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 셰프를 찾아서 - 청도 ‘고향추어탕’ 이경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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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9   |  발행일 2018-01-19 제41면   |  수정 2018-01-19
청도서 안동댁이 끓여내는 故鄕 추어탕…다대기 ‘걸장’ 별미
잡어로 끓이는 청도식과 다른 스타일
10년째 오직 미꾸라지·단배추만으로
30여년 前 남편 고향 각남면 화리 정착
2000년 치킨집 이어 2008년 추어탕집
조선간장에 찧은 고추·마늘 섞은‘걸장’
토박이 입맛 사로잡으며 단골로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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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추어탕’은 미꾸라지만으로 추어탕을 끓여 일반 청도추어탕과는 조금 다른 깔끔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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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추어탕’ 이경숙 사장.

가끔 청도에 가서 추어탕을 먹을 때면 손님끼리 청도추어탕 정체를 놓고 시비를 벌이는 광경을 목격하곤 한다. 청도추어탕도 이젠 전국구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청도역전 추어탕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뭔가 1% 경상도 추어탕에서 벗어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청도에서도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는 집이 있어 맛보러 가봤다.

각남면 이서교 근처에 있는 ‘고향추어탕’. 이젠 청도 용암랜드 맞은편으로 이전했지만 초창기 청도소싸움이 열리던 언저리다.

월요일 오후 4시. 주인 이경숙씨(59)가 놀러온 이웃 여인네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놀고 있다. 고향추어탕. 비록 청도역전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 있지만 각남면의 유일한 추어탕집이라 거의 단골, 소문 듣고 온 외지 단골이 축을 이룬다.

추어탕에 미꾸라지 향이 감돌아야 제격이겠지만 실은 목넘김이 너무 부드러운 얼갈이 단배추의 맛으로 먹는다는 이도 있다. 육개장의 파, 선지해장국용 시래기와 우거지와는 식감이 비교되지 않는다. 미꾸라지 확보도 어렵지만 실은 사철 작황이 들쭉날쭉한 작달막한 단배추는 제대로 공급받기 어렵다. 그래서 쉽게 가려는 사장들은 잡배추, 우거지 등도 슬쩍 넣고 미꾸라지에 메기 살점도 섞어넣는 것이다. 그럼, 정통 추어탕 맛에서는 한참 멀어지게 된다. 고수는 단번에 그걸 안다. 제대로 된 추어탕은 한 그릇에 족히 8천원 이상 받아야 수익구조가 형성된다.

여느 저가 추어탕은 무늬만 추어탕이지 실은 ‘풀국’에 지나지 않는다.

잡어로 끓이는 청도식과 다른 스타일
10년째 오직 미꾸라지·단배추만으로

30여년 前 남편 고향 각남면 화리 정착
2000년 치킨집 이어 2008년 추어탕집
조선간장에 찧은 고추·마늘 섞은‘걸장’
토박이 입맛 사로잡으며 단골로 확보


◆ 팔도 추어탕 열전

추어탕 명칭도 지역별로 다르다. 서울식은 ‘추탕’, 남원식은 ‘추어’, 경상도에서는 ‘추어탕’으로 불린다. 한국 추어탕의 본거지는 팔도에 흩어져 있다. 크게 남원·서울·원주·대구·청도·금산식으로 나눠진다. 현재 남원·청도·금산·원주가 추어탕거리를 앞세워 서로 자기가 ‘한국 추어탕의 본가’라고 자부한다. 남원시는 추어협회를 결성, 스스로 ‘전라도식 추어탕 1번지’ ‘한국 추어탕 본가’로 브랜드마케팅하고 있다. 90여년 역사의 춘향제가 열리는 광한루 일원에 50여개 업소가 ‘추어거리’를 형성했다. 가장 먼저 생긴 천거동 남원새집추어탕의 경우 1959년 경남 하동 출신의 서삼례 여사(올해 작고)가 창업했다. 또한 남원시 보절면 도룡리 용평·안평마을은 ‘미꾸라지 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경상도 추어탕의 본가는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북측 골목 안 상주식당과 수성구 들안길 동수미꾸라지, 왜관 장독대 정도로 압축된다. 경주의 ‘경상도추어탕’도 제맛을 내고 있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산초가루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은 껍질만 사용하는 ‘제피’다. 산초는 열매를 추출해 기름으로 활용하지만 제피 열매는 껍질만 추출해 비린내 제거용 향신료로 사용한다. 추어탕에는 산초가 아니고 제피가 맞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걸로 시비를 벌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미꾸라지만 사용하는 고향추어탕

원래 청도는 잡어로 추어탕을 끓이는데 그 집은 미꾸라지를 갖고 끓인다. 그 집 말고도 각북면에 가면 덕산추어탕이 있는데 그 집에서 사용하는 배추는 추어탕용보다는 좀 더 거친 우거지류를 주로 사용한다. 청도라도 추어탕 맛이 제각각 다르다. 호불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인 이씨. 한눈에 봐도 참 다부지게 생겼다. 일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10년째 추어탕을 끓이고 있다. 원래 안동시 길안면 길안천 옆에서 성장했다. 청도권과 추어탕 문화가 달랐다. 강촌에선 추어탕보다 매운탕, 어탕국수 등에 더 익숙하다.

그런데 82년 청도 출신 남편을 만나면서 각남면으로 시집을 오게 됐고 자연스럽게 각남면 시집 스타일의 추어탕을 해먹게 됐다. 식당 영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10세까지는 고향에 있다가 스무살 즈음 대구로 나와 직장생활을 했다.

남편은 고향에 정착해버렸다. 각남면 화리, 현재 자리에서 화동농기계수리점을 꾸려갔다. 30여년 그렇게 살았다. 들과 밭에서 경운기, 트랙터 등이 고장나면 남편한테로 전화가 걸려 온다.

남편은 틈만 나면 이서교 다리 근처 청도천에서 잡어 잡는 걸 좋아했다. 그걸 잡아오면 아내는 시댁에서 해먹던 방식으로 추어탕을 자주 끓여 친구 등에게 대접했다. 그 추어탕은 별미 안주였다. 친구들은 침이 마르도록 그 추어탕을 칭찬했다.

남편의 벌이는 날이 갈수록 하강곡선을 그렸다. 2000년 보다 못한 아내가 나섰다. 남편을 설득해 수리점 옆에 건물을 하나 마련했다. 각남면 첫 프라이드치킨집인 ‘스모프치킨’이었다. 청도군청 앞도 아니고, 너무 외진 데 입점한 치킨집이었다. 종일 보아도 노인들뿐이다. “시골에 아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장사가 잘 되겠냐”면서 걱정해줬다. 손자의 방문을 받은 근처 이웃 노인들이 주로 배달주문을 했다. 반경 8㎞ 안에서 전화 오면 밤 10시가 넘어도 차를 타고 배달을 나갔다. 화투 치다가 입이 심심한 마을회관 노인들도 전화를 주었다.

그런데 수리점과 치킨집 두 곳의 수입을 합쳐도 직장인의 수입에 턱없이 못 미쳤다. 두 아들한테 돈 들어갈 일이 더 잦아졌다. 학자금, 결혼비용 등을 생각하면 마냥 퍼질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2008년 아내가 또 사고를 쳤다. 내친 김에 수리점을 처분하고 평소 자신의 특기였던 추어탕을 갖고 식당을 개업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 추어탕집 지인을 벤치마킹

각남면 출신으로 대구로 진출해 동구시장, 달서구 세강병원 근처에서 청도추어탕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고기를 잡아서 그걸 갖고 토박이 추어탕을 끓이려고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세월이 많아 달라졌다. 소일삼아 한번씩 끓여먹을 때는 근처 하천에서 잡아온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장사는 그와 달랐다. 일정한 양의 식재료가 확보돼야만 했다. 단배추도 이웃 농부들로부터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어려웠다. 결국 팔달시장의 한 도매상으로부터 물량을 공급받기로 했다. 미꾸라지도 예전과 달리 자연산 시절이 아니었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키운 양식 미꾸라지가 더 맞을 것 같았다.

국맛을 맞추기 어려운 때는 단배추와 미꾸라지의 선도가 저하돼 있는 삼복철이었다. 혹한기에는 단배추 공급이 원활치 못해 한 단에 1천원 하던 것이 2천~3천원으로 폭등해버린다. 그렇다고 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다.

2008년 4월. 첫 추어탕을 맛본 이들은 역전 추어탕과 구별되는 새로운 청도추어탕이라고 인정해줬다. 끓여보니 매년 9월부터 5~6개월간이 가장 맛있었다. 하지만 공장에서 벽돌 찍어내듯 맛을 평균적으로 같게 만들 수는 없다. 일기와 재료의 선도에 따라 맛의 각도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단골의 표정을 보는 게 가장 긴장된다. 다른 메뉴는 없다. 오직 추어탕 한 그릇.

미꾸라지가 오면 굵은 소금으로 해감해야 한다. 여름철에는 1시간 만에 끝나지만 겨울이면 미꾸라지의 피부 지방층이 발달돼 해감 시간이 2~3배 늦어진다. 그리고 해감된 거품을 잘 세척해야 된다. 그걸 잘 삶아서 채반에 올려 살점을 잘 걸러내야 한다. 살점육수와 적당량의 단배추를 섞어 잘 끓여야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서 불을 끌 건가도 좋은 국이 되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승부처다. 어쩜 가장 쉬운 국인 것 같은데 막상 해보면 까다롭다. 전체 흐름이 이어져야 하고 기본간 맞추기도 어렵다. 그래서 휴일인 일요일을 제외하곤 항상 비상대기조처럼 살아간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 행인이 간판 보고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이웃 단골이거나 이 집 맛에 길들여진 외지 단골이다. 토박이가 좋아하는 양념장이 따로 있다. 조선간장에 찧고 빻은 고추와 마늘을 섞어내는데 이를 ‘걸장’이라고 한다. 칼국수용 양념장 같다. 외지인들을 위해선 빻은 마늘과 고추를 반씩 작은 접시에 담아낸다.

이 사장은 “역전 추어탕은 미꾸라지 대신 잡어를 주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거지류가 들어가도 문제는 없지만 미꾸라지만 사용할 경우에는 시래기, 우거지 등은 너무 거칠어 식감을 해치니 비싸도 반드시 단배추를 사용해야 제맛이 난다”고 강조한다.

가끔 메기 등 잡고기를 넣고 싶어도 단번에 맛이 변하는 걸 보곤 100% 미꾸라지만 고집한다. 나는 탕도 탕이거니와 직접 담가서 졸인 멸치젓갈로 버무린 김치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일반 식당에서 맛볼 수 없는 ‘줌마표 김치’. 팔조령을 넘어온 뒤에도 초당(草堂)같이 쿰쿰하고 종가 백김치처럼 아싹한 맛이 침샘을 오래 자극했다.

이제 두 아들도 모두 장가를 보냈다. 상호가 ‘고향’이라서 그런지 고향을 못 떠날 것 같단다. 원래 고향 장사란 게 돈이 안 되는 것. 하지만 누구보다 오래 대를 이어 고향을 지키는 청도추어탕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054)372-6686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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