대비해 홍합, 미더덕, 파, 건새우 등으로 한꺼번에 50인분 기본 육수를 마련했다. 하지만 원형의 맛에서 많이 벗어났다. 해산물도 ‘다다익선’이 절대 아니었다. 자칫 마트에서 사 온 해물탕 육수로 추락한다. 육수도 숙성기간이 필요했다. 베이스 육수는 50인분에서 20인분씩만 장만한다.

육수도 초탕·재탕을 통해 완성된다. 그 과정에 아귀 내장이 큰 구실을 한다. 아귀 대신 대구·명태를 사용하면 비린내가 풍겨 맛을 망친다. 요즘은 혼자 오는 단골이 많아 아귀 사용이 쉽지 않아 낙지를 넣는다. 콩나물도 맛의 중요한 원천. 콩나물 대신 숙주나물이 들어가도 맛이 확 달라진다. 콩나물도 국수를 넣고 3분의 1 정도 끓을 때 집어넣는다.

국수도 ‘까꾸네’는 건면을 사용하지만 그녀는 지역 정서를 반영해 생면을 사용한다. 그녀는 국물의 맛이 생선 이상으로 마늘과 고춧가루에서 발원한다고 믿는다. 국수는 매일 1% 정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식재료 사정이 매일 달라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튼 대구의 첫 ‘까꾸네’ 모리국수 기술전수 1호집이 어렵사리 태어났다. 거기 말고도 대구에 두 군데 정도 모리국수 파는 업소가 있는데 그건 ‘까꾸네’와 상관없다.

오후 4시쯤 모리국수를 들이켰다. 온몸이 땀에 젖는다. 지쳐있던 혓바닥이 가을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별스러운 국수를 찾는다면? 비 오는 평일 오후 혼자 가서 진검승부처럼 드셔보시길. 중구 수동 39-1. (053)426-993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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