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DS보도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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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5   |  발행일 2017-06-15 제29면   |  수정 2017-06-15
[기고] AIDS보도와 인권
김지영 에이즈예방協 대구경북지회 사무국장

한 여성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최근 경남지역의 한 신문은 ‘창원 20대 여성 HIV감염 확인, 최근까지 성매매 추정… 소재 파악 중, 감염확산 방지 등 지역보건 비상’이란 제목의 기사를 지면과 인터넷에 게재했다.

이 신문은 뒤늦게 인터넷 기사를 블라인드 처리했지만 이미 여러 인터넷 매체에서 여과없이 퍼나른 뒤였다. 하루 만에 댓글이 4천개가 넘게 달리는 등 5월 마지막 주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 성매매 여성과 HIV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따른 불안으로 떠들썩했다.

사실 관계를 보면 한 여성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던 중 HIV 양성 진단을 받았을 뿐이다. 이게 뉴스로서 과연 보도 가치가 있을까. 양성 진단을 받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HIV감염인 개인에 대한 단순 보도는 개인의 인권만 침해할 뿐 공공에 유익할 것이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언론과 미디어를 위한 HIV/AIDS 길라잡이’에도 △감염경로 부각 △HIV감염인의 신상명세 보도 △공포감 조성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단어 사용 △헤드라인을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내용으로 보도하는 것을 삼가도록 하고 있다. 시급히 심신의 안정과 AIDS치료 정보 제공이 필요한 때 이 여성에게 돌아온 것은 불안과 공포의 유발자이자 원인자로서의 낙인효과뿐이었다. 유포된 기사는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여성의 개인 정보를 드러내고 ‘소재 파악이 안돼’ ‘비상이 걸렸다’는 식으로 호도함으로써 개인의 행동자유권을 심각히 제한했다.

우리나라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비밀누설금지)나 의료법 제19조(개인의료정보 누설금지)에는 감염인과 병력자의 인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한 진상조사가 우선돼야 하며, 감염인 개인의 신상과 병력 정보에 대한 누설, 이에 따른 자극적 보도는 엄중히 다뤄야 할 사안이다. HIV감염인에 대한 보호지원·진단·진료·간호·기록 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은 감염인에 대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 신문과 행정기관은 감염 여성을 성매매 여성이라고 추정해 당장 찾지 않으면 감염이 확산될 것처럼 부추겼다. 이는 성매매 여성이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진원지’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매매자를 격리하고 성구매자를 보호하는 행태에서 비롯된 처사로 HIV감염인을 격리시켜 비감염인을 보호하겠다는 이른바 배제·격리라는 반인권적 보건행정의 연속선 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97년 UNAIDS(유엔에이즈)는 ‘HIV 검사와 상담에 관한 정책강령’에서 자발적 익명검사, 비밀보장, 충분한 설명과 상담이 토대가 된 HIV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 정책강령에 비춰서라도 이 여성은 HIV감염인으로서 보호·지원받아야 할 적법한 절차와 조치를 받지 못했다. 이 여성을 검사한 병원과 보건소가 해야 할 일은 HIV양성 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를 이 여성에게 충분한 상담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양성 진단 보도는 이 여성으로 하여금 치료를 받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게 만들었다. 잠적한 범죄자를 쫓는 뉘앙스의 기사를 보고 보건소를 찾아 상담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을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언론은 AIDS보도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항상 유의해야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의하면 일본 교토통신은 1987년 2월24일 ‘에이즈환자에 관한 개인적 보도에 대해’라는 내용으로 7가지 보도 준칙을 가맹사에 배포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 내에서는 에이즈의 개인적 보도를 함에 있어 인권보호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있다.

정부 당국 또한 헌법과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국민 개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철저히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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