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리틀 포레스트’ 소소한 흥행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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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3   |  발행일 2018-03-23 제43면   |  수정 2018-03-23
영화판 ‘삼시세끼’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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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이 4년 만에 들고 나온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개봉 전까지 사실 크게 주목받는 영화는 아니었다.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배우도 없고 관객을 놀라게 할 자극적인 장면도 없는 순 제작비 15억원의 이 저예산 영화는 그러나 지난달 28일 개봉해 지난 20일까지 138만2천864명의 관객을 극장에 모았다. 손익분기점(80만 명)을 이미 훌쩍 넘긴데다 박스오피스에서 여전히 3위를 유지하며 장기 상영에 들어간 모양새다. SNS를 살펴보면 영화 포스터나 영화 속 장면들을 패러디하거나 영화에 나오는 요리 레시피를 따라한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시험과 연애, 취직 같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고향집에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혜원’은 그곳에서 스스로 키운 작물로 제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조금씩 찾아간다. 영화에서 친절한 레시피와 함께 나오는 음식들은 모두 ‘혜원’의 기억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이 영화의 정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가는 매개체로 활용되는 음식들은 소원해진 절친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심란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직접 심고 기른 농작물을 재료로 건강한 한 끼를 정성껏 만들어 먹는 ‘혜원’의 음식을 실제로 만든 진희원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나 자신을 위해 공들여 밥상을 차리면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나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과정들이 선사하는 ‘무심한 위로’를 늘 마음에 두고 작업했다”고 한다. 그 덕에 관객은 영화를 통해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여주인공 혜원
고향집으로 돌아와 성장하는 이야기
음식 통해 관계회복…마음 어루만져

개·소·누에…다양한 동물·생물 등장
실제 촬영현장 벌레까지 세심한 배려
영화에 묻어난 따뜻한 감성 관객 불러



영화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원작을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는 제38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과 제13회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인기 만화가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리틀 포레스트’는 작가 자신이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자급자족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원작으로 일본에서 먼저 두 편에 걸쳐 만든 영화도 있다. 국내에도 2015년 개봉한 바 있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과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은 원작 만화와 유사하게 주인공이 사계절 동안 자급자족해 먹는 요리에 집중했다면 임순례 감독의 영화는 인물과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원작 만화를 펴낸 출판사 관계자에게 “사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고 한국의 독특한 풍경과 자연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꼭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라는 극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임순례 감독은 한양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연극영화과를 수료한 후 프랑스 파리 제8대학에서 영화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1993년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 연출부를 거쳐 94년 단편영화 ‘우중산책’으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 작품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96년 장편영화 ‘세 친구’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NETPAC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감독의 등장을 알렸다. 2001년 배우 황정민의 첫 주연작이기도 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며 건재함을 알렸고, 2007년에는 제28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후 ‘날아라 펭귄’(2009),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 ‘남쪽으로 튀어’(2012), ‘제보자’(2014)를 꾸준히 내놓는 한편 ‘여섯 개의 시선’(2003)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 ‘미안해, 고마워’(2011) 같이 반려동물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임 감독은 영화감독뿐 아니라 2009년부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도 맡고 있어 실제 영화 촬영 당시 ‘혜원’의 친구로 나오는 진돗개 ‘오구’를 비롯해 소, 닭, 애벌레, 누에, 송충이, 개구리, 달팽이같이 다양한 동물과 생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해왔다. 영화에서 ‘혜원’이 친구 몸에 붙은 애벌레를 떼어 2층 난간 밑으로 던지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1층 바닥에 모포를 깔아 두고 벌레들이 겪을 충격을 미리 막기도 하고 야간 촬영할 때 조명에 몰려든 날벌레를 죽이지 않고 쫓는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다(배우 김태리는 실제 현장에서 “여기는 사람과 동물을 역차별한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임 감독은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초기작과 ‘날아라 펭귄’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근작들을 비교해보면 우울하고 어두웠던 분위기가 훨씬 따뜻하고 밝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임 감독 스스로도 당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훨씬 우울했고 희망이라고는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하며,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여유로워지고 세상을 덜 절망적으로 본다고 한다. 임 감독이 유연해진 만큼 영화 세계도 더 깊어지길 희망한다.

‘리틀 포레스트’의 소소한 흥행은 근래의 한국영화가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만큼 수익을 얻어내기 위해 한 영화에 몸값 높은 배우를 여럿 섭외하고 자꾸만 자극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관객의 피로감이 누적된 반증이라 할 것이다. 덧붙여 남성배우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끄는 방식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극장 문을 나서고도 가끔씩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한 웃음이 지어지는 영화를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여러 번 지적하는 것이지만 특정한 젠더가 이끄는 영화계는 다양성 결핍으로 결국 관객에게 해롭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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