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패러다임을 바꾸자] <상> 대중화 그 이후를 준비하라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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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2  |  수정 2018-01-02 09:07  |  발행일 2018-01-02 제12면
레고처럼 규격화 표준화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 구축하라
20180102

“전기자동차 언제 대중화 될까” 어느 신문에 실린 전기자동차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이 기사를 보면 국내 완성차 브랜드가 전기자동차를 울산과 광명시 등에 기증했고, 각 자동차 브랜드마다 전기차 개발이 한창이다. 하지만 대중화(실용화)가 되기 위해서는 2천500만원이 넘는 비싼 차량 가격과 6시간을 충전해도 105㎞밖에 가지 못하는 배터리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제쯤 나온 기사일까. 무려 20여년 전인 1996년 12월 26일에 보도된 기사다.

지난달 20일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2020년대에는 전기자동차의 주행거리와 가격대가 내연기관차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전기자동차 주행거리는 내연기관차보다 짧고 가격대는 높아 시장 점유율이 제한적이었지만, 이 문제만 해결되면 앞으로 전기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릴 가능성은 크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기자동차가 해결해야할 숙제는 여전히 같은 상황이다. 물론 내연기관 자동차가 발전한 만큼 비슷한 상황으로 전기자동차도 20여년 전 보단 개선됐지만, 그 고민의 내용은 같은 셈이다. 전기자동차 대중화가 눈 앞에 닥친 지금, 또다시 20년 전의 고민을 해야 할까. 이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기자동차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업종과 기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아이디어로 “다품종, 소량생산을 짧은 시간 내에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인 4차 산업혁명시대. 전기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기존 패러다임,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내연기관 보다 먼저 달린 전기자동차

1일 자동차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전기자동차 기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계 최초의 전기자동차는 1873년 세상에 선보였다. 방식도 지금과 같다. 배터리에 전기를 모아 달리는 식이다. 이는 칼 벤츠가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단계 동안 피스톤이 두 번 왕복하는 4행정 사이클 기관을 단 첫 휘발유 가솔린 자동차를 선보인 1886년보다 13년 앞선 것이고 지금으로 계산하면 144년이나 전에 나온 것이다.


초기 구입비용·충전인프라 고민 외 기술불신·거부감은 사라져
인식만큼은 이미 대중화…대구선 4년간 5천237대 보급 전국 4위

美업체 소비자 맞춤 전기車 생산…시장 형성 후 준비하면 또 뒤처져
표준화·규격화·소량다품종 부품 단시간 내 비싸지 않게 공급해야



이후 전기자동차를 이용한 택시 회사 등도 나왔지만 용량이 적은 배터리, 비싼 차량 가격 등으로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1909년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이 기술은 잠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쳤다. 이후 199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날로 심각해지는 공해를 견디다 못해 전체 차량 판매량의 일정부분은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 차량으로 팔도록 강제한 ‘배기가스 제로 법’을 만들자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GM은 ‘EV1’라는 전기자동차를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자동차 메이커 연합은 캘리포니아 대기자원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 무공해차 판매 시기를 늦추는 대신 저공해차 판매 조약을 활성화하면서 2002년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와 EV1의 판매는 중단됐다.

국내에서도 전기자동차 생산이 이뤄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연구팀은 1978년부터 연구에 들어가 1년 가량 만에 전기자동차를 완성, 시운전을 마쳤다. 휘발유나 가스 대신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20㎾짜리 전기모터에서 나오는 동력을 차바퀴에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엔진이나 연료장치, 냉각장치 등 내연기관의 각종 부속장치가 하나도 없다. 하지만 16개 대형 배터리를 사용해야 했고, 최대 속력은 50㎞, 한번 충전의 주행거리는 105㎞로 길지 않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했던 전기자동차와 그 시장은 또다시 공해 문제와 석유고갈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다시 열렸다.

◆대중화 단계로 첫발 내딛은 전기자동차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만큼 보편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기자동차에 대한 인식만큼은 이미 대중화됐다. 배터리 성능에 대한 불신 등으로 전기자동차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초기 구입비용과 부족한 충전 인프라 탓에 구매를 고민하는 정도다. 대구시에 따르면 전기자동차 보급은 2011년 3대, 그것도 공공부문에만 한정됐다. 2014년까지 한 자리수에 그치는 등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다 환경에 대한 관심과 미래 신산업 발굴 등에 관심이 커지면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때 50대가 보급됐다. 고무적인 것은 이 중 49대가 민간부문에 보급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늘어나기 시작한 전기자동차는 2016년 250대(공공부문 11대, 민간부문 239대)를 기록했고, 지난해는 무려 2천 127대나 보급됐다. 민간에 보급된 대수는 2천3대에 이르렀다. 대구시는 내년에 2천810대를 보급할 예정이어서 이것까지 마무리 되면 2015년부터 최근 4년간 보급된 차량 대수는 5천237대에 이른다. 전기자동차 기술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은 사라졌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의 ‘대구경북지역 전기자동차산업의 현황 및 향후 과제’보고서를 보면, 전세계 전기자동차 판매량은 2013년 8만4천대에서 지난해 24만7천대로 연평균 43.8% 증가했고, 국내에서도 전기자동차는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1만500대 판매돼 2013년 대비 17배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전기자동차 등록대수는 10월 기준으로 전국의 10.0%를 차지, 16개 광역시도 중 제주, 서울, 경기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관광도시인 제주도는 렌트카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서울과 경기는 대구시 인구의 4배 가량인 1천만명에 이르는 시장임을 고려하면, 전기자동차는 대구에서 실제로 첫 대중화 됐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 상황이다.

◆대량생산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인 4차 산업혁명에서 전기자동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기존 전기자동차가 인식 개선과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화가 보급의 첫번째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당장 대량생산이 쉽지 않은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2천대가 넘는 전기자동차 보급에 나섰지만, 자동차 브랜드들이 그에 맞게 생산을 해내지 못해 일부는 계약을 포기한 경우도 생겨났다. 미국의 대표적인 전기자동차브랜드인 테슬라도 애초 지난해 12월까지 월 2만대(주간 5천대)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2018년 특정 시점에는 주간 1만대의 생산 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모델3 생산 라인의 병목 현상으로 인해 주간 5천대 양산시점을 오는 3월로 연기한다고 지난해 11월 밝혔다.

그런 만큼 전기자동차 부품의 표준화, 규격화, 다품종 소량생산을 빠른 시간 내에 비싸지 않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도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앞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 백윤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근 “전기자동차의 경우 우리가 갈 시장들을 좀 더 규격화하고 표준화하면 ‘레고’처럼 중소기업들이 여러 형태의 다품종 소량 생산 비즈니스로 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3D프린터를 이용해 자신만의 전기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업체가 생겨났다.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기업인 할리 데이비슨은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도입, 오토바이 한 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21일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또 전자상거래 통합 기능을 통해 웹사이트에서 고객의 구매와 동시에 주문해 스타일, 기능, 성능, 옵션 등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할리데이비슨을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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