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이젠 도시 재생이다 .1]도심재생 왜 필요한가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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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2   |  발행일 2016-10-12 제6면   |  수정 2016-11-02
139개 읍·면·동의 75% 쇠퇴…‘철거 후 아파트공급’ 방식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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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지어져 1950년대 자유당 대구경북도당 사무실로 사용된 후 한동안 방치되다 2012년 10월 대구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북성로 허브’로 새롭게 탄생한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대구시는 오는 12월까지 74억3천만원을 들여 이곳 일대를 대구읍성상징거리로 조성한다.


옛 모습을 유지한 채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이 최근 도시정책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도시정책은 가파른 경제성장과 인구증가, 도시화로 1990년대까지는 신도시 개발, 신시가지 확장 등 부족한 주택 공급, 도시의 외연적 확산 위주였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굳어지고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도시 전반이 침체되는 역도시화, 즉 쇠퇴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를 보면 2014년말 현재 전 국민의 90%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 지역 가운데 65%가량이 사회, 경제, 환경 측면에서 쇠퇴하고 있다. 기존 지방 소도시에서만 나타나던 인구감소 현상이 최근 중대도시로 확대되고 있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2014년 12월 기준 139개 읍·면·동의 75.5%가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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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의 사업 현황
중구 공구골목 내 ‘북성로 허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 활용
카페·갤러리·게스트하우스 조성
근대골목·김광석길…도심활력

◇영국·일본의 우수사례
런던 폐항만지역 금융지구 변신
공업도시는 신산업 위주로 개편
日, 62개 도시 긴급정비지역 지정
투자 7조엔·일자리 133만명 창출

도심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하지만, 지난 30여년간 주로 이뤄졌던 대규모 철거 방식의 도시 정비는 더 이상 해법이 될 수 없다. 이 방식은 낙후된 도심의 주거환경 개선과 부족한 주택 공급이라는 측면의 긍정적 성과도 있지만,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훼손, 문화격차 해소와 같은 지역 차원의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도시문제 해결에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숙 단계에 이른 현재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과 같은 전면철거 후 아파트 공급 방식으로 이를 전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노후된 정주환경 개선과 주민공동체 활성화 등을 위한 도시재생사업의 추진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급속한 도시화와 성장을 거쳐 성숙단계에 이른 상황이어서 도시성장 단계로 보면 도시재생 수요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영남일보는 ‘대구 도시재생, 활기찬 도심재창조로 산업·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국내외 도시재생 정책과 선진 사례, 대구시 도시재생 사업 추진 현황 등 사례를 살펴보고, 앞으로 대구시 도시재생 정책 방향 찾기에 나선다.

◆대구 재생은 진행형

7일 대구 북성로 공구골목 내 사회적기업가육성센터 ‘북성로 허브’. 100년 가까이 된 이 건물 2~ 3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사무실, 3층에는 강의실 형태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3층 지붕 내부는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예전 그대로였고, 창틀도 기존에 있던 것을 뜯어내 깨끗하게 수리한 뒤 다시 끼워넣었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 기존 건물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새생명을 불어넣은 것.

대구시와 중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1920년대 모자가게, 1950년대 자유당 대구경북도당 사무실로 사용됐다. 한때 이기붕 전 부통령의 아내인 박마리아 여사가 살았다는 증언이 있다. 하지만 수제화공장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비어 있다가 ‘북성로 공구박물관’과 함께 재생에 나서 지금의 ‘북성로 허브’가 자리잡았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으로 추구하며 기업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가를 발굴하고 돕는 이곳은 2층을 사무 공간, 3층은 라운지로 만들어 사회혁신을 꿈꾸는 사람과 그들을 도와줄 이들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스터디룸과 다다미방, 3층은 갤러리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인 ‘믹스카페 북성로’, 적산가옥과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판 게스트하우스’ 등도 재개발, 재건축이 아니라 재생의 방식으로 옛 건물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전충훈 북성로 허브 국장은 “재개발은 빨리 갈 수 있지만, 예전부터 이어오던 이야기와 그 건물이 지닌 역사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게 된다. 하지만 기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재생하면 속도는 느리지만 그 무엇도 잃어버리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만큼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짓는 방식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재생을 통해 먼저 도심을 살려보고,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믹스카페 북성로’의 장주연 매니저(26)는 “이곳을 찾는 손님의 상당수는 이 건물이 가진 옛 모습에 매력을 느껴 다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74억3천만원을 들여, 공구가게와 문을 닫은 옛 건물이 뒤엉켜 있던 이곳을 올 연말까지 대구읍성상징거리로 재생하고 있다.

대구시의 도심 재생 사업은 지역 곳곳에 새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대구시는 북성로 읍성상징거리 조성 사업뿐 아니라 대구 근대골목과 김광석 길, 행복한 날뫼골 만들기 등 다양한 도심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2010년부터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을 통해 국비를 지원, 종합적인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같은 재생사업은 2013년 박근혜정부 들어 도시재생의 정의와 사업유형, 사업추진 절차,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사업 추진체계 등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근거를 제시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 특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본격화됐다.

도시재생 특별법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의 유형을 크게 ‘도시경제기반형’과 ‘근린재생형’으로 구분한다. 도시경제기반형은 입법 과정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수반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근린재생형은 근린 단위의 생활환경 개선이나 공동체 및 골목경제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도시재생 선진국은 지금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도시 쇠퇴와 빈곤, 경기침체 등을 겪었다. 이에 국가경쟁력 강화와 도시경제 활성화의 하나로 도시재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영국과 일본이 대표적인 도시재생 선도국가로 꼽힌다.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은 많은 도시들이 제조업과 국제무역으로 번성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도시경제는 붕괴됐고, 이는 도시 쇠퇴 현상으로 이어졌다. 1970~80년대에 제조업 분야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도시의 실업·빈곤 해소 등이 국가 과제로 떠오르자, 영국 정부는 탈산업화에 대한 도시경제 구조의 변환을 목표로 세우고 도시재생에 나섰다. 1977년 도시 내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도시재생정책 백서인 ‘Policy for Inner Cities’를 발간한 후 도시재생을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하고 있다. 1981년 런던의 폐항만·조선소 지역을 첨단 금융지구로 재생한 도크랜드(Dockland) 프로젝트, 1990년대에는 리버풀, 셰필드, 맨체스터, 버밍엄 등 주요 공업도시를 문화, 콘텐츠, 미디어, 컨벤션 등 신산업 위주로 개편하는 도시재생 사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큰 정책의 틀은 이어나갔다. 그동안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도시재생정책의 체계는 바뀌어 왔지만, 큰 틀에서는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재생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일본의 도시재생은 198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후 찾아온 ‘잃어버린 10년’으로 도쿄 등 대도시가 경쟁력을 잃자 이를 강화하기 위한 국가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은 2001년 내각의 결의와 2002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 제정으로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전국 62개의 대도시에 도시재생긴급정비지역을 지정했고, 이후 일본 정부는 민간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금융지원, 규제완화, 조세감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총리가 직접 본부장으로 나서 도시재생을 총괄하면서 대도시의 도심부에 롯폰기 힐스, 미드타운 등 대형 민간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추진을 이끌었다. 2002~2011년 62개의 도시재생긴급정비지역에서 총 7조엔의 민간투자가 일어났고, 133만명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일본 정부는 분석했다. 또 이와 별개로 쇠퇴한 지방 중소도시에 대해서는 ‘중심시가지 활성화법’(1988년 제정) 등의 제도를 도입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춘욱 대구시 도시재생추진과장은 “도시재생사업은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 쇠퇴하는 지역의 그 원인과 잠재력 분석을 통해 주민에게 필요한 해법을 발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주민, 전문가, 공공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거버넌스를 구축, 도시재생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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