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형·어바웃 레이

  • 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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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5   |  발행일 2016-11-25 제42면   |  수정 2016-11-25


시력 잃은 동생 사기치려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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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유도선수 두영(도경수)은 경기 도중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다. 사기 전과 10범인 두영의 형 두식(조정석)은 교도소에서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눈물의 가석방 사기극을 펼친다. 두식은 몸이 온전치 못한 동생의 보호자 명목으로 풀려나지만 동생의 건강은 뒷전이다. 거짓말 끝에 얻어낸 인감 도장으로 동생의 통장에 든 돈을 빼내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구입해 몰고 다니는 철없는 행각을 벌인다. 동생의 이름을 팔아 장애인 할인까지 받아내는 알뜰한(?) 형이다.

신병을 비관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동생 두영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기꾼 형 때문에 비로소 숨겨왔던 까칠한 성질머리를 드러낸다. 15년 전 말 없이 집을 뛰쳐나가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형이 갑자기 보호자를 자처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들 형제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동거는 시작된다.


15년 만에 만난 사기전과 10범 형과 이복동생
납뜩이 조정석-엑소 도경수 ‘남남 케미’ 선사
‘7번방의 선물’ 유영아 작가·배우 박신혜 합류


‘형’은 코믹과 신파가 공존하는 영화다. 분량 상으로는 코믹의 비중이 더 크지만 강도 면에서는 신파가 훨씬 세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숨죽인 채 눈물을 흘릴 관객이 꽤 많이 나올 거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두식과 두영은 이복형제다. 사연 많은 가정을 배경으로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형’은 형제 각자의 인생 스토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형이 왜 집을 나갔는지, 형 없이 부모의 장례를 혼자 치러야 했던 동생의 삶은 또 어떠했는지를 간략하고도 담백하게 그려낸다. 대신 두식과 두영이 동거를 시작하며 전에 없던 형제애를 쌓아가는 과정에 큰 비중을 두고 이를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이 지점에서 조정석과 도경수의 호흡이 빛을 발한다. 마지막 반전이 있기 전까지 마치 시트콤처럼 에피소드 위주로 이야기가 구성되면서 두 사람의 연기 합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진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던 조정석은 능청스러우면서도 잔정 많은 형 두식 캐릭터를 팔딱팔딱 뛰어오르는 활어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자신의 출세작인 영화 ‘건축학개론’ 속 ‘납뜩이’를 오마주하는 듯한 장면에서는 연륜 있는 배우의 여유마저 느껴진다.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EXO)의 멤버로 2014년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도경수는 진중함과 까칠함, 그리고 의외의 유머 감각을 지닌 입체적 캐릭터인 두영을 무리 없이 소화하며 조정석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첫 정극 연기에서 이미 높은 점수를 얻으며 배우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도경수는 영화 ‘카트’ ‘순정’ 등을 거치며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영을 도와주는 유도 코치로 배우 박신혜가 등장하지만 비중은 작은 편이다. 조정석과 도경수의 브로맨스(남자들끼리의 친밀관계)를 더 중요시하다 보니 여배우 활용도는 다소 떨어진다.

시나리오는 ‘7번방의 선물’의 유영아 작가가 썼으며 ‘맨발의 기봉이’를 연출한 권수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정석과 도경수가 함께 부른 엔딩곡 ‘걱정 말아요 그대’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장르:코미디·드라마,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110분)



어바웃 레이
남자로 살고픈 열여섯살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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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싱글맘 매기(나오미 왓츠), 외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와 함께 살고 있는 16세 소녀 레이(엘르 패닝).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성(性) 정체성은 남성이다. 레이의 소원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성전환을 위해선 호르몬 요법을 써야 하는데 미성년자인 레이는 부모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엄마 매기는 그 누구보다 레이가 행복하길 바라기에 남자가 되고자 하는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함으로써 레이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수년간 함께 한 딸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들로서 레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든 것이다.


레즈비언 외할머니·싱글맘 함께 사는 3代 가족
‘아이 엠 샘’ 다코타 패닝 여동생 엘르 패닝 주연
수잔 서랜든·나오미 왓츠 특별한 모녀 연기 압권



한때 남자와 결혼해 딸 매기를 낳았지만 지금은 커밍아웃 후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레즈비언 할머니 돌리. 그녀 역시 “남자나 레즈비언이나 여자를 사랑하는 건 똑같다”며 외손녀 레이의 성전환을 말리려 한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는 부모 모두의 동의서를 요구하게 되고, 레이의 친부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매기와 돌리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어바웃 레이’는 그간 선보인 성 소수자 영화와는 다소 결을 달리한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한 사람이 가족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영화다.

레이의 진정한 모습이 ‘남성’이라는 것도, 그가 호르몬 투입을 앞둔 상황이라는 것도 가족 모두가 알고 있다. 영화는 그 이후부터 다뤄져야 할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이를 이해하고 지지하지만 이후의 변화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가족 모두의 감정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19세가 된 레이 역의 엘르 패닝은 3세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 벌써 30편 이상의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배우다. 언니 다코타 패닝과 함께 출연한 ‘아이 엠 샘’에서 인형 같은 외모로 등장한 그녀는 이후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꾸준히 눈도장을 찍으며, 비슷한 연령의 배우 중 가장 독보적인 커리어를 보여주고 있다. 10대 트랜스젠더 캐릭터로 파격적인 변신을 꾀한 이번 영화에서는 남자로 살길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 가족과의 갈등으로 점점 불안해져 가는 레이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현해냈다. 성전환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외형적 부분에서도 변화를 줬다.

레즈비언 엄마와 트랜스젠더 딸을 둔 매기 역의 나오미 왓츠는 이번 작품에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델마와 루이스’ ‘로렌조 오일’ ‘의뢰인’ 등 무려 100편 넘는 작품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을 펼쳐온 수잔 서랜든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며 여성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도 정작 자신의 외손녀의 상황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설명이 쉽지 않은 할머니 돌리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감독 게비 델랄을 비롯한 제작진은 트랜스젠더 10대 아이가 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편견이나 왜곡 없이 담아내기 위해 사전에 실제 그와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겪은 경험을 조사하고 그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영화는 이처럼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곳곳에 적절히 어우러진 유머와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장르:드라마,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92분)

김명은기자 dra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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