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을에서 마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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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30  |  수정 2018-01-30  |  발행일 2018-01-30 제면
[기고] 마을에서 마을을 생각하다
이정연 시인

작년 12월13일 대구 오오극장에서 대구사회복지영화제에서 주최한 영화 ‘소성리’를 봤다. 사실 나는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도금연 할머니가 등장하는 예고편을 보고, 기대에 부풀어 꼭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도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후원을 권하기도 했다. 역시 ‘소성리’는 오오극장을 꽉 채운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보는 이의 예상을 깨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의 현장인 소성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 지 30분이 넘도록 사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산골 마을의 산과 들과 풀과 나무 그리고 그곳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모습만 느린 템포로 나온다. 초록 화면에 까치 소리, 풀벌레 소리, 매미 울음소리, 도랑 물소리, 다 익은 옥수수 꺾는 소리, 호미질 소리, 보행보조기 바퀴 소리와 자박자박 할머니들의 발걸음 소리, 구구 산비둘기 울음소리 사이사이 할머니들이 자분자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은 그것이 평화임을 말하고 싶은 거겠지. 그 평화를 지켜주고 싶은 거겠지.

감독과의 대화 말미에 들은, 세상을 좀 더 밝게 만들고 싶어 영화를 찍는다고 한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도 상영관을 찾지 못한 이 영화를 공동체 상영으로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보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그날 같이 영화를 본 페친 중 한 분이 댓글을 달아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자고 한다. 그러고는 줄줄이 댓글이 달리고 내 계좌를 공개하자 16만원이 입금되었다.

어느 공간에서 어떤 이들과 함께 준비해 누구를 대상으로 상영할 것인가는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대구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씩씩한어린이집, 해바라기방과후) 명예조합원이고 내가 사는 동네에는 많은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7년째 매월 두 번씩 만나 동네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우리 ‘중구난방인문학’팀은 그동안 공동체상영이라든가 저자초청 특강을 여러 번 같이 준비해 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을 안 해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웹포스터 만들 사람, 기기 설치할 사람, 모금함 만들어 올 사람, 뒤풀이 준비할 사람…. 게다가 중구난방 멤버들이 각자 얼마씩 돈을 내 감독을 초청하기로 했다. 웹포스터를 공개하자 소성리 주민을 초대하는 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소성리 주민들은 어디나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과 논의를 거쳐 웹포스터를 수정했다. ‘감독 및 소성리 주민과 대화의 시간’도 마련돼 있다고.

지난 19일 밤 드디어 우리 마을 해바라기어린이집에서 공동체상영을 했다. 사전 점검이 충분치 않아 영화가 중간중간 끊기고,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예정보다 30분 이상 길어져 버린 영화를 보느라 다들 허리며 목이 아프고, 화면은 작고, 들락날락거리는 아이들과 위층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음에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는 힘든 영화 관람이었다. 상영이 끝나자 이미 밤 10시가 넘어 버렸지만 이후 박배일 감독과 영화의 두 주인공인 도금연 할머니, 임순분 부녀회장과 대화를 나눈 시간은 진지하고 따뜻했다.

지난해 봄 우리 동네 엄마들은 각자 자신 있는 반찬을 하나씩 만들어 소성리에 모인 연대자들을 위한 반찬연대를 하기도 했다. 그다음엔 후원금을 모아 컵라면·컵밥 같은 걸 한 차 가득 싣고 가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 달리 ‘별처럼 평화가 내리는 마을’ 소성리 뒷산에 사드가 배치돼 버렸다. 대도시 안에 있는 우리 동네 뒷산 천을산 같은 곳에는 함부로 배치하지 못했을 사드는 누구든 가 보기만 하면 그곳이 얼마나 평화롭고 따뜻한 곳인지 절로 느끼게 되는 소성리에 들어섰다. 사람이 많지 않다고 흉측한 것을 갖다 두고도 모른 척하며 살기엔 아직 우리의 심장이 아프다.이정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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