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커피 레드’ 로스터 서재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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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42면   |  수정 2017-07-21
중국茶에 빠져 살던 교수, ‘커피 볶는 남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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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자에서 로스터로 변신한 서재일 커피레드 사장. 12시간 이상 커피집에 앉아 있지만 그는 커피 때문에 정중동의 희열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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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달라지는 커피의 풍미를 테이스팅하면서 아직도 최상의 ‘커피미학’을 탐사 중이다.

대구 수성구 지산동 충현교회 골목길로 접어들면 오른편에 접시꽃처럼 피어 있는 커피집이 보인다. ‘커피 레드(COFFEE RED)’. ‘커피는 붉다’는 뜻의 상호.

광대뼈가 발달돼 유달리 강팔라 보이는 로스터 서재일(54). 아파 드러눕지 않는 다음에야 종일 33㎡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12시간 커피 향에 사로잡혀 산다. 그는 정주형 커피족, ‘정중동(靜中動)’의 커피라인을 추구한다.

주인장 서씨. 커피인문학자 같았다. 한 잔에 2만원 하는 파나마 게이샤 등 10여종의 커피 중 세 종을 맛봤다. 생산지 토질의 질감과 향의 윤곽이 고화질 TV 화면처럼 또렷하게 피어올랐다.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파스텔톤의 컨테이너하우스 같다. 채 10명도 앉기 힘들 정도로 좁디좁은 커피숍. 에어컨도 없다. 그냥 선풍기에만 의존한다. 여긴 불편해서 더 운치 있다. 마니아들은 그 불편함을 은근하게 즐기면서 서재일표 커피에 엄지 척 한다.

◆ 한문학자와 커피 사이

2014년 12월. 그는 교수의 삶을 접고 ‘커피 볶는 남자’로 변신했다.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부터 7년간 중국 베이징대로 유학을 간다. 시문학으로 석사학위, 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보이차 등 중국 명차를 체크해가면서 마셨다.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 명품 찻잔인 자사호(紫砂壺)의 세계에 푹 빠진다. 얼추 1천여 종의 자사호를 접했다. 파고들어갈수록 무변광대한 중국차의 복잡다단함에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그에게 커피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14년 전 당뇨병에 걸린다. 그때 커피를 마시게 됐다. 커피가 당뇨병 완화에 도움을 줄 것 같아서다.


中 베이징대 7년 유학 중 茶문화 심취
보이차뿐 아니라 1천여 명품찻잔 섭렵
시·한문학 석·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
중국어학과 교수 근무중 폐교로 轉職

14년前 당뇨 완화 기대하며 마신 커피
전국 150여 커피숍 답사·관련 원서 독파
로스팅기계 제작공장 경험도 큰 도움
원두별 고유의 맛 선뵈는 커피숍 도전



대구로 돌아와 경북외국어대 중국어학과 교수로 근무하게 됐다. 중국 유학 때 용돈이라도 벌 수 있게 제자를 대상으로 커피공부를 시켜줬다. 하지만 대학이 폐교된다. 미래는 더 불투명해졌지만 그의 천직은 더욱 분명해졌다. 커피인생을 살자고 다짐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과 그걸 손님한테 파는 일은 천양지차.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았다. 일단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명커피숍의 본질부터 해부하기 시작한다. 1년간 전국 150여곳의 유명 커피숍을 유람한다. 적잖은 커피 원서를 독파했다.

◆ 나만의 로스팅 행간 읽기

참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입문기에 맞다고 생각한 게 뒤에는 틀리기 일쑤였다.

그린빈, 그러니까 생콩이 고온에서 볶이다 보면 여러 가지 변형이 일어난다. 커피공학자들이 그걸 분류해놓았다.

121℃ 즈음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생콩이 갈변되고 향이 오른다. 171℃ 근처에서 ‘캐러멜 반응’이 일어난다. 커피 성분이 당화되면서 달달한 기운이 솟구치게 된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서 생콩을 둘러싼 흰 막인 ‘실버스킨’이 타면서 분리된다. 단맛이 줄고 쓴맛이 증가하게 된다. 생콩이 원두가 되는 과정에 두 번 타닥거리면서 균열이 일어난다. 그 균열을 ‘팝(POP)’이라고 한다. 1차 팝 때는 콩이 열을 흡수하는 단계. 온도가 더 올라가면 콩 안의 이산화탄소가 팽창하면서 2차 팝이 일어나고 이때 오일이 스며나온다.

그는 처음엔 된장인지 똥인지도 모르고 그냥 겉멋에 취해 먹어댔다. 그런데 차츰 산패한 커피와 갓 볶은 커피의 차이를 알게 됐다. 보통 열흘 정도 지난 원두는 산패되는데 이는 커피 내부의 이산화탄소가 산소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상당수 산패된 커피 맛을 묵직하고 숙성된 맛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런 감각은 숱한 시행착오에서 터득되는 것이지 교육으로 가르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갈수록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7~8년 뒤 본격적으로 동호회 활동 등을 하면서 그동안 알았던 로스팅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여러 마니아를 만나면서 제대로 된 로스팅 기법을 알게 된다.

“로스팅, 참 중요한 절차죠. 이건 물과 불의 싸움입니다. 생두에 들어 있는 수분 함유율은 11~12%, 커피를 볶고 나면 1% 남짓하게 줄어들죠. 만약 수분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건 숯입니다. 생콩이 완전한 형태의 원두가 될 때까지 단계별 여러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를 ‘디벨롭먼트(Development)’라고 하는데 과정별 대응방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진정한 로스터가 되는 겁니다. 프로 기타리스트가 되려면 동일한 코드 안에서도 묘한 분위기를 주는 변형코드를 구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마추어 단계에서는 아는 것만 보이지만 프로로 접어들면 하는 것마다 벽이고 좌절입니다. 한 경지를 아무나 개척할 수 없는 거겠죠.”

자꾸 파고들면서 커피기계를 탐구하게 된다. 4년 전 대학에서 물러난 뒤 한 선배가 운영하는 커피기계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로스팅기기 제작과정을 알게 됐다. 거기서 엄청나게 중요한 비밀을 마주했다. 커피를 볶을 때 발생하는 훈열을 어떻게 배기할 건가 하는 문제와 열을 어떤 방식으로 생두에 전할 건가 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이다.

조건의 다양성, 그것에 따라 표변하는 커피의 맛. 고차방정식, 아니 미적분방정식의 해를 찾는 과정이었다. 저마다의 안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판소리도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뉘는 것처럼.

그는 커피집을 오픈하기 전 전국투어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상당수 커피집이 정상의 커피를 추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당수 로부스타 커피고 강배전 일색이고 다들 남이 볶아 놓은 걸 받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고 수년째 로스팅 일지를 만드는 고수도 있었다. 기승전결, 전 과정을 자기 손으로 핸들링하는 곳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주인도 문제지만 손님의 수준도 심각할 정도로 낮았다. 다들 커피를 맛으로 먹는 게 아니고 하나의 유행과 멋으로, 커피를 액세서리로 걸치고 있는 수준이었다. 유명한 브랜드라서, 그곳에서 노닥대기 좋아서, 그래서 조건반사적으로 먹는 게 커피였다. 커피를 먹는 게 아니라 커피와 ‘놀고’ 있었다. 친구가 그립고 대화가 그리운 거지 진정한 커피 맛을 갈구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1% 마니아를 위한 수제커피숍에 도전한 것이다.

◆ 커피는 기호식품…강요는 금물

마지막 깨달음이 있었다.

가게를 하면서부터다. ‘사람은 누구나 입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커피는 기호식품이죠. 자기 맛만 고집할 수도 없고 남의 맛을 폄훼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가장 흉측한 커피는 인격이 없는 로봇 같은 커피죠. 자기 고유의 주장, 성격이 담긴 커피에는 쓴·단·신맛이 공유돼 있고 실제 먹는 과정에서 그게 다 전해져야 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맛을 한국에서 즐기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면 할수록 갈 길은 더 먼 것 같아요.”

그가 가장 인정하는 커피는 게이샤도 블루마운틴도 루왁도 아니다. 쿠바에서 나오는 ‘크리스탈 마운틴’이다. 대문호 톨스토이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평생 먹은 커피도 크리스탈 마운틴이다.

“쌉쌀한 쓴맛, 사포닌이 들어간 듯 인삼향 같은 기운이 감돕니다. 혀끝에 남는 맛이 마치 면도칼에 베인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현재 한국에선 맛볼 수가 없습니다. 소비자가 거의 없어 수입이 안 되기 때문이죠.”

그는 블렌딩커피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절정의 콩은 서로 섞을 필요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이 즐기는 블렌딩커피는 콜롬비아(4)·브라질(3)·에티오피아(2)·과테말라(1) 비율입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는 보디감을 잡기 위해, 에티오피아는 향을 잡고 과테말라는 맛을 잡는 기능을 하죠. 커피에서 맵고 짠 맛이 나오는 건 배기가 안 좋아서, 떫은맛은 덜 볶여서 그런 것입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미국인들이 먹기 좋게 물로 희석시킨 스타일이죠. 초창기 좋은 커피가 유통되지 않아 저급한 맛을 보강하기 위해 여러 종의 커피를 섞는 과정에서 탄생한 겁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커피를 주제로 한 한시를 적어 보내왔다.

“春雨落英無踵跡/ 橫街小店焙煎香/ 言歡自若在窓口/ 相與飮茶幽興長(봄비에 꽃잎 지고 인적은 없는데/ 좁은 골목 작은 상점 커피볶는 향기/ 도란도란 창가에서 담소를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니 그윽한 흥취가 오래가네).”

수성구 용학로 246. 010-8577-5027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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