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비내리는 고모령을 찾아’ 천을산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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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38면   |  수정 2016-09-30
이 세상 소풍 끝낸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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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어머니의 강 금호강 생태습지와 아버지의 산 팔공산 비로봉이 한 몸으로 조망되는 천을산 포토바이킹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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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곡교 ~ 침산교 사이 둔치길 신천대로변의 자전거 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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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불고골프연습장에서 팔현마을로 가는 고모령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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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역 건너 고모상점 마을길을 통해 남부정류장 가는 길에서 만나는 연밭못 서당지의 노을 풍경.

평생 아픈 몸·가난한 삶 ‘고맙소할매’
추석 연휴 병상의 어머니와 작별 준비
귀향길 가듯 북부정류장서 천을산行

만촌자전거경기장까지 꼬리문 잡생각
‘이 일대를 어머니랜드로…’ 바람도
‘맏아들격’ 풍광 천을산 노을 연신 셔터

많은 비가 어미 잃은 슬픔 함께하던 날
다시 라이딩 ‘비내리는 고모령’ 만나


올 추석엔 자전거를 타고 가난한 어머니의 시적 신화가 있는 남해 금산을 다녀오고 싶었다. 내심,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행장(行狀)을 써볼 셈으로 “바다에 문득 숯불처럼 달아오른 비단 어머니의 산”을 디뎌보고 싶었다. 그것이 자식으로서 촌부로 삶을 마감하는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이성복, ‘남해금산’)

연인간의 사랑보다 시원적인 모자지간의 사랑도 이성복 시인의 ‘남해금산’ 바다, 돌, 해와 달 속에 묻혀 있었다. 떠날 그 여자는 나의 어머니였다. 남은 시간, 퇴계 선생이 어머니 무덤가에 새긴 ‘선비증정경부인박씨묘갈지’와 일맥상통하는 글로 가실 이의 넋을 위로할 채비를 했다.

“어머니비 덕망 있는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타고난 품성이 아름다웠으며 시어머님을 섬기는 데 정성을 다했고 제사를 성심껏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3세의 어머니 앞에는 나이 어린 7남매가 있었다. 3년상을 마친 후 밤낮으로 농사짓고 누에 치는 일에 매달렸고, 자식들이 성장하자 가난을 벗기 위해 더욱 힘을 쏟으셨다. 자식들이 원근의 스승을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늘 훈계하시기를 문예(지식)만 치중하지 말고 몸가짐과 행실에 주의를 기울이거라.”

그러나 입으로 하던 식사가 불가능하여 콧줄을 차고 하루하루를 살던 그 여인은 요양 중이던 팔공산 갓바위 붓다의 집을 떠나 금호강가 요양병원에 도착, 연명치료를 받았으나 산소호흡기까지 차고 삼도천(三途川)을 건널 준비를 하더라. 추석 연휴라 하루도 대구를 벗어나기 어려워 ‘비 내리는 고모령’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천을산을 찾아 작별여행을 하기로 했다.

추석 하루 전인 9월14일 오후, 귀성 행렬이 고향을 향할 때에 천을산행 포토바이크는 북부정류장을 출발했다.

3공단 노원~침산동을 거쳐 노곡교 굴다리를 지나 금호강자전거길로 들어섰다. 금호강자전거길 노곡교~북대구IC 들어가는 서변대교 구간 신천대로변에는 흙길이 있어, 이곳을 지나갈 때면 흙탕물이 튀더라도 즐겨 달리곤 한다. 흙길 좋아하는 바이커에겐 동촌방면 금호강자전거길~신천자전거길 분기 지점인 침산교 옆 북부자전거정비센터 앞까지 짧지만 짜릿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즐라코스’다.

금호강 북구자전거정비센터는 만남과 휴식의 광장이지만,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시설로는 아쉬움이 많아 운영 개선의 필요성을 느낀다. 구멍난 태양광자전거공기주입기가 있는 금호강 북구자전거정비센터에서 졸속 고모령노래비가 있는 만촌자전거경기장까지는 13.5㎞ 1시간 구간이다. 신천의 비릿한 강내음은 금호강 맑은 바람에 날아간다. 그렇지만 침산 잠수교를 지나 동변동 화담마을 주변에 이르면 강 건너 지은 지 20년 넘은 가축 축사에서 방사하는 분뇨 내음이 과객의 기분을 잡친다. 화담마을로 가는 구름다리가 있다면 달려가 축사 폐쇄를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검단들과 화담마을을 잇는 구름다리가 자전거교통을 위한 SOC사업으로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

금호강자전거길을 달리며 대구가 자전거교통을 위한 SOC사업 선도도시로서 녹색친환경 교통의 수도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북·동구는 팀플레이를 하여 이시아폴리스에서 압로정과 안국사 부근으로 오는 자전거교량을 설치해 실질적 ‘신대구 10경’ 창조경제에 뛰어들기를 바란다. 예산이 없다면 하루빨리 돌다리라도 놓아 빙빙 돌아 공항교를 건너야 하는 고충을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기차가 멈춰선 틈에 조성한 아양철교는 나그네의 걸음까지 멈춰 세우게 하는 만족감을 주고 있다. ‘달맞이교’라고 개명하는 게 역사성에 맞을 듯한 동촌 해맞이교는 설계 방식이 예사롭지 않아 직진주행 자전거를 횡단하도록 하는 매력이 철철 넘친다. 해 떨어진 길에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올 때 펼쳐진 야경 또한 볼 만해 셔터에 자동적으로 손이 간다.

동촌은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대구의 경관 자원을 고려해서 야시장을 동촌에 차렸으면 얼마나 실효성 있을까. 이런 잡생각은 자전거라이딩 터미널인 만촌자전거경기장에서도 끝이 나지 않는다. 자전거경기장을 몇 안되는 선수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만촌경기장은 자전거 콤플렉시티(융복합문화공간)로 거듭나야 한다. ‘비내리는 고모령’이 있는 이 일대를 ‘어머니랜드’라 선포하고, 수성의료지구를 연계하는 여성과 가족, 요양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 밑그림을 그리면 창조경제 실현이라는 큰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자전거가 한숨을 쉬며 만촌경기장을 지나 호텔인터불고골프연습장 옆을 달린다. 속도제한 30㎞ 도로를 차들은 속도를 낸다. 자전거의 안전을 위해 중앙선을 넘어 달리는 배려는 고맙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등재될 이 길을 위해서라면 자동차 운행제한(주민, 관광여행용 차량 등 통행 허용) 및 자전거 평균 시속으로 속도제한(20㎞ 이하)을 적극 고려해 봄직하다. 이 고갯길을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팔현 수성패밀리파크로 넘어가는 그림을, 연인의 손을 잡고 데이트하며 사랑고개를 넘는 청춘남녀를 상상해 보라. ‘어머니랜드’는 그렇게 아늑한 길이 있는 곳이라야 된다. 팔현마을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짧지만 상큼한 다운힐을 할 수 있다. 1㎞ 되는 이 구간에서도 자동차 속도에 위협을 받으며 라이딩을 해야 하는 교통행정은 지옥 같더라.

천을산을 찾아가는 동선은 수성패밀리파크~금호강우회자전거길~금호강생태습지~KTX 경부선 팔현가도교~고모역~가천마을 삼거리 좌회전~고모로22길 대구부산 중앙고속도로 가천교 아래 금불사를 찾아가면 천을산 입구 길이 나온다. 15분여 걸렸다.

천을산은 156m 되는 낮은 산이다. 율하동에서 보면 존재감 없는 못생긴 산이던 천을산에 막상 올라보니 금호강, 팔공산 비로봉을 조망할 수 있는 맏아들 산 같았다. 구름 낀 날 산에 올랐는데, 이곳에서 보는 저물녘 팔공산은 변화무쌍한 하늘 갤러리였다. 어두워가던 하늘에 붉은 산노을이 끼는 이색 조화가 일어났다. 하늘의 선물이런가. 예상 밖의 노을 장면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첫 업힐에 쓸만한 사진을 횡재했다. A급 노을사진이 나올 법한 포토바이킹존이었다. 어둠에 물든 눈 앞의 가천역 차량기지 주변은 고향으로 향하는 KTX 열차의 속도로 저물어갔다. 그날 나는 천을산에 올라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를 당신을, 해저문 고모령 어딘가에 묻고 내려 왔다.

라이딩을 마치고 매호천으로 나가 금호강을 따라 투병 중인 아양교 옆 어머니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어머니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엄마라면 아픈 자식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있을까 싶은 생각에 목이 매어왔다. 이번 추석 고비는 함께 넘길 것으로 기대했건만, 일생을 아픈 몸으로 가난과 더불어 산 그녀는 자식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세상이 가장 배부른 날을 택해 홀로 먼 여행길을 떠났다. 그녀에겐 세상살이의 고됨과 서러움이 정지되는 기쁨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생의 힘겨움 속에도 늘 자식에게 해준 게 없다는 미안함으로 살았고, “내 새끼들 남의 눈에 꽃이 되고 잎이 되게 해주이소”라는 기도와 항상 “고맙소”를 입에 달고 살아서 ‘고맙소할매’로 불리기도 했다.

래여애반다라,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성복, ‘래여애반다라’)이 바로 우리들 삶임을, 이 땅의 어머니들의 삶 또한 그러하리라. 많은 비가 내려 어미 잃은 슬픔을 함께 흐느껴 줬고 적당한 비는 불효한 영혼을 씻어주었다.

뼈가 비틀어지는 아픔 속에서 웃는 얼굴로 살아내며, 꽃 같은 얼굴을 완성하고 떠난 어머니의 넋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평소 주문처럼 외곤 했던 ‘래여애반다라!’가 가슴속에 되살아났다. 민생은 민생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언어를 품고 살아야 민생이다! 삶은 애반다라. ‘래여애반다라’는 삶과 죽음 사이의 육두 인생에게 큰 위안을 주는 최선의 축문 같아 어머니 영정사진 위에 ‘래여애반다라’를 훈장처럼 내걸었다. 대통령의 조화가 부럽지 않았다.

“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이성복, ‘강’)

어머니를 고향 흙의 품에 묻어두고 또다시 금호강~천을산 라이딩을 하며 비 내리는 고모령을 다시 넘었다. 두번째 오르는 천을산에서 나는 고모령을 만날 수 있었다. 수성구청의 ‘고산지역 문화·관광 활성화 방안’ 정책과제 워킹그룹 회의 준비를 위해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는 조형작가 김기용 선생이 동행했다. 천을산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도 30분이면 족했다. 19일 라이딩은 고산중학교 방면으로 다운힐해서 천을로를 따라 고모역 방면으로 와서 길 건너 고모 상점을 통해 서당지~천태종 동대사~대구명복공원으로 향하는 코스를 탔다.

라이딩의 대미는 엄마의 꿈을 담은 ‘에나콩콩’ 아포가토 커피를 마시며 장식하려 했다. 요즘 수제 아이스크림 핫플레이스로 뜨거운 ‘HALTABOKA’에 들렀으나 월요 휴무라 헛물만 켜고 돌아와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멈추지 않는 한, 천을산을 경유하는 고모령라이딩은 가랑잎이 휘날리던 산마루가 있는 어머니 품안 여행을 안겨 줄 것이다. 생명의 어머니의 강 금호강을 타고 흐르는 내 자전거 노래는 ‘차마고도’에 나온 ‘자시용종’처럼 살았던 한 여인을 그리는 ‘흘러가는 난창강’처럼 너울질 것이다. 원왕생, 래여애반다라!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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