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칠곡 호국평화의 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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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6   |  발행일 2017-01-06 제37면   |  수정 2017-01-06
지워지고 가리워진 길엔 총맞은 6·25소나무가 지키고 섰네
‘철도지하 미로여행’ 착각 드는 지천면
낙화담·석양의 분도수도원 풍광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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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면 죽전리 샛터마을 이로재 옆 광주이씨 선영에 있는 6.25의 상흔을 간직한 생명평화의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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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면 용산리 지하차도 너머로 경부선 지천역으로 가는 철로가 보인다. 경부선 교통 요로인 지천면엔 지하차로가 미로처럼 지천으로 늘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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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재와 백운임도, 창평리 갈림길 안내판이 있는 창평지와 극락사 사이의 자전거 쉼터 앞에서 백운임도로 향하는 라이더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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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오먹골길에서 덕산리로 가는 이언천변에 있는 인문학적 풍경의 포토바이킹존.

대통령 신년사 사라진 2017년 첫 아침
민족평화통일 一念 담아 힘찬 페달질
'철도지하 미로여행’ 착각 드는 지천면
낙화담·석양의 분도수도원 풍광 일품


병신년 어둠을 뚫고 촛불로 밝혀진 정유년 새아침. 새날 새걸음으로 호국평화의 길 라이딩을 주제로 칠곡으로 가는 길을 더듬었다.

대통령의 신년사가 사라진 2017년,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년사를 들으며 재미난 사실을 발견했다.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한줄 찾아보려고 검색까지 했으나, 그의 신년사엔 유감스럽게도 민족이 실종되어 있었다. 종북 공세에 지레 겁을 먹고 두 손을 든 것인가?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서사를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악용하는 분열주의 소아병 정치세력들의 공세로, 민족은 동강나고 말았다. 우린 70년이 넘도록 남으로 살았다. 이젠 식민지 통일시대 한겨레인들도 씨가 말라간다. 민족적 비극이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 전직 대통령들이 비록 말씀에 그쳤는지 모르나,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매년 새해 새아침을 맞이한 것은 놀랍다.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악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 아닌가.

냉전으로 남이 되어가는 한민족의 운명에 파문을 던진 어느 자본가의 소떼 방북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피붙이 공동체의 운명을 기분 좋게 떠올린다.

“이제 그때 그 소 1마리가 500마리의 소가 되어 지난 빚을 갚으러 꿈에도 그리던 산천을 찾아갑니다.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민족통일이라는 화두가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자취를 감춘 시점이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라는 것이다. 민족을 희망과 해방이 아닌 골칫덩어리로 만든 냉전 정치 체제에 침묵 시위하는 마음으로, 동족 상잔의 비극이 서려 있는 칠곡에서 호국평화의 새 길을 열어보리라. 정유년 내 희망이 너무 부푼 것인가? 안타까움의 발버둥인가?

지워지고 가리워진 길을 향하는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동명네거리~여부재~숙곡재~지천지로~사수동~지천역~영오리~신리로 해서 연화리 신나무골, 왜관 분도수도원, 총 맞고 상처 아문 6·25소나무가 있는 기산면 죽전리로 갈까? 지도를 펴놓고 앉았으나, 가보지 않은 길은 백지로 보였다.

칠곡군이 임도 자전거길에 바친 정성은 이 길을 달려본 사람들의 후기에 칭찬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여러 자전거 라이딩 후기를 찾아보았으나 칠곡 산악자전거길에 대한 정보는 혼란만 더했다. 코스는 결국 근처를 달려본 경험에 의해 정해졌다. 나이가 지천명이라 지천역 방향으로 기울었다.

북부정류장 앞에서 달서천 둑방길 아래 염색공단로 21길을 따라 시동을 걸었다. 유시유종 휴일로 시작해 휴일로 마감되는 한국의 한해살이. 이주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지탱되는 염색산단도 쉬는 날이었다. 새롭게 준공된 달서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금호강자전거길로 합류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금호대교 아래 강물에 몸을 담근 강태공들은 일엽편주에 몸을 실은 뱃사공보다 금호강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어, 포토바이커의 셔터 세례를 받았다.

다사읍 방천리와 금호택지지구를 이어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와룡대교를 건너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이동했다. 아직 건축이 덜 된 한강근린공원 일대를 유유자적하게 한 바퀴 돌고는 한강로4길을 따라 왜관 방향으로 달리니 사수로로 진입해 3㎞ 거리에 지천역(지천면 용산리)이 있었다. 열차가 서지 않고 잠시 정차할 때가 있는 지천역은 추억하는 인간들의 마음이 머무르는 정류장이다. 이 지역의 이름은 1914년 일제의 식민지 통제를 위한 행정구역 개편 때 중심이었던 상지면과 면의 주요 하천인 이언천(伊彦川)의 끝 글자를 따서 지천(枝川)이라 하였다고 한다. 도로명에 상지길을 되살린 것은 사라진 지명을 부활시킨 인문학고을의 활동 성과로 평가한다.

지천역 앞 보양탕집을 눈요기하며 철로가 자아내는 낭만이 호젓한 길을 즐기며 두근두근 달려 용산로를 벗어나면 ‘하납실’이 나온다. 처음 만나는 길은 언제나 맨땅에 라이딩! 낯선 마을에서 헤매더라도 왜관김천 표지판이 자전거를 목적지로 굴러가게 한다. 납실은 상중하 납실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행정구역상 연호리다. 연호교차로 아래 대구-연호1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하납실마을 앞을 지나면 칠곡대로와 만나고 그길에서 ‘미실영청’ 표지판을 보고 ‘영오영청길’로 들어가 영청교를 건너 우회전해서 논길을 탔다. 영오2리(영청)를 지나고 언덕길을 넘으니 매복산 영오먹골길의 ‘천왕제’ 인문학마을 영오1리다. 임진왜란 무렵 사헌부 장령을 지낸 배한종이란 분이 들어와 살면서 달성배씨 집성촌이 됐다고 한다.

칠곡군수 보궐선거가 한창이던 2011년 문체부의 생활문화공동체 마을만들기 시범사업 영오1리 ‘삼칸정지 춤을 추네’ 프로그램 행사 때 만난 유치원생 보람이가 생각났다. 마을경로당에서 놀던 아이들을 보며, “경로당에 어린이 놀이터를 지어주는 군수님을 기대한다”는 캡션을 넣어놓았는데, 어린이놀이터는 보이지 않고 담벼락에 벽화만 늘어나 있더라.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인가 보다.

경로당 앞 담벼락을 장식한 풍물벽화는 마을 특성과 동떨어지지 않아 억지벽화 같진 않았다. 영오먹골길이 끝나니 영오덕천길이 열렸다. 경부선 지하차도를 지나 이언천변 어느 아름다운 징검도로길 위에서 주위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지천면은 경부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로라 철도지하 미로여행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철로변에서 자전거의 진행 방향은 덕산리에 있는 팔공승마장을 찾아간다. 이름 없는 지하차도에 이름을 새겨 넣으면 얼마나 좋은 길라잡이가 될까. 길이 곧 표지다. 지천로를 따라 팔공승마장, 덕산노인정, 덕산삼거리, 덕산교, 동원농장 풍경야생초 미림분재를 차례대로 지났다. 옛장터 버스정거장을 지나자마자 황학리, 백운리, 창평리, 심천리 마을진입로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했다. 참 좋은 자전거지방도다. 칠곡 산악자전거길의 중요거점인 요술고개, 낙화담, 사양서당 강당, 신동입석, 석담종택, 조양공원을 안내하는 문화재 간판들이 기대를 걸게 했다.

지천로 길가에 있는 지천면 신리의 광주이씨 석담종택(상지3길 17)은 대문 밖에서 흥학문만 구경했다. 이윤우라는 터줏대감과 난생 처음 알게 되었다. 근처의 한강 정구 선생께서 학업을 닦았던 사양서당 강당은 사전 정보가 없어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한강(寒岡)의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을 간행한 학업을 남겼고 입신양명 퇴낙향 후학양성이라는 영남선비의 공식처럼 사신 걸 확인할 수 있어 흐뭇했다.

석담종택에서 라이딩 인증샷 명소 낙화담이 있는 지천지까지는 3㎞. 상지1길이 있는 창평교를 지나 약간의 업힐을 하니 낙화담 기념비가 있는 지천지에 안착. 지천지는 임진왜란 때 마을 여인들이 이곳으로 피해 있다가 왜병들에게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버릴지언정 왜병의 손에 더럽혀지지 않겠다는 충열에서 몸을 던진 절벽이 있는 못이라 해 낙화담으로 불린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수상 휴양지라 칠곡 산악자전거길과 함께 인기를 얻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생소했던 지천지에 도착해 낙화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 하니 역광이 내리비쳤다. 때맞춰 다시 오라는 자연의 명령인가? 다음 방문지인 신나무골로 가기 위해 지천면사무소까지는 신리공단길을 경유하는 신동로를 탔다. 면사무소 옆 애국지사 강원형 열사 기념비를 스치고, 지천면사무소의 얼굴을 장식한 태극깃발들을 보니 촌스럽지 않고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자연스러웠다.

송정삼거리를 지나 구면인 신동파인힐스CC 간판과 눈도장을 찍었다. 칠곡대로를 따라 몇분만 가면 천주교성지 신나무골이다. 1815년 을해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교우촌을 이룬 이래 영남 지방 선교의 요람이 된 신나무골 엘리사벳의 집에서 “대구경북이 노벨문학상의 도시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쳤다. 삼청리와 매원네거리를 지나 만나는 왜관 분도수도원은 30분 거리.

수도원 입구에서는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 한국배치 반대한다’는 또 다른 평화론과 만났다. 새해를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김경상씨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해가 떨어져 중세에 온 것 같은 시간여행 속으로 들어갔다. 성당 입구 바윗돌엔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분도수도회의 모토가 새겨져 있었다. 포토바이킹 또한 하느님께 영광이길 바라며 올 한 해를 달리고 싶다.

호국평화의 길 라이딩 대미는 6·25전쟁 때 총맞은 소나무가 있는 기산면 죽전리. 왜관2철교를 넘어서, 죽전교차로에서 샛길로 들어서면 샛터마을이 나온다. 권오승 이장은 해질무렵 실루엣 사진이 걸작이 되게 인문학마을로 단장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인문학 정신으로 거듭나는 칠곡답게,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민족을 품고 욱일승천하는 진정한 평화호국의 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낙동강 자전거길을 타고 대구로 왔다. 칠곡은 자전거 타고 가기 좋은 위치에 있는 대구의 벗고을이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북부정류장- 염색공단로21길- 달서천 둑방길- 달서천 금호강자전거도로- 와룡대교-사수로- 지천역- 영오리- 덕산리 지천지 낙화담 - 창평지- 지천면사무소- 연화리 신나무골- 왜관 분도수도원- 제2왜관교- 기산면 죽전리- 낙동강 자전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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