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 한 고래로 차린 섬세한 12가지 맛…울산 큰애기 손맛은 ‘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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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7   |  발행일 2016-06-17 제34면   |  수정 2016-06-17
■ 푸드로드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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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대표 먹거리로 꼽히는 고래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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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항의 가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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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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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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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장한 장생포의 랜드마크인 고래문화마을. 옛 장생포 포경마을의 일상을 고스란히 복원해놓았다. 고래막집은 삶은 고래를 도매로 파는 집이다.

‘대한민국 고래고기 1번지’ 장생포
교실까지 고래울음 들렸던 시절도
작년 ‘고래마을’ 복원 고래빵도 개발

부위별로 12가지 맛 내는 고래고기
마리당 20㎏ 꼬리쪽 살코기‘오노미’
황제급 특수부위로 단연 최고의 맛
부위 전용소스 최고 7개까지 내놔

‘언양식’‘봉계식’ 숯불불고기와 함께
정자항 가자미도 3대 먹거리 한축


간절곶에 도착한 날 나는 순간 ‘파랑나비’로 변해버렸다. 하늘은 더없이 청명했다. 뭉게구름은 남태평양 버전으로 피어났다. 바다는 농염하게 칭얼댔다. 그걸 파스텔톤으로 바라보는 블루톤의 풍차, 그 옆에 팬지 등 형형색색의 꽃이 심어진 잔디광장이 네덜란드풍으로 깔려 있다. 5m 키다리 우체통 뒤에 있는 간절곶 등대, 그리고 해안 언덕에 민들레처럼 피어 있는 프로방스풍의 벤치 3개, 코발트빛에서 옥빛까지 변주하는 파도, 간절곶은 셔터만 누르면 그대로 작품사진이다.

간절곶의 즐거움. 그것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 신불산 3㎞ 억새평원, 전국에서 가장 큰 울산대공원을 만나면서 비로소 ‘평화로움’이 된다.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때문에 비로소 울산(蔚山)이 된다.

동해의 수평선이 충혈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시장기가 밀려왔다. 저무는 바다를 뒤로하며 ‘대한민국 고래고기 1번지’인 장생포 고래문화마을로 향했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장생포는 태화강 하류의 조그마한 포구다.

울산항이 고래 몸통이라면 장생포는 지느러미. 도심을 거쳐 매암네거리에서 현대모비스 심장부를 통과한다. 장생포초등학교 입구에 오면 고래 모형탑이 보인다. 포구 맞은편은 석유공단. 해안길의 새 도로명은 ‘장생포고래로’. 거리의 주요 가로등과 조형물에는 어김없이 고래 형상이 들어간다. 고래빵도 개발했다.

조금은 우중충하고 언뜻 영화세트장 같은 이곳은 ‘고래문화마을’. 1995년 고래축제를 만든 울산 남구청이 지난해 복원한 옛 고래마을이다. 고래와 관련된 웬만한 건 원스톱으로 체험할 수 있게 인프라를 마련했다.

나는 그날 가수 윤수일이 학창시절 장생포에서 살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장생포 뒷산 언덕배기에 살았던 그는 어린시절 고래의 모든 걸 보며 살았다. 그는 이번 고래축제 때도 고래문화마을에 와서 고래고기를 먹고 갔다. 아니 ‘고향’을 먹고 갔다.

장생포초등학교에서 울산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고래도 없고 포경선도 안 보인다. 1986년 포경업 금지로 포구에 있던 21척의 포경선. 모두 어떻게 됐을까? 두 척만 빼고 모두 대체어업용으로 종목을 전환한다. 진양6·7호만 현재 고래박물관 체험용으로 팔려갔다.

◆선원표 고래찌개는 어디에

고래 해체장은 모두 세 곳. 많을 때는 하루 10여 마리의 고래가 선창에 쏟아진다. 하절기에는 고래의 피와 기름이 피워내는 묘한 비린내가 안개처럼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그 냄새는 장생포 토박이가 아니면 알 리 없다.

포경선 선원들이 먹던 추억의 해장국을 수소문했다. 고래고깃집 후식 매운탕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선원의 집이 식당이었다. 선원들은 해체장에서 나온 자투리 고래를 조금 얻어와 된장, 고추장, 각종 푸성귀 등을 넣고 고래찌개를 끓여 먹었다.

두 명의 ‘고래 할매’를 기억해두자. 60년대 김명덕씨의 모친이 장생포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주막 비슷한 가게를 꾸려갔다. 선원들이 갖고 온 고래로 이런저런 즉석 안주를 만들어주던 선원들의 선술집 같은 곳이었다. 거기가 장생포 첫 고래집이다. 하지만 족보에 오르지 못한다. 뒤에 또 한 명의 고래할매가 등장한다. 바로 노귀남 할매다. 할매는 71년쯤 구멍가게형 식당을 연다. 2004년 작고하자 아들 이희준씨가 대를 잇는다. 현재 장생포초등학교 바로 옆 ‘골목할매집’이 바로 그곳이다. 뒤이어 원조할매집이 가세하고 고래집은 80년대 15개 업소로 불어난다.

길을 걸으며 정겨운 식당 상호를 적어본다. 할매집, 대경, 왕경, 고래맛집, 고래명가, 고래한식, 홍서방, 미미정, 고래막집, 소라고래, 장생포고래, 청해고래, 왕성고래, 동은고래….

재첩국·자갈치 아지매와 쌍벽을 이루는 억척스러운 아지매가 장생포에도 있었다. 바로 고래고기를 머리에 이고 다니며 행상에 나섰던 ‘반티할매’다. 그 할매들은 ‘막집’에서 고기를 떼와 짚으로 묶은 뒤 보부상처럼 주변 마을을 돌아다녔다. 막집은 해체된 고래고기를 삶아 파는 일종의 고래 도매상. 80년대초 장생포에 두 곳이 있었다. 테마파크인 고래문화마을 안에도 복원해 놓은 막집이 있다. 그걸 바라보며 고래빵을 먹었다.

◆고래고기를 맛보다

이날 모두 열두 가지 맛을 낸다는 고래고기를 음미했다. 이 마을에서는 먹는다고 하지 않고 ‘품는다’고 한다. 고래가 영물인 탓이다. 고래문화마을 내 포수의 집에서 늦깎이 고래해설사로 활동하는 추소식씨(77), 국내 첫 포경선 포수로 알려진 김세곤씨의 장남인 영찬씨(66) 등을 통해 고래고기에 얽힌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고래껍질, 대창, 오노미(꼬리 쪽 살코기), 오베기(소금에 3개월 이상 절인 고래장아찌의 일종), 우네(가슴살) 등이 별미 부위. 특히 그 시절 황제급 부위는 단연 ‘오노미’였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부위는 살코기와 우네 정도였는데 살코기 특수 부위가 오노미였다. 고래 한 마리당 20㎏밖에 안 나왔다.

고래고기는 고기 맛 이상으로 소스가 압권이다. 부위별 전용 소스를 많게는 7개까지 내놓는다. 부위별 맛이 얼마나 달랐으면 이다지도 많은 소스가 필요했을까. ‘맛좋은 고래고기’란 노랫말이 새삼 실감났다. 고래껍질은 소금·된장·멸치젓, 오노미는 초장과 고추냉이, 오베기는 초장, 우네는 고추장과 와사비가 궁합이 맞다. 특히 초간장소스는 생고기와 생우네용으로 사용된다.

장생포 포구의 포경선은 울산의 ‘자금줄’이었다. 그 조그마한 어촌에 다방만 3개가 포진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란 댄스홀도 있었고 미군영화도 상영됐다. 돈 많은 포수를 기다리는 한일관, 평양관 등 요정도 서너 곳이 있었다. 잘 나가는 포수는 연봉계약을 했다. 보통 포수 포함 12명이 한 조를 이뤄 배를 타는데, 11명의 월급을 합친 정도의 돈을 받았다. 부자 포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장생포초등학교에 일찌감치 야구부가 생긴다. 한때 윤수일도 그 야구부원이었고 훗날 롯데 자이언츠의 스타플레이어가 되는 윤학길도 있었다.

◆울산의 3대 먹거리 이야기

‘울산삼미(蔚山三味)’를 아시는지.

고래고기와 불고기, 그리고 경주시 감포 해안을 따라 울산쪽으로 내려가다 만나게 되는 ‘정자항 가자미’가 그것이다. 이제 ‘정자항 하면 가자미’로 통한다. 동·남·서해에서 자연산 가자미가 나오지만 유독 정자항 앞 해역 물살이 빨라 정자항 자연산 가자미를 최고로 친다. 울산의 남쪽에선 장생포 고래, 북쪽에서는 정자항 가자미가 ‘미식몰이’ 중이다.

가자미 이전 정자항은 생선보다 각종 돌미역과 다시마 등으로 유명했다. 멸치·미역 붐을 일으킨 부산의 기장과 함께 울산 정자항 미역은 진도 독고산미역, 울진 고포미역과 함께 ‘국내 3대 미역’으로 불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정자항 바로 옆 화암마을. 급히 돌미역을 걷고 있는 오철근씨(67)를 만났다. 그가 보여주는 돌미역은 분명 품격이 느껴졌다. 통영과 거제에선 봄을 맞을 때 도다리 쑥국을 먹지만 여기는 ‘가자미 미역국’을 즐긴다.

처음부터 ‘가자미 1번지’가 된 건 아니다. 86년에 겨우 방파제가, 96년쯤에는 배를 정박할 수 있는 물양장이 형성된다. 이때만 해도 ‘가자미 마을’은 아니었다. 새천년 간절곶 해맞이 특수가 결정타였다. 자연산 가자미 특수, 부산 송정~강릉 경포대로 이어지는 7번국도 드라이브족 등과 맞물리면서 정자항은 영덕 강구항 못잖은 해산물 타운으로 급성장한다. 현재 대게 등도 함께 파는 이런저런 횟집이 100여곳 된다.

60여척의 가자미 잡는 자망어선이 있다. 잡힌 가자미는 자율판매를 통해 횟감만 파는 위판장에서 거의 소진된다. 회 판매 방식은 포항 죽도시장 회 타운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죽도시장은 고기 파는 곳과 식당이 세트로 붙었지만 정자항은 위판장과 회를 먹을 수 있는 일명 ‘초장집’이 분리돼 있다. 위판장에서 고기를 산 뒤 위판장 앞 초장 가게에서 쌈 재료를 사서 방파제 등에서 퍼질러 앉아 먹으면 된다. 그게 정자항만의 진풍경이다.

◆울산불고기

국내 3인방 한우불고기가 있다. ‘한양·언양·광양불고기’를 일컫는다. 일명 ‘3양(陽) 불고기’로 불린다.

청동 불판에 각종 양념을 한 불고기를 넣고 달달한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먹는 게 ‘한양식(서울식) 불고기’다. 언양식은 육수가 없는 ‘바싹 불고기’. 전남 광양식은 얇게 저민 소고기를 불에 굽기 직전에 매실진액 등 양념을 부어 구워 먹는다. 80년대 광양제철소가 건설될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근로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불고기다.

울산불고기의 양대산맥은 ‘언양·봉계불고기’다. 2006년 전국 첫 불고기특구로 지정된다. 현재 언양은 30개소, 봉계는 46개소가 있다. 자존심 대결 중인 광양도 불고기 특구다.

언양불고기의 역사를 알기 위해 언양읍 서부리‘한마당한우촌’의 고정훈 사장을 만났다. 봉계리와 달리 언양불고기 업소는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36년 전 포장마차에서 양념 돼지갈비를 팔기 시작한 어머니의 맛을 이은 그가 언양불고기 유래를 들려준다.

일차적으로 50년대초 반천·가천 지역의 우시장의 영향을 받았다. 60년대 언양 자수정동굴 특수 등으로 인해 언양불고기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춰진다. 원조는 70년대초 남부리 옛 언양면사무소 옆에서 문을 연 신이만 사장의 ‘부산불고기’로 조사됐다. 흥미롭게도 오형제는 모두 불고기를 팔았다. 다섯째 오만씨는 형에게 기술을 배워 부산 광안리로 가서 언양불고기를 퍼트려 훗날 해운대 암소갈비와 함께 부산의 양대 불고기로 자리를 잡는다. 현재 오형제는 모두 타계했다. 오형제 불고기는 암소의 다양한 부위를 얇게 썬 후 간장양념에 2~3일 숙성시킨 뒤 참숯석쇠에서 구워내는 방식. 이게 언양불고기의 기준이 된다.

언양식은 양념을 버무릴 때 채소류를 일절 넣지 않는다. 100% 한우만으로 만든다. 꼭 한우 버전의 북성로불고기 같다.

언양식만 있는 게 아니다. 울주군 두동면 ‘봉계식 불고기’도 있다. 춘천닭갈비가 철판과 석쇠형으로 양분되는 것과 비슷하다. 봉계식은 고기를 다지지 않고 그냥 로스구이처럼 부위별로 구워먹는다. ‘대구식 숯불갈비’와 비슷하다. 광복되던 해 1만9천800㎡(6천평) 규모의 봉계시장 내 우시장이 형성된다. 봉계리를 중심으로 주변 16개 마을에서 암소를 사육한다. 3~4세 한우암소만 쓴다. 초창기에는 연탄불, 93년부터 화력이 달라진다. ‘왕소금 참숯구이시대’를 도입해 대박을 낸다. 봉계불고기 붐은 90년대 중후반 경주 산내와 화산 등지로 확산된다.

대다수 식당이 식육점을 겸한다. 구이광이라면 봉계리부터 방문하라. 안창살, 토시살, 부챗살, 우둔살, 채끝등심, 낙엽살 등 특수부위를 고루 맛보여준다.

현재 언양읍성과 봉계리 단지 초입에 두 지역을 대표하는 한우 동상이 서 있다. 두 마을은 격년제로 불고기축제를 연다. 올해는 언양 차례로 추석 무렵 열릴 예정.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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