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만약 남성의 몸에서 ‘임신’이 이뤄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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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

年 수천만명이상이 중절약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해야

임신한 남성이 낙태한다면

국가는 아낌없는 지원할 듯

이승연 소우주성문화인권 센터장
만약 남성의 몸에서 임신이 되었다면 지금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15세기쯤에 이미 ‘피임’과 ‘낙태’는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산업혁명 이후 출산뿐 아니라 낙태한 남성에게 ‘낙태휴직기간’(낙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했을 것이고 월경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어릴 때부터 교육되었으리라. 어쩌면 국가마다 앞을 다퉈 월경혈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해 너무나 많은 영역에 활용돼 고가의 가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인 진통이란 말은 일찍이 사라졌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본다.

며칠 전 제7회 대구여성영화제 개막작인 ‘파도 위의 여성들’을 봤다. 임신중절 과정에서 제대로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해 죽는 여성이 10명에 1명꼴이라는 자막이 영화 초반에 나왔다. 네덜란드의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결성한 여성단체인 ‘파도 위의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인 국가의 여성들이 안전한 임신지속중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일명 ‘낙태선’을 출항시킨다. 이 배는 낙태가 불법인 국경을 벗어나 주권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국제연안에서 안전한 낙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여성들은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고,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낙태를 불법으로 정한 국가를 떠난다. 이것은 국가라는 공간이 여성을 그 공간에서 어떻게 결정짓고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낙태죄’는 형법이 제정된 이후 오랫동안 사문화된 법이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는 온갖 캐치프레이즈 아래 국가는 낙태를 용인했을 뿐 아니라 암암리에 권장해왔다. 이후 국가가 출산장려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낙태죄 논란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흐름과 발맞춰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결성되면서 불법 낙태 시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임신중단을 한 여성·의사·조산사 등에 대한 고발을 이어갔다. 낙태죄의 실질적인 처벌을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안전하게 낙태를 하기 어려워졌고 낙태 시술 비용은 폭등했다.

‘파도 위의 여성들’의 배에서 이뤄지는 임신중절은 수술이 아니라 먹는 약을 통해서다. 임신중절 약인 ‘미프진’은 현재 세계 119개 국가에서 시판되고 있으며 연간 7천만명 이상 여성들의 원치 않은 임신을 치료하고 있다. 현재 낙태가 합법인 많은 나라에서는 안전하고 저렴한 낙태 시술이 보장돼 구글에 낙태라고 검색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안내 사이트가 나온다. 우리나라처럼 불법인 나라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불법 판매 브로커들이 판을 치고 심지어 범죄자 취급을 한다.

국가는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 낙태죄를 이용해왔다. 그러나 낙태죄는 ‘원정낙태’를 증가시키고 임신중단을 음성화했을 뿐 실제 낙태율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2016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낙태율은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보다 금지하는 나라가 오히려 더 높다. 즉 낙태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낙태죄 폐지 여부가 아니라 낮은 피임률, 성차별 사회구조, 미성년 또는 비혼인 부모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 과도한 양육비용, 실질적인 보육지원제도의 부재 등임을 보여준다.

여성의 성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는 것은 임신 출산 양육을 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등한시하며, 국민의 재생산권과 행복추구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만약 남성이 임신을 하고 낙태를 결정했다면 그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의지와 판단력을 존중해 국가는 심리적, 정서적, 의료적, 복지적 지원을 아낌없이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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