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달서천에서 날뫼골까지 서대구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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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01   |  발행일 2016-07-01 제39면   |  수정 2016-07-01
달서천 복개도로 가로수 그늘 아래 샛강 흔적 따라 달린 ‘대·관·즐’ 코스
(대·관·즐-대구를 느끼고 보고 즐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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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 자전거길 중앙고속도로 길 금호대교 인근서도 중급 정도의 반영사진을 낚을 수 있다.


잘난 맛에 사는 도시인은 ‘많이 안다’는 착각 속에 산다. 앞산 구경 멀고, 등잔 밑이 어두운 법. 대구 북부정류장이 서구 비산동에 있다는 걸 30년 넘게 살고 알았다.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타지 않았다면 북부정류장은 북구청 영토로 잠재되어 있었을 게다. 서대구고속터미널은 북구 노원동, 북부정류장은 서구 비산동. 북부정류장을 칠곡 쪽으로 북진 이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행정동의 위세에 식민살이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인류는 이름이나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할 정도로 많은 그릇된 정보의 역사를 축적했다. 올바른 인식, 그릇된 인식의 분간이 모호하지 않은 시간 속에 사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포바!

무더위가 살짝 가라앉기 시작하는 일요일 오후 달서천 복개도로 가로수 그늘을 타고 샛강의 흔적을 따라 흘렀다.

출발선 북부정류장 가까울수록 역한 내
염색공단 노동자들 격한 삶에 가슴 먹먹
공단길서 둑방길 오르니 江 정비 한창
울퉁불퉁 길 한참 가서 금호강자전거길

노을 물든 지 30분 새 주위 온통 검은빛
방천리∼서재리∼세천리 밤으로의 라이딩
뜻밖의 시원함은 대프리카에 주는 선물
열대야 식혀줄 야간라이딩 코스로 강추


달서천 복개도로 인도를 달리며 강허달림의 ‘옛 일기장’을 들었다. “참 무모해 무모하다 못해 절박하지 제대로 산다는 건/ 일어나 일어나 천천히 일어나/ 나 살아 숨 쉰다고 꿈틀거리던 하얀 자국 선홍빛 기억 또렷이 남아”. 소리꾼 달림이는 무던히 눈물나게 하는 울림이! 언젠가 북부정류장으로 가는 달서천 노상에서 그를 버스킹하고 싶다. 출발선인 북부정류장에 가까워질수록 코끝을 자극하는 격한 삶의 냄새를 흡입해야 했다. 포시랍게 자란 인간들에겐 역할 수도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생의 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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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본 세천리 한라비발디는 금호강으로 어둠 속 빛소리를 연주해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대구가 황금기로 기록될 능금빛 시절, 염색은 염색 이상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염색산업, 그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한 도시를 더럽히는 일이었으리. 아무리 최첨단 기기로 정화능력을 자랑해도 오폐수의 생산을 중단시키진 못한다. 실이나 천 따위에 물을 들이는 염색은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꾸역꾸역 연명하는 사양산업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류와 더불어 영원히 번영할 값진 일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하늘 가까운 곳으로 치솟아오른 염색공장 굴뚝은 엄지손으로 보였다. 그 하늘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이렇게 역한 냄새를 뿜어내며 제 온몸을 더럽히며 노동자의 건강을 해쳐가며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는 아픈 진리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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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져야 아름다워지는 염색공단 옆 달서천의 왜가리는 삼족오처럼,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날아올랐다.

일요일 노는 날인데도 염색공단은 비산먼지가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염색산업을 지키는 만국의 노동자들은 육체노동의 몫에 이 공기와 더불어 사는 대가로 월급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자동차를 타고 염색공단을 여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그 자체의 중노동. 내 생애 처음 염색공단 길을 지나치지 않고 정신 차리고 돌아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두발자전거 덕분. 지는 햇살의 유혹에 떨어지는 해가 무서워 달서천 둑방길 위로 오르지 않고는 전진할 수 없었다. 북부정류장 들머리 공단 길에서 달서천 둑방길로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접근로는 보이지 않았다. 도보로도 불편한 난간 길로 묵직한 자전거를 끌어당기며 위험한 길을 올라서니 강으로 가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공사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달서천 염색수는 색색의 빛깔에 비례하는 냄새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물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왜가리는 인간의 출현을 반기는지 경계하는지, 안데스의 콘도르처럼 날아올랐다. 오폐수를 정화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던 왜가리.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왜가리의 울음소리에 놀랐다. 저 의미는 무얼까?

평리교에서 달서천이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 1.7㎞ 구간에 걸쳐 생태하천과 자전거도로 및 수변 문화공간 등을 조성하는 달서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이 한창이었다.

이 공사가 끝나면 북부정류장에서 금호강자전거길로 가는 새 길이 열린다. 아직 이 길은 포장과 비포장 격차로 덜커덩거렸다. 달서천 하수처리장 쪽 울퉁불퉁한 길을 반신반의하며 가다 보면, 신천대로를 잇는 달서교를 지나자마자 달서천과 금호강이 합수하는 지점에서 금호강자전거길을 만난다.

달서천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이 배스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빅배스를 노리는 강태공들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인 금호대교가 지나가고, 서대구IC와 사수동 금호지구와 칠곡 지역을 잇는 와룡대교, 경부선KTX 철로가 교차하고, 금호강 위로 철로와 고속도로와 도시고속도로가 어지럽게 흐르고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달서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코끼리 형상의 산을 바라보게 된다. 멀지 않은 거리의 저 산 이름을 몰라서 답답하고, 산을 보기 민망해진다. 아메리카 식으론 팔공산 하나로 족할 걸 우리네 조상들은 온갖 무생물에 온갖 이름을 다 갖다 붙여 존재감을 살려놓았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다.

점점 서대구의 금호강은 디테일을 없애는 어둠의 질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물들어갔다. 달서하수종말처리장에서 성서5차첨단산업단지가 있는 세천리까지는 13㎞쯤 된다. 해질 무렵에 타이밍을 맞추면 금호강 노을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자전거를 탄 마음은 노을 따러 가는 무지개소년이 된다. 서재리 억새공원에 도착해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 쉬지 않고 달리면 말 그대로 ‘새 된다’. 저 산 저 멀리 저 언덕 가득 노을이 붉게 타다 꺼져 가고 있다. 여기가 세천리 소나무를 이식했어야 할 자리이다.

나무시장님이 쓰레기매립장에만 산림녹화할 것이 아니라 수변경관도 조성하길 나무아미타불 기원해본다. 나무심기로 온도가 떨어졌다는 찬사를 받는 미담도시 대구는 광합성 작용하는 나무 이상의 경관수로 도시브랜드를 더욱 심화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노을과 밤은 붙어 기묘하게 동거하며 산다. 30분은 빛의 속도로 훌쩍 흘러간다. 주위는 온통 검은빛으로 컴컴하다. 세천리 한라비발디 아파트는 자연 가까이에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담은 야경 한 컷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둠 속을 달리던 자전거는 세천교에서 성서5차 도시 첨단산업단지로 꺾어 유유자적 집단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공단을 야간순찰하듯 돌아다녔다. 방천리에서 느꼈던 시원함은 세천리로 이어졌다. 방천리~서재리~세천리 밤으로의 라이딩은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뜻밖의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대구의 소문난 살기 좋은 동네로 꼽힌다는 1파(동)2무(태)는 무슨 소리! 대프리카의 여름밤엔 1팔(공)다(사)2파(동)3무(태)라 해야 옳지 않을까? 대프리카의 밤과 다른 대구의 다사다냉함을 발견한 라이딩이었다.

새재로를 따라 새재문화체육센터~와룡대교를 지나 금호화물자동차공영차고지로 빠지는 샛길을 타고 서대구IC, 이현공단(서대구산업단지)으로 가는 상리지하차도로 향했다. 이현공단은 주독야경 야간경비를 했던 내 청춘의 추억이 서린 곳이라 기억을 더듬어 옛 근무지를 찾아보았다. 밤샘 2교대하던 섬유공장 공순이들은 보이지 않고 기억에 없던 큰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추억은 오래 머물지 않고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이곳을 잃어버린 일기장 펴보듯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밤 10시가 되니 출출해졌다. 서대구 IC 진입로가 있는 이현삼거리에서 평리네거리로 가는 길에 24시간 돌아가는 굴국밥집 생각이 났다. 일하는 사람들이 단골인 맛집은 주고객의 식성에 맞춘 듯 약간 짠맛이 날 때가 많다. 그 짠맛을 먹으며 원기 보충하고 마지막 행선지인 달서로34길 달성토성마을 사업이 진행 중인 비산동으로 향했다.

평리네거리에서 시원함이 날아가고 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달려 비산2·3동 날뫼골 골목정원에 도착하니 열기는 달아났다. 도시재생이라는 큰 틀의 흐름 속에 보게 되는 비상업적인 서민표 도시재생사업으로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줬다. 부자는 자기 집 안으로 보기 좋은 것들은 감추는 미덕이 있다면, 서민은 좁은 집 안에 두지 못해 함께 나눠가지는 미덕이 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미학이다. 골목길로 나앉은 꽃들을 보면 생의 차이로부터 용솟음치는 감동이 더한다. 달서천-염색공단 서대구 라이딩의 끝에 챙겨가는 희망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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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7동 달성토성마을 날뫼골 골목정원은 등대섬 같았다.

중구와 서구가 만나는 날뫼골 골목정원 끝길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며 수성구로 가는 3호선 지상철을 보았다. 수성구를 욕망하지 않는 원대구 날뫼골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바람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있었다. 열대야를 식힐 대구의 ‘야라’(야간라이딩) 코스에 북부정류장 달서천에서 날뫼골로 가는 코스가 명함을 내민다. 대관즐! 대구를 느끼고 보고 즐길 수 있는 라이딩 코스로 자리매김되었으면 한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북부정류장∼염색공단 달서천∼금호강자전거길(방천리∼서재리∼세천리)∼세천리 성서5차 첨단산업단지∼서재로∼방천리 쓰레기매립장길∼환경자원사업소∼상리지하도∼이현공단∼평리시장∼북비산네거리∼날뫼골 달성토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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