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언프리티 소셜스타·댄싱 베토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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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42면   |  수정 2018-02-23

★언프리티 소셜스타
영악한 SNS 중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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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빠져 있는 한 인물이 있다. ‘잉그리드’(오브리 플라자)는 SNS를 통해 알고 지내던 여성이 자신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자 식장으로 찾아가 난동을 부리고, 그 대가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어머니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여전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잉그리드는 유산을 전부 챙겨 팔로어 26만명을 보유한 SNS 스타 ‘테일러’(엘리자베스 올슨)가 살고 있는 LA로 간다. 테일러가 다니는 미용실, 베이커리, 서점 등을 순회하며 기회를 엿보던 잉그리드는 마침내 그녀의 호감을 사는데 성공한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음식·패션 등 일상 점령
현실속 삶과 다른 사이버 월드의 가벼움 지적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대는 끝났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현대인들의 꿈은 이제 스크린이나 TV가 아니라 SNS 안에 있다. 연예인이 아니라도 명성을 펼칠 수 있는 이 세계는 일반인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 욕망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팔로어 수가 많은 이들은 테일러가 그렇듯 평범한 음식, 패션, 애완견, 심지어 배우자나 친구까지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의 주체로서 당당히 전 세계인들이 접속하는 타임라인을 점령한다. 그들과 가까워짐으로써 자존감을 높이길 원하는 잉그리드는 이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한 인간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과 파국은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뤄져 왔지만, 발단부터 결말까지 모든 사건이 SNS 문화와 연결되고, 그 현상은 물론 원인과 결과까지 잘 진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프리티 소셜 스타’(감독 맷 스파이서)는 신선한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가령 잉그리드가 테일러와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이자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여기며 액자에 넣어두는 것은 그들이 주유소에서 찍은 사진 그대로가 아니라 그 사진을 테일러가 SNS에 올려놓은 것을 캡처한 이미지다. 먹은 음식, 방문한 장소의 사진을 올리며 ‘인증 샷’이라 말하는 것처럼 친구도 같은 방식으로 인증된다고 생각하는 잉그리드의 심리는 우습게도 절절히 이해된다. SNS를 중심으로 도는 현대사회가 그렇게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편, 테일러 또한 SNS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폭로하면서 진실과는 무관한 사이버 월드 특유의 가벼움을 지적한다. 맛이 없는 음식도, 약에 빠져 있거나 능력이 없는 가족도 늘상 ‘최고’라는 말로 포장하고, 또 다른 유명인사와 그들의 삶을 좇는 테일러는 잉그리드보다 조금 더 팔로어가 많고 조금 더 영악한 SNS 중독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프리티 소셜스타’의 결론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잉그리드가 테일러가 혹은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영화는 이렇게 되묻는다. “삶을 나눌 상대가 없다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죠?” 아마도 그럴 것이다. SNS가 이만큼 중요해진 이유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고, 누구에게나 소통할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모호한 태도가 관객들을 혼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세계를 삶과 분리시키기 어려운 현실에서 달리 어떻게 이야기를 맺을 수 있을까. 더욱이 인간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라면, 후자의 기능을 더 부각시키는 수밖에. 개성 있는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플롯 속에 동시대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빛나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8분)

★댄싱 베토벤
위대한 협업의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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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언어로 묘사한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가 아닐까. 그만큼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로 펼쳐지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은 연습과정조차 위대한 예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댄싱 베토벤’(감독 아란차 아기레)은 스위스 베자르 발레 로잔, 일본 도쿄 발레단, 여기에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까지 35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대규모 합동 공연의 연습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로, 장면마다 인간의 창조성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베자르는 베토벤과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안무를 통해 그와 손잡는다. 1824년 초연된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약 140년 후 천재적인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베자르에 의해 ‘형태’를 갖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동작들의 총체에 다름 아니다. 시공을 초월한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협업은 공연을 준비하는 모든 무용수와 지휘자·연주자들에게까지 이어져 관객들은 공연장이 아닌 스크린에서도 그들의 하나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대규모 합동공연 연습과정 장면마다 경이로움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맞춘 가장 아름다운 몸짓


교향곡의 형식처럼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는 리듬과 구조까지도 ‘베토벤 교향곡 9번’과 일치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즉 스위스 로잔의 겨울부터 시작해 도쿄의 봄, 다시 로잔의 여름, 그리고 도쿄의 가을로 끝나는 각 챕터들은 각각 대지의 생명력, 승리의 힘, 다양성과 화합, 환희와 인류애라는 주제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베토벤 교향곡 9악장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인류애’ ‘형제애’와 같은 단어는 인터뷰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인종과 대륙을 뛰어넘어 하나의 공연을 위해 모인 출연자들에게서 이미 그 주제들이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내레이터인 ‘말리야 로망’은 아란차 아기레 감독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로, 주로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연습 장면과 공연 실황을 응시한다. 공연에 대한 극찬이나 출연자들의 소회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감독 자신의 생각을 말리야 로망의 클로즈업을 통해 전한 뒤 이를 페이드 아웃시키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렇게 ‘댄싱 베토벤’은 19세기의 베토벤과 20세기의 베자르, 그리고 21세기의 아란차 아기레가 함께한 예술로 남게 되었다. 시종일관 감탄을 멈출 수 없는 작품이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83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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